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50주년을 앞둔 가수 김수철이 미술가를 선언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그의 첫 전시 <소리그림>을 3월 29일까지 만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세 가지를 염두에 둡니다. 색의 조화, 에너지, 소리가 그것이지요. 이 세 가지를 느끼며 그렸던 그림을 전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나에게 들리는 소리를 매일 그려왔어요. 봄이 오는 소리, 슬픈 소리, 기쁜 소리, 어느 행성의 소리, 외계인의 소리 등 여러 소리를 그린 그림들입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기타를 처음 잡았고, 그전에는 그림을 그렸다. 음악가가 되었어도 매일 아침 달력 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은 그에게 매일 쓰는 일기였고, 명상이었다. 그간 2평 남짓한 작은 부엌에서 온몸을 뒤틀며 그림을 그리다가, 친구들의 권유로 첫 전시를 열고, 작업실도 마련했다. 그림 일기를 물감으로 매일 그린지도 30년이 넘었다니 놀랍다. 수십 년을 그려온 일기 그림도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모든 그림을 보면 그때의 마음을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부모가 자식을 못 알아보겠어요? 그동안 그린 그림이 1천점 넘지만 모두 어떤 마음으로 그렸는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팬데믹 때부터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작은 부엌에서 200호짜리 그림도 그렸답니다. 그간 그린 그림이 너무 많고 집안에 물감 냄새가 진동을 해서 수장고에 넣으려고 후배 사진가에게 부탁해 아카이브 사진을 촬영했는데, 후배들이 전시를 권해서 이렇게 전시까지 하게 됐네요. 내 DNA는 뭐든지 좋아하면 놓지를 않아요.”
그의 작품은 비현실적이고 대작이 많기에 첫 전시를 상업적인 갤러리에서 하기보다 미술관에서 하고 싶었다. 그러다 예술의전당 전시 심사를 통과하게 되니, 재벌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전시 기획을 맡은 이동국 전 경기도박물관 관장과 1천여점의 작품 중에서 1백여점을 골라 전시를 하게 된 것.
“관람객은 이번 첫 전시를 보고 ‘이런 그림이 바로 김수철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데뷔를 계기로 앞으로 계속 전시를 하며 작가로서의 궤적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오늘은 그냥 편안하게 ‘이것이 김수철 그림이구나’, ‘김수철 그림 참 다양하네’, ‘그림들이 엉뚱하네’라며 즐겁게 전시를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간의 행보를 보면 그는 천재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7년 가수로 데뷔한 이후, 가요 12장, 국악 26장 등 총 38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고래사냥>, <서편제>, <태백산맥>과 같은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작곡했고, 88서울올림픽 전야제, 2002년 한일월드컵 전야제, 2012년 여수 EXPO 개막식, 2018년 평창올림픽 정상회의 공연 등 국제행사의 음악도 도맡아 왔다.
특히 1995년 팔만대장경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념 다큐멘터리 <팔만대장경> 음악을 만들기 위해 술과 담배를 끊은 것은 유명한 일화. 그는 지금도 그는 술, 담배, 커피, 육류를 안 먹는 금욕주의자다.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서 그날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칠순을 앞둔 나이에도 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는 그의 마음가짐을 짐작할 수 있다. 작곡이 잘 안 풀릴 때도 그림을 그려 돌파한다. 그의 악보에도 여기저기 그림이 그려 있다.
“김수철 작가는 영원히 천진난만한 아이이자, 초현실 세계에 사는 광인(狂人)입니다. 외계인과 교신하는 샤먼이자 선정(禪定)에 빠진 선승이기도 하지요. 미래의 예술은 그의 그림과 같이 소리가 그림이며, 그림이 소리인 문명의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일 거라고 봅니다.”
음악가이자 예술가 김수철 / 사진=필자 제공
소리와 그림은 장르가 다른데, 김수철이 소리 그림을 지난 50여년간 그려왔다는 것에 대해 이 관장은 높은 평가를 했다. 김 작가는 반복과 리듬의 그림 언어로 청각을 시각화해서 문자 영상 시대를 보여주고 있는 것.
“나의 그림은 소리의 드러냄입니다. 평소 머릿속과 가슴에 넣어둔 소리를 온갖 색채와 형태로 표출합니다. 캔버스가 또 다른 악보인 셈이지요. 붓으로 그리거나 물감을 뿌리면서 심장에서 올라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캔버스에 쏟아붓습니다. 내 상상의 수원지는 음악도 그림도 모두 틈틈이 그려놓은 그림일기입니다.”
우주와 외계인의 소리를 그리다
전시의 시작과 끝은 자화상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경쾌한 색깔의 자화상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김수철을 닮은 간결한 그림들과 더불어 작업할 때 사용했던 몽당연필로 만든 그림도 재미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비디오 테이프로 만든 얼굴 작품도 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작곡했던 자신에 대한 은유다. 이동국 전 관장은 전시는 크게 4개 파트로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소리 푸른(The Sonic of Blue)>입니다. <소리 푸른>은 천지자연의 소리이며, ‘푸를 청(靑)’의 아크릴 브러시 획면으로 무한 반복한 중첩이 특징입니다. 점ㆍ선ㆍ면이 하나로 용해된 그의 획면은 서화 필획(筆劃)의 새로운 버전이지요. 아크릴 물감으로 유화의 깊은 멋을 보여주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던 그의 붓질이 전시장을 휘감고 있습니다. 폭포와 같은 푸른 그림이 시원해 보입니다. 두 번째 장은 <수철 소리(A Life, Audible)>입니다. 굽은 획면이 아크릴 브러시로 마구 움직이고 있는데, 갓 태어난 아이의 옹알이나 자웅동체의 아메바 같기도 합니다. 말과 글자를 해체해서 소리를 그림의 원점으로 되돌리고 있어요. 인간의 소리를 그린 이 장에서는 30여년간 그가 그렸던 그림 일기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획으로 한 번에 그린 그림들도 매혹적이지요.”
“마지막 네 번째 장은 <소리 탄생(Sonic Genesis)>입니다. 다른 행성에 사는 외계인 친구와의 대화 소리를 그린 연작인데, 내가 이 그림들을 설명하면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라고요(웃음). 우주와 여러 행성의 소리를 내가 개발한 특별한 방식으로 그렸습니다. 자세히 보면 내 모습을 그려 넣은 작품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