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로맨스가 귀환했다. 그냥 로맨스가 아니다. 흔하지 않은 한국의 ‘청춘’ 로맨스다. 사랑하기가 어려워진 시대, 그래도 청춘은 사랑을 했고,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랑은 감정의 ‘클래식’이다.

<파반느>는 오랜만에 만나는 청춘 로맨스다. 눈치 빠른 이들은 영화의 제목만 보고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맞다, <파반느>의 원작은 박민규의 소설이다. 소설이 온라인에서 처음 연재를 시작했던 게 2008년, 벌써 17년 전이고, 극 중 배경 또한 1985년으로 41년의 세월이 지나야 현재 시점이다. 영화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시대와 관련한 각색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영화를 만들고, 각색 작업에도 참여한 이종필(<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박하경 여행기> 등 연출) 감독은 현재 시점을 배경으로 하되 현재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나 도구, 말투를 강조하는 등의 특정 시기를 못 박지 않았다.
넷플릭스 '파반느' 스틸 컷. / 사진. © Cho Wonjin/넷플릭스
넷플릭스 '파반느' 스틸 컷. / 사진. © Cho Wonjin/넷플릭스
극 중 커플은 미정(고아성)과 경록(문상민)이다. 요한(변요한)은 이들의 사랑을 돕고 관찰한다. 이들은 백화점 지하에서 일한다. 정규직 미정은 적응 실패로 지하 창고에 고립됐고, 그래서 주차 알바 신세의 경록을 만났다.

모든 이가 미정을 외면해도 경록은 그런 시선 따위 안중에도 없다. 이를 눈치챈 요한은 ‘켄터키 HOPE’를 아지트 삼아 미정과 경록 사이를 이어주려 사랑의 오작교 역할을 자처한다.

적극적인 경록과 다르게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집안 배경이 있어 어둠 속에 홀로 있기를 자처하는 미정을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건 소극장에서 흘러나오는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다. ’파반느’는 두 사람이 느리게 추는 춤, 그에 맞춘 음악을 말한다. 원작 제목에서 ‘파반느‘를 취했다는 건 미정과 경록의 사랑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종류의 감정이 아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신중한 관계임을 암시한다.

만나자마자 눈 맞았다고 바로 원나이트스탠드도 가능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카톡으로 이별 통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MZ 세대의 사랑과는 전혀 다르다. 그야말로 클래식, 고전적인 사랑이다.
넷플릭스 '파반느' 스틸 컷. / 사진. © Cho Wonjin/넷플릭스
넷플릭스 '파반느' 스틸 컷. / 사진. © Cho Wonjin/넷플릭스
예전에 경록 아빠(박해준)는 <아비정전>(1990)의 차우(양조위)처럼 천장 낮은 방의 조명 아래에서 치장하고 나가 다른 살림을 차렸다. 경록 자신도 후에 미정과 <비포 선라이즈>(1996)의 특정 장면에 나온 데이트를 했다.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이 그랬던 것처럼 레코드점의 좁은 청음실에서 서로 붙어 앉아 음악을 들으며 나이 들어 과거를 낭만적으로 추억할 만한 기억을 만들었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 편…

바에서 와인 한잔하기에는 너무 가난해, 세대는 MZ이어도 감성은 베이비붐 세대(?)라 미정과 경록의 최고 사치는 광고 없이 소개 멘트와 음악만 흘러나오는 FM 93.1MHz의 클래식 채널 듣기다. 마침 DJ 정만섭이 진행하는 <명연주 명음반>에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가 전파를 탄다. <겨울나그네>는 또한 1986년에 개봉한 곽지균 감독의 동명 영화 제목으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물로 꼽힌다.

<파반느>의 인물 구도처럼 <겨울나그네>는 대학 시절에 만나 첫사랑을 키우며 관계를 이어가는 민우(강석우)와 다혜(이미숙)의 삶의 궤적을 선배 현태(안성기)가 끼어들어 관찰하는 구조를 취한다.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 예고 없이 찾아온 가문의 비밀로 비극에 이르는 <겨울나그네>의 관계도 ‘클래식’하다. 개별의 사랑은 언젠가 끝을 보고 만다는 만고의 진리. 그럼에도 대명사로서 사랑은 영원할 거라는 불변의 진실.
넷플릭스 '파반느' 스틸 컷. / 사진. © Cho Wonjin/넷플릭스
넷플릭스 '파반느' 스틸 컷. / 사진. © Cho Wonjin/넷플릭스
외모를 평가하거나 지적하는 게 금기시되는 지금에는 상상할 수 없는 ‘못생긴‘ 여자를 설정으로 외모지상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소설과 달리 <파반느>는 클래식한 음악과 고전적인 만듦새로 사랑이 지닌 속성을 탐구한다.

관련해 요한의 내레이션으로 이렇게 소개된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영원할 거라는 오해.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를 이해하는 것. 결국 사랑은 상상하는 일이다.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그 무엇이다.”

어둡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미정과 아빠가 다른 가정을 꾸려 가족 관계가 파탄 난 경록과 첩의 자식이란 이유로 무시당한 요한은 가늠하기 힘든 마음속 공동(空洞)을 공유해서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하고 채워줄 수 있었다.
넷플릭스 '파반느' 스틸 컷. / 사진. © Cho Wonjin/넷플릭스
넷플릭스 '파반느' 스틸 컷. / 사진. © Cho Wonjin/넷플릭스
한국 영화에 청춘 로맨스는 일종의 공동,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의 목록이 언제부턴가 비어 있었다. 1980년대의 <겨울나그네>, 1990년대의 <비트>(1996), 2000년대의 <엽기적인 그녀>(2001)를 잇는 계보가 끊겼었다.

<파반느>는 일본과 대만의 영화에 자리를 내줬던 한국 청춘 로맨스를 복원하는 작품이면서 한국의 청춘을 대변할 영화에 목말라 있던 차에 한 잔의 시원한 맥주처럼 찾아온 켄터키 HOPE와 같은 희망의 존재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더라도 청춘의 로맨스를 박제해 영원성을 부여하는 건 영화와 같은 상상력의 영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랑(을 다룬 작품)을 갈구하고 기대한다. 한편으로 과거의 관계를 반추하며 위로받고 힘을 얻는다.

청춘은 미정의 방에 시간차를 두고 걸린 뭉크의 <사춘기>와 <키스>처럼 불안하고 미성숙해도 오해한 사랑과 같은 경험을 동력 삼아 결국 모든 걸 받아들이고 성장한다. <파반느>는 그렇게 청춘의 로맨스를 정의한다.
넷플릭스 '파반느' 스틸 컷. / 사진. © Cho Wonjin/넷플릭스
넷플릭스 '파반느' 스틸 컷. / 사진. © Cho Wonjin/넷플릭스
허남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