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유 방출도, 트럼프 "종전" 발언도 더 통하지 않았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2월 소비자물가(CPI)는 둔화 추세를 나타냈지만, 유가가 급등하기 이전 데이터여서 시장이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오라클이 10% 넘게 급등하면서 기술주가 오른 게 증시가 그나마 덜 흔들린 이유였습니다.
1. 둔화한 CPI, 시장은 무시
11일(미 동부 시간) 아침 8시 30분 미 노동통계국(BLS)은 2월 CPI를 발표했습니다.
헤드라인 CPI는 전월 대비 0.3%, 전년 대비로는 2.4% 올랐고요.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한 달 전보다 0.2%, 1년 전보다는 2.5% 오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근원 CPI의 경우, 전월 대비 수치는 1월(0.3%)에 비해 둔화했고요. 전년 대비 수치는 2021년 팬데믹 이후 가장 느린 상승 속도였습니다.
에넥스웰스의 브라이언 제이콥슨 이코노미스트는 "2월 CPI는 긍정적 방향으로 가고 있었지만, 중동 분쟁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이고, 비료 공급 혼란으로 식료품 물가도 가속할 수 있다. 식품 및 에너지 구성 요소는 CPI 바스켓의 20%를 차지하지만, 소비자의 인플레이션 기대에 있어선 실제 비중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분석했습니다.
TD이코노믹스는 "2월 CPI 보고서는 최근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옛날 데이터처럼 느껴진다. 향후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둔화할 여지는 크지 않으며, 관세 효과와 유가 상승의 이차적 영향은 두 가지 상승 위험 요인이다. 미 중앙은행(Fed)은 당분간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향후 몇 달 동안 노동 시장이 추가 약화 조짐을 보이지 않는 한 그런 추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습니다.
ING는 "중동 전쟁으로 인해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고 있으며, 교통비와 항공료 등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CPI는 2분기 중 다시 3%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며, 연말까지 3%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에너지가 높은 수준을 오래 유지할수록 고용이 빠르게 둔화하면서 수요 위축 효과가 커질 위험이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근원 물가 압력을 약화할 수 있다. Fed는 초기엔 물가에 대해 우려하겠지만, 근원 물가가 둔화하기 시작하면 연말께 두어 차례 금리를 내리는 데 편안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닉 티미라오스 기자는 "상당히 괜찮은 CPI 보고서지만 세 가지 주석을 붙어야 한다. 첫째, 이란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여파가 발생하기 전 데이터다. 둘째, (정부 셧다운으로) 작년 10월부터 취해진 매우 유리한 데이터 보정은 3월부터 사라진다. 셋째, Fed의 물가 벤치마크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CPI보다 훨씬 더 높게 움직이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채권 트레이더들이 국채 가격 하락(금리 상승)에 베팅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시티그룹의 데이비드 비버 채권 전략가는 "국채 가격 하락은 디레버리징 현상이다. 트레이더들이 Fed 금리 인하 기대 축소와 인플레이션 심화 위험을 반영해 매수 포지션을 청산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일부 걸프 국가들이 이란 전쟁에 따른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국부펀드 투자 내역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 국채 매도가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인지, 오늘 재무부가 실시한 국채 10년물 경매(390억 달러)에서는 발행 금리가 4.217%로 발행 당시의 시장 금리(WI) 4.210%보다 0.7bp 높게 형성됐습니다. 응찰률은 2.45배로 최근 6개월 평균(2.48배)보다 소폭 낮았습니다.
회사채 공급 증가도 채권 시장을 누른 요인입니다. 오늘 세일즈포스가 250억 달러 채권을 찍었고요. 어제는 아마존, 하니웰에어로스페이스 등이 발행한 투자등급 회사채가 660억 달러에 달했는데요. 하루 발행량으로는 역대 최대였습니다.
2. 비축유 방출에도 유가 상승
아침 9시반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혼조세로 출발했습니다. 변동성은 여전히 컸고요. 11시가 넘으면서는 3대 지수 모두 마이너스권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인근 선박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면서 유가는 상승세를 이어갔고요. 이게 투자심리를 눌렀습니다. 브렌트유는 종일 배럴당 90달러 이상에 머물렀습니다.
칼라일의 제프 커리 원자재 헤드는 "호르무즈 해협 폐쇄로 인한 중동의 수출 차질이 하루 2000만 배럴에 추산되고, 이게 한 달간 막힌다면 6억 배럴에 달한다. 비축유 방출은 이런 공급망 차질을 상쇄하는 데 있어 극히 미미한 효과만 미친다. 해협이 한 달 이상 봉쇄된다면 그 결과는 전략비축유 방출과 관계없이 재앙적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블룸버그의 하비어 블라스 원자재 기자는 "IEA의 전략비축유 방출은 시간은 벌어주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는 것만이 해결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마무리지을 수 있는 시간이 며칠 더 생겼다"라고 했습니다.
판테온이코노믹스의 이란 셰퍼드슨 편집자는 "이란은 더 잃을 게 없다. 기뢰는 구식 기술이지만 효과가 있다. 1988년에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설치된 기뢰가 미군의 전함 USS 로버츠를 거의 침몰시킬 뻔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조선 호위를 제공하겠다고 했는데요. 로이터통신은 "해운업계 요청을 미 해군이 현재 거부하고 있다. 미 해군은 현재로서는 공격 위험이 너무 높다. 당분간 호위를 제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라고 보도했습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공동의 선박 호위 작전을 조율하는 데 "몇 주"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칼라일의 제프 커리는 "유조선 한 척에 드는 호위 비용이 호위 대상 화물의 가치를 초과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은 유조선에 대한 보험을 제공하기로 했죠. 이와 관련, 미 국제개발금융공사(DFC)는 보험사 처브를 주간사로 선정한 뒤 "처브가 적격 선박에 대한 보험 계약을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다른 보험사의 참여도 추가 발표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험보다 선주, 선원들이 지나가지 않으려 하고 있어서 통행이 원활해질지 의문입니다. 오늘 공격받은 태국 컨테이너선에서는 선원 3명이 실종됐습니다. 세계해운협의회(WSCC)는 “중동을 운항하는 선박의 선원 약 2만 명이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미 여럿이 목숨을 잃었다. 선원 안전은 최우선 사항”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대해 "매우 잘 진행되고 있다"라며 "선원들이 '용기를 내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유가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장 마감 뒤에도 걸프만에서 유조선 2척이 공격받았다는 소식에 유가가 급등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영국 정부 내부 자료를 인용해 "영국은 이란 전쟁이 4월 중순까지 이어지고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분쟁이 5월까지 지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수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라고 보도했습니다.
3. "전쟁 끝" 발언…약발 떨어졌다
오전 10시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공격 대상이 사실상 남아 있지 않아서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보도(악시오스)가 나왔습니다. 그는 "남은 것들은 사소하다. 내가 끝내고 싶을 때 언제든 끝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쟁이 곧 끝날 것“이란 발언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많아진 탓입니다. WSJ은 "트럼프 행정부 일부 관료들은 ‘이란이 지역 국가들을 계속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이란 목표물을 공격하려 하는 한 미국이 쉽게 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미 외교협회의 리처드 하스 회장은 CNBC 인터뷰에서 "문제는 미국이 이제 그만하겠다고 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을 끝내려면 세 나라의 합의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이 그만하겠다고 결정했는지가 관건이다. 분명히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이란이 전쟁을 계속하고 싶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이 전쟁을 시작했지만, 일방적으로 끝낼 수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의 생각은 미국과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카츠 국방장관은 "전쟁은 시간제한 없이, 모든 목표를 달성하고 결정적 승리를 거둘 때까지 필요한 만큼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신속히 끝내기를 원하지만, 이스라엘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이란 정권 교체를 위한 여건 조성에 전념하고 있다"라고 썼습니다.
이란도 트럼프 대통령 생각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습니다. 알리 라리자니 국가안보회의 의장은 "중재국 오만을 통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휴전 협상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존재가 존재하는 한 어떠한 협상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라고 공개했습니다. 이란 합동사령부는 성명을 통해 세 가지를 발표했습니다. 첫째, 미국, 이스라엘 또는 그 동맹국에 이익이 된다면 단 1리터의 석유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이들로 향하는 모든 유조선은 '합법적 공격 대상'이다. 셋째, 미국과 이스라엘 공격에 비례해 대응하는 ‘상호공격’ 정책을 종료했다. 새 정책은 지속적 공격이다. 우리가 원하는 조건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배럴당 200달러에 대비하라.
4. 커지는 사모대출 불안…2008년?
사모대출 불안도 지속하면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금융 업종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JP모건이 사모대출 펀드에 준 대출에 대해 담보자산 가치를 하향 조정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사모대출 펀드는 레버리지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려고 투자자 자금 외에 은행 보험 등 금융사에서 빌린 돈으로 기업에 대출해 왔는데요. 이렇게 담보자산 가치가 줄어들면 펀드들은 대출 한도가 줄어들거나 일부는 갚아야 할 수 있습니다. 사모대출에 대한 부실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JP모건이 보수적인 자세로 바뀌었음을 시사합니다. 제이미 다이먼 CEO는 지난해 퍼스트프랜즈, 트라이컬러 파산 사태 이후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타났다면 더 많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사모대출에 대한 걱정이 매우 큰데요. 골드만삭스의 쿠날 샤 국제 비즈니스 공동 헤드는 "사모펀드 고객에게 소프트웨어 익스포저나 사모대출 얘기 말고 다른 얘깃거리(중동 전쟁)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5. 오라클 9% 급등, "빅테크, 위기에 강하다"
시장이 버틴 것은 오라클, 그리고 기술주가 버틴 덕분이었습니다. 오라클은 어제 저녁 월가 기대를 넘는 실적을 내놓으면서 AI 과잉투자에 대한 불안을 덜어줬습니다.
투자자들은 오라클의 막대한 부채에 대해 걱정해 왔습니다. 오라클은 지난달 올해 AI 자본지출을 위해 최대 500억 달러의 부채 및 주식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요. 이보다 더 많은 자금 조달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필요한 장비의 대부분은 고객이 선불로 부담하거나 고객이 부담하기로 한 덕분입니다.
오라클은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 회사인데요. 마이크 시칠리아 공동 CEO는 소프트웨어(SaaS) 종말이라는 이야기를 반박했습니다. 그는 "오라클이 AI 코딩 도구를 빠르게 도입하는 것은 SaaS 사업을 가속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쳐 전체 생태계를 가능하게 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JP모건은 투자 의견은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높였지만, 목표가는 230달러에서 210달러로 낮췄습니다. JP모건은 "부정적 뉴스나 계약 잔액 삭감이 없었다는 점은 소폭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커진 규모에서 가속하는 성장세를 높이 평가하며, 실행력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작년 9월 주가가 328달러를 기록한 뒤 크게 내린 만큼 주식은 위험 대비 보상이 더 유리한 구간에 있다고 판단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반면, JP모건의 트레이딩데스크는 "오라클은 적어도 이번 실적 발표를 통해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했다. 긴 여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라클은 9.18% 뛰었는데요. AI 생태계의 반도체, 빅테크 주식의 동반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엔비디아는 0.68% 올랐고요. 마이크론은 3.87%, 샌디스크는 5.9%, 웨스턴디지털은 0.97% 각각 상승했습니다. 알파벳(+0.54%), 메타(+0.12%), 테슬라(+2.15%)도 함께 올랐습니다.
데이터트랙리서치는 "미국 빅테크는 최근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진 뒤 세계 기술주를 능가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 빅테크는 시장을 선도하며,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지금처럼 변동성이 큰 환경에서는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될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6. 금융, 필수소비재 급락
주가는 혼조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S&P500 지수는 0.08% 약보합세를 보였고요. 나스닥은 0.08% 강보합을 기록했지만 다우는 0.61% 내렸습니다. 다우 30개 종목에 들어있는 JP모건(-0.42%), 비자(-1.74%) 등 금융주와 월마트(-1.30%), P&G(-1.72%) 맥도널드(-0.84%) 등 필수소비재 주식이 부진했던 탓입니다.
기술주 중 반도체 주식은 올랐지만, 소프트웨어 주식은 어제에 약세를 보였습니다. 인튜이트가 2.97% 내렸고 세일스포스(-0.40%), 어도비(-0.52%), 서비스나우(-0.84%), 워크데이(-3.26%) 등 주요 주식들이 내렸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