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보석으로 피어난다…'컬러 젬스톤'의 귀환 [민은미의 파인주얼리]
다이아몬드가 ‘정답’이던 시대를 지나
유색 보석이 하이 주얼리의 중심축으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빅3’를 넘어
파라이바 투어멀린, 스피넬 등 부상
유색 보석이 하이 주얼리의 중심축으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빅3’를 넘어
파라이바 투어멀린, 스피넬 등 부상
봄이 오는 모습과 닮았다. 차가운 냉기가 물러나고, 공기의 결이 달라지며, 대지 아래 숨죽이고 있던 색이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겨울이 절제된 무채의 계절이었다면, 봄은 다채로운 색이 되살아나는 시간이다. 최근 몇 년 새 하이엔드 주얼리 시장에서는 컬러 젬스톤이 다시 중심으로 돌아왔다. 유색 보석이 주목받는 이유는 취향이 다층화된 시대에 소비자는 더 이상 똑같은 선택을 원하지 않는 풍조와 무관치 않다. 또한 희소성이 높아 투자자와 컬렉터에게도 매력적이다.
파라이바 투어멀린, 네온 블루
파라이바 투어멀린의 대표적인 색상은 네온 블루다. 블루 그린과 바이올렛 블루까지 스펙트럼에 포함되지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색은 전기처럼 번지는 블루 계열이다. 브라질 파라이바 지역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산지 명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구리와 망간 성분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발색 덕분에, 발광하는 듯한 네온 블루가 된다. 차분한 이미지를 주는 일반적인 파란색 보석과 달리, 파라이바는 그래서 ‘일렉트릭 블루’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산출량이 극히 제한적이다. 선명한 색과 높은 투명도를 동시에 갖춘 원석은 더욱 희소하다. 이 보석이 하이 주얼리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단순히 희소한 색감 때문만은 아니다. 바다의 수평선과 열대의 빛을 동시에 품은 듯한 청명함 그리고 봄 하늘이 가장 맑은 순간의 컬러를 영구히 봉인하고 있어서다.
모거나이트, 오렌지 핑크
모거나이트는 에메랄드와 아콰마린과 같은 베릴 광물에 속한다. 육각 결정 구조 안에 어떤 미량의 원소가 포함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크로뮴이나 바나듐이 녹색을 만들면 에메랄드가 되고, 철이 푸른색을 더하면 아콰마린이 된다. 모거나이트의 망간이 빚어낸 결과는 핑크다. 핑크는 옅은 핑크에서 살구색을 머금은 듯한 오렌지 핑크까지 다양하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핑크라기보다 피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이 특징이다.모거나이트라는 이름은 미국의 금융가이자 보석 컬렉터였던 제이피 모건(J. P. Morgan)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910년대 초 연한 핑크색 베릴이 새롭게 주목받자, 모건의 후원과 공로를 기려 명명되었다. 미국 보석 문화와 컬렉팅 전통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투명도가 높고 비교적 큰 원석으로 산출되는 경우가 많아 볼륨감 있는 하이 주얼리 디자인에 적합하다. 은은하지만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유다. 모거나이트의 부드러운 색조와 로즈 골드가 만났을 때 색의 온기가 배가된다. 모거나이트의 부드럽게 번지는 오렌지 톤은 봄날 오후의 공기처럼 따뜻하고 여린 감성을 담고 있다.
스피넬, 강렬한 레드와 핑크
스피넬은 레드를 포함하여 블루, 핑크, 오렌지, 퍼플, 그레이까지 폭넓은 색의 스펙트럼을 지닌다. 핑크 스피넬은 장미색 같은 로지 핑크와 마젠타에 이르기까지 미묘한 톤을 지니며, 부드러움 속에 생기를 머금는다. 최근에는 쨍한 핑크 스피넬이 젊은 컬렉터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강렬함과 우아함을 모두 품는다는 점에서 레드와 핑크 스피넬은 오늘날 컬러 젬 시장에서 가장 역동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쿤자이트, 파스텔 핑크
쿤자이트는 파스텔 핑크의 섬세한 색감을 보여주는 보석이다. 스포듀민 광물의 분홍색 변종으로 연한 핑크에서 라일락 기운을 머금은 보랏기가 도는 퍼플까지 부드럽게 펼쳐진다. 과시적이기보다는 은은하고, 강렬하기보다는 공기를 물들이듯 번지는 핑크색을 지니고 있다. 주얼리에 사용되는 다양한 유색 보석 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보석이다.
봄이 오는 소리처럼 보석이 다시 저마다의 온도와 서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컬러 젬스톤의 귀환은 보석의 언어가 다시 힘을 얻는 순간이다. 파라이바 투어멀린의 네온 블루, 모거나이트의 오렌지 핑크, 스피넬의 강렬한 레드와 핑크, 쿤자이트의 파스텔 핑크 등이 하이엔드 주얼리의 정점에 서 있음은 희소성의 재해석이며, 취향의 확장이다.
올 봄 주얼리는 더 이상 하나의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당신은 어떤 색으로 피어나고 싶은가. 다채로운 젬스톤의 색 위에서 숨죽였던 감각이 새싹처럼 고개를 든다. 그 순간 보석은 계절이 된다.
민은미 작가(주얼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