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줄랭 프렐조카주(Angelin Preljocaj)의
르 파르크(Le Parc), 에덴 동산의 현대적 재현

성 발렌타인 데이를 포함하는 2월은 흔히 사랑의 계절로 불린다. 2026년 2월, “오늘날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발레 작품, 앙줄랭 프렐조카주(Angelin Preljocaj)의 <르 파르크(Le Parc)>가 파리 가르니에 극장(Palais Garnier) 무대에 다시 올랐다.

1994년 파리 국립 오페라 발레(Ballet de l’Opéra national de Paris)를 위해 특별히 창작된 <르 파르크>는 초연 이후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현대 발레 레퍼토리의 고전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해 왔다. ‘사랑의 의미’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관객에게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프렐조카주의 이 작품은 2월 내내 가르니에 극장에서 이어졌고, 파리 국립 오페라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들이 대거 주역으로 출연했다. 필자는 아망딘 알비송(Amandine Albisson)과 마르크 모로(Marc Moreau)가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 2월 16일 공연을 관람했다.

<르 파르크>는 특정한 서사나 인과관계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대신 프랑스식 정원(jardin à la française)의 질서정연한 공간을 배경으로, 사랑이 생성되고 변화하며 성숙해 가는 과정을 일련의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장면들로 제시한다. 가지런히 정돈된 산책로와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공간은 절대왕정 시대의 사회적 규범과 통제를 상징하고, 무용수들의 몸은 그 틀 안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첫 시선과 망설임, 유혹의 제스처는 모두 절제된 구조, 다시 말해 사회적 규범의 틀 속에서 시작된다.
앙줄랭 프렐조카주《르 파르크》, 아망딘 알비송(Amandine Albisson)과 마르크 모로(Marc Moreau) 출연 / 사진. © Maria-Helena Buckley / OnP
앙줄랭 프렐조카주《르 파르크》, 아망딘 알비송(Amandine Albisson)과 마르크 모로(Marc Moreau) 출연 / 사진. © Maria-Helena Buckley / OnP
관객에게 다소 낯설고 의문을 불러일으키며 등장하는 네 명의 ‘정원사’는 이 발레의 전개를 이끄는 중요한 장치다. 공상과학 영화의 인물들을 연상시키는 이들은 무대를 가로지르며 연인들의 관계를 관찰하고, 장면에 리듬과 긴장을 부여한다. 그러나 거의 알레고리적 존재에 가까운 이들은 결코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사랑이 개인의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규율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 형성되고 조정된다는 사실을 은근히 환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프렐조카주의 발레에 사용된 음악 역시 이러한 이중성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음악은 고전적 우아함과 명료한 구조를 통해 작품의 토대를 이루고 사랑의 본질과 낭만성을 표현하는 반면, 고란 베이보다(Goran Vejvoda)의 현대적 음향은 고전적 전개 도중에 삽입되어 균열과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같은 음악적 대비는 사랑이 단순한 조화나 감미로운 합일에 머무르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불안과 갈등을 동반하는 과정임을 암시한다. 작품은 가벼운 연애의 유희(marivaudage)에서 점차 정복과 헌신, 그리고 감정을 전적으로 내맡기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다양한 국면을 통과하며 전개되며, 음악은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는 서사 장치로 기능한다.

발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

발레 <르 파르크>에는 총 세 차례의 2인무, 즉 파 드 되(pas de deux)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으로 꼽히는 장면은 주인공 커플이 회전 동작과 함께 격렬한 입맞춤을 나누는 세 번째 파 드 되로, 발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의 느린 악장에 맞춰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이 하나의 존재가 되는 이 장면은, 수십 년에 걸쳐 대중문화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인용되어 온 명장면으로 <르 파르크>의 시그니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 장면을 누가, 어떻게 연기하는지에 대한 기대는 공연 전부터 객석의 열기를 뜨겁게 달군다.
앙줄랭 프렐조카주《르 파르크》, 한나 오닐(Hannah-O-Neill)과 제르멩 루베(Germain-Louvet) 출연 / 사진. © Maria-Helena Buckley / OnP
앙줄랭 프렐조카주《르 파르크》, 한나 오닐(Hannah-O-Neill)과 제르멩 루베(Germain-Louvet) 출연 / 사진. © Maria-Helena Buckley / OnP
2월 16일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 아망딘 알비송과 마르크 모로는 절제와 해방 사이를 오가는 작품의 정서를 설득력 있게 구현해냈다. 이들이 선보인 마지막 파 드 되에서는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 위에 섬세한 감정선이 더해지며 관객의 깊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사랑의 ‘비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이 장면에서, 두 무용수는 반복되는 회전을 통해 서로에게 완전히 몸을 맡기고, 중력에서 벗어난 듯한 상태를 자연스럽게 연출해냈다. 그 위로 흐르는 모차르트의 선율은 사랑을 통한 상승의 감각을 이끌며, 두 사람의 움직임은 사랑이 더 이상 사회적 규범이나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무아지경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이 장면은 여전히 강렬한 감동으로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르 파르크》 트레일러]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안무, 무대 디자인, 의상과 조명이 그려낸 상징성

앙줄랭 프렐조카주는 프랑스는 물론 국제 무대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안무가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독자적인 안무 언어를 구축해 왔다. <르 파르크>에서 그는 단단한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 급격한 박자 전환과 유려한 흐름을 교차시키며 사회적 억압과 개인적 욕망 사이의 긴장을 신체 언어로 표현한다. 이러한 대비는 미학적 장치인 동시에 인간 내면의 갈등을 형상화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정원’이라는 공간이 지닌 상징성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 정원은 17세기 프랑스 살롱 문화를 연상시키는 장치이자, 미로처럼 복잡한 인간 감정을 은유하는 공간이다. 에르베 피에르(Hervé Pierre)의 의상은 18세기풍의 레오타드와 레딩코트 등으로 시대적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한편, 색채와 선을 절제해 현대적인 중립성을 유지한다. 자크 샤틀레(Jacques Chatelet)의 조명은 공간을 섬세하게 조각하며, 장면마다 정원을 꿈과 현실의 경계에 놓인 친밀한 장소로 변모시킨다.
앙줄랭 프렐조카주《르 파르크》, 아망딘 알비송(Amandine  Albisson)과 마르크 모로(Marc Moreau) 출연 / 사진. © Maria-Helena Buckley / OnP
앙줄랭 프렐조카주《르 파르크》, 아망딘 알비송(Amandine Albisson)과 마르크 모로(Marc Moreau) 출연 / 사진. © Maria-Helena Buckley / OnP
사랑은 완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

<르 파르크>의 진행과 흐름이 눈부시게 시적인 장면들로 형상화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모차르트의 음악이 큰 몫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출신의 여성 지휘자 조에 제니오디(Zoé Zeniodi)가 지휘한 파리 체임버 오케스트라(Orchestre de chambre de Paris)가 연주한 모차르트 음악은 세련된 우아함으로 드라마의 흐름을 단단하게 지탱했다.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에 이어서 삽입된 베이보다의 현대 음향이 명확한 색채로 고전적 분위기와 상반되는 대조성을 드러내며 드라마적 긴장에 한몫한 점도 작품의 특징으로 기억에 남는다.

작품의 일부 장면의 분위기가 단조롭고 필요 이상으로 길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기는 했으나, <르 파르크>의 진정한 핵심은 전통과 혁신을 조화롭게 결합해 시간의 흐름과 인간 감정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는 데 있다. 시선의 교환, 조심스러운 접근과 관능적인 후퇴를 통해, “사랑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결코 완결되지 않는 질문이며, 우리가 끊임없이 되돌아가게 되는 하나의 정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앙줄랭 프렐조카주《르 파르크》, 한나 오닐(Hannah-O-Neill)과 제르멩 루베(Germain-Louvet) 출연 / 사진. © Maria-Helena Buckley / OnP
앙줄랭 프렐조카주《르 파르크》, 한나 오닐(Hannah-O-Neill)과 제르멩 루베(Germain-Louvet) 출연 / 사진. © Maria-Helena Buckley / OnP
고전 발레의 형식미와 현대무용의 실험성을 접목한 안무가

알바니아 출신의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는 프랑스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인물로, 고전 발레의 형식미와 현대무용의 실험성을 결합한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해 왔다. 그는 조르주 발랑신(George Balanchine)의 고전적 전통과 카린 와네르(Karin Waehner), 메르스 커닝햄(Merçe Cunningham) 등 다양한 현대무용 계보의 영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안무 언어를 확장해 왔다. 1984년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한 그는 1996년부터 엑상프로방스에 정착해 프렐조카주 발레단을 이끌고 있으며, 2006년 개관한 파비용 누아르(Pavillon Noir)는 그의 창작 활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로미오와 줄리엣>, <백설공주>, <천일야화>와 같은 대형 서사 작품부터 추상적인 실험작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여 온 프렐조카주는 문학, 시각예술, 현대음악과의 협업을 통해 무용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왔다. 특히 파리 국립 오페라 발레단을 비롯한 세계 주요 발레단과의 협업을 통해 동시대 안무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며, 1990년대 이후 프랑스 무용계의 국제적 확장을 이끈 핵심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파리=박마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