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바닥 아직" 매도 폭탄 주의보…美 증시 변곡점은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전쟁 거의 끝났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현지시간 9일) 이후 이란 전쟁 장기화에 대한 공포는 한풀 꺾였지만, '진짜 종전'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유가와 변동성이 큰 주가에서 알 수 있는 시장의 생각입니다.
1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와 ICE 선물 야간 거래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는 각각 7% 넘게 뛰었습니다. WTI는 다시 배럴당 90달러 위로 치솟았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99달러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CE) 제안에 따라 각국이 비축유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을 방출하기로 했음에도 유가 상승의 근본 원인인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아직 풀릴 기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대급 비축유 방출에도 유가 상승
JP모건에 따르면 석유 시장에 더 중요한 건 비축유가 '얼마나' 방출되는지보다 '얼마나 빨리' 방출되는지인데, 현재로서 현실적인 방출 속도는 하루 약 120만 배럴이라고 합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차질이 생긴 공급량이 하루 약 1500만 배럴로 추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유가를 안정시키기엔 턱없이 모자랍니다.
물론 "유가가 좀 올라도 평화의 대가로는 싸다"던 지난주와 비교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브렌트유가 120달러를 넘었던 지난 9일 이후 가능한 한 빨리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쪽으로 기류가 바뀐 겁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 차질에 따라 미국 국민들이 매일 체감하는 가솔린과 디젤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정부의 부담은 커지고 있습니다. 난방유, 항공유, 비료, 산업 원자재 등의 가격도 줄줄이 뛰면서 농산물, 식료품, 항공료 등 2차 상승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안 그래도 생활물가 부담(affordability) 문제가 미국 중간선거의 핵심 이슈가 된 상황에서 이런 인플레이션 재점화 가능성은 치명적입니다. 월가는 이 때문에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對)이란 군사 작전을 시작했을 때부터 트럼프 행정부가 유가 폭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란 전쟁을 4~6주 이상의 장기전으로 끌고 가진 않을 것으로 봤지요. 실제로 나타난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 변화는 이런 시나리오에 힘을 싣습니다. 지난 9일의 증시 급반등과 이후 기술주 회복세는 이런 낙관론을 반영합니다.
그럼에도 월가 일부에선 "아직 폭풍이 다 지나가지 않았다"며 성급한 매수는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오히려 향후 일주일 간 미국 증시에서 대규모 매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진짜' 종전과 유가 안정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여전히 높고, 증시 상승을 제약하고 있는 기술적 수급 환경도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조기 종전의 기대와 현실 사이
거시적 측면에서 핵심 변수는 결국 유가입니다. 종전이 가까워졌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도 유가는 이란 전쟁 이전에 비해 배럴당 20달러 이상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말뿐인 종전이 아니라 실제 종전이 언제 이뤄지는지, 그래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물류가 언제 정상화되는지, 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언제 내려오는지가 관건입니다.
UBS도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발언 이후 ‘시장의 낙관론과 현실 사이엔 간극이 있다’며 주의를 권했습니다. 전쟁 이후 S&P500 하락폭이 약 3%에 불과한 상황에서 시장이 기대하는 유가 안정이 빠르게 나타나지 않으면 언제든 실망 매물이 쏟아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UBS는 미국이 언제 목표 달성, 즉 '진짜 종전'을 선언할지,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 통행이 이뤄질지가 핵심 변수라고 지적했습니다.
"시스템성 매도 압력 거세다"
시장의 기술적인 수급 환경도 상승에 불리한 국면입니다. 지난 10일 골드만삭스 트레이딩 데스크는 최근 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으로 인해 추세 추종(CTA) 전략 펀드들이 강제 리스크 관리 메커니즘을 발동했다고 전했습니다. 향후 일주일에서 한 달 간 S&P500 지수가 오르든 내리든 이런 알고리즘 트레이딩 자금은 리스크 노출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순매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그 순매도 규모는 역사적 극단값 수준으로 클 것으로 추정됩니다.
월가는 최근 시장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바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JP모건 포지셔닝 인텔리전스 팀은 10일 기준 미국 증시 투자자들의 포지션이 겨우 중립 수준으로 후퇴했을 뿐, 완전한 디레버리징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분석했습니다. 향후 추가적인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이를 받아낼 실탄이 시장에 부족하다는 건데, 쉽게 말해 아직 더 팔 사람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크 윌슨 CIO도 "보통 조정은 최고 우량주와 지수까지 타격을 입어야 끝나는데, 아직 그 수준은 아니다"라면서 "향후 한 달 정도는 더 증시가 고전할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구체적으로 4월 초까지 S&P500이 6300선까지 밀릴 수 있다고 봤는데요. 그래야 강세장의 근거가 되는 기저의 우호적인 펀더멘털이 다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조 달러 옵션 만기, 3월 20일이 변곡점"
시타델증권의 스캇 럽너 총괄은 가장 중요한 기술적 이벤트로 월간·분기 옵션이 만기되는 3월 20일을 지목합니다. 올 2월 약세장을 정확히 예측했던 럽너는 지난 4일 보고서를 통해 "(지난 2월 제시했던) 전술적 약세 전망을 철회한다"면서, 현재 시장을 억누르고 있는 여러 기계적 수급 제약 요인들이 3월 중순까지 해소된다면 4월부터 본격적인 위험 선호 환경이 펼쳐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실제 올 들어 3월 1일까지 S&P500 지수의 고점 대비 저점 변동폭은 4.3%로 지난 20년래 가장 작았습니다. 물론 이란 전쟁 이후 출렁임이 커지긴 했지만, 그래도 개별 종목의 변동성에 비하면 지수 자체의 급등락은 지정학적 충격의 정도를 생각할 때 심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럽너는 지수가 이토록 억눌려 있던 원인을 막대한 옵션 거래 규모와 그것을 헤지하기 위한 마켓메이커들의 오버라이팅(Overwriting) 물량 때문으로 봅니다. 오는 20일 옵션이 만기되면 이런 시장 구조도 리셋됩니다.
3월 말~4월 초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미중 정상회담도 지정학 리스크를 추가적으로 완화하는 이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섣부른 '풀매수'보단 진짜 바닥 확인"
결론적으로 지금은 섣부른 기대감으로 저가 매수에 뛰어들기보단 유가와 달러 강세가 확실히 진정되고, 기술적 환경이 개선되는 것을 기다리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 국면이라는 게 월가의 중론입니다. 월가에서 장기적으로 이란 전쟁보다 더 큰 위험 요인으로 주목하고 있는 사모신용 시장의 불안도 미국 증시를 꾸준히 흔들고 있습니다. 윌슨 CIO는 "지수는 여전히 5~7%, 포지션 쏠림이 심한 종목은 두자릿수 추가 하락을 겪을 수 있다"면서 "(강세장 근거는 훼손되지 않았지만) 지금 가격은 아직 충분히 싸지 않다"고 말합니다.그러면서도 "시장의 최종 바닥은 천장보다 더 빠르게 형성된다"며 "올해 후반 강세장이 재개될 것을 염두에 두고 '쇼핑 리스트'를 준비하라"고 조언합니다. 폭풍이 지나가고 진짜 바닥이 확인된 뒤에는 기존 강세장을 이끌었던 투자 논리들이 다시 주도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선점 경쟁, 미국 재산업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와 재정·통화 완화 정책에 대한 베팅('리플레이션 트레이드'), 실물 자산에 대한 선호 같은 테마들입니다.
강세장의 근거가 살아있다면 지금은 공포에 젖어 투매를 할 때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공격적으로 추격 매수를 할 때도 아직 아니라는 게 월가의 일관된 메시지입니다. 다가올 진짜 반등장을 주도할 우량 기업들을 선별하면서 위험 관리에 무게를 둬야 할 시점입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