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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국민연금이 '환율 방어' 도구인가
환 헤지 확대 요구 잇따라
장기 투자기관 본령 지켜야
민경진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장기 투자기관 본령 지켜야
민경진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은 6000억달러 안팎이다. 한국은행 외화보유액 4200억달러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2023년 말까지만 해도 두 기관의 외화 보유 규모는 비슷했다. 그러나 기금 규모가 커지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외환시장 안정의 한 축으로 활용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정경제부·한국은행·보건복지부·국민연금이 참여하는 4자 협의체가 꾸려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연금은 외화 자산의 최대 15%까지 환헤지가 가능한데, 정부 안팎에서는 이 비율을 2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명분은 단기 환율 안정이다.
국민연금의 본령은 환율 관리가 아니라 장기 투자다. 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때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위험을 조정하고 외환 손실을 일부 방어하는 대응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과 정책 목적의 시장 개입은 전혀 다른 문제다. 단기 처방을 위해 자산 배분 원칙과 투자 전략을 흔들기 시작하면, 국민연금은 독립적인 기관투자가가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동원되는 정책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에 따른 후유증이다. 외부 요구에 따라 투자 판단이 바뀌고, 그 영향으로 수익률이 훼손되면 실무 부담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떠안게 된다. 손실의 대가는 결국 가입자인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책 당국은 환율 안정이라는 단기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일관성만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이 시장에서 갖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더 중요한 것은 개입 확대가 아니라 원칙 강화다. 국민연금은 환율을 방어하는 기관이 아니라 국민의 노후를 지키는 기관이다.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외환시장 카드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수익률과 안정성의 균형을 지켜야 하는 장기 자본이어야 한다. 국민연금이 스스로 마련한 기준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시장의 신뢰와 국민의 노후를 함께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