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새로 올라 있는 영화 <토고>는 사실 오래된 영화이다. 2019년, 코로나 전이다. 그걸 생각하면 정말 공룡시대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또, 그래서인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느낌을 준다. 2011년에야 토고가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개로 선정된 것이 모티프가 됐던 영화이다. 시나리오가 쓰이고 2019년에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그래도 꽤 긴 기간인 8년이 소요된 셈이다. 원래는 디즈니+ 오리지널이었지만, 올 1월부터 넷플릭스 독점으로 바뀌었다. OTT 간에도 판권이 넘나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토고>는 개 영화이다. 동물, 판타지, 자연, 어드벤처 물로 분류된다. 알래스카의 도시 ‘놈(Nome)’이 배경이다. 놈은 알래스카의 최대 도시 앵커리지나 페어뱅크스에 비해 현격히 작은 도시지만(인구 3,699명) 중요 항구로 꼽힌다. 19세기 말인 1890년대에는 알래스카 최대 도시였다. 금 때문이다. 모래사장에서도 금이 채굴될 만큼 골드러시(Gold Rush)가 일었다. 앵커리지에서 육로로 1,850km 거리에 있다. 사실상 문명 외(外)권에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아이디타로드’라는 이름의 장거리 개썰매 경주 파이널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디타로드는 한때 얼어붙은 알래스카의 유일했던 내륙통로(트레일) 이름이다. 이곳 원주민 언어로 ‘Iditarod’는 먼 거리란 뜻이다. 혹한으로 유명하다. 겨울엔 대체로 영하 32도이다. 1989년 1월 27일에 영하 48도 기록이 최고이다. 이런 배경 사실들을 알고 영화 <토고>를 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떠오른다. 혹한, 개썰매, 금광산업의 흥망, 그리고 이주민의 역사 등등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노르웨이와 벨기에,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못 사는 사람들’이거나 ‘한몫을 챙기려는’ 사람들이었다.
영화 <토고>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노르웨이계 미국인인 레온하르트 세팔라(윌렘 대포)는 몰이꾼, 즉 썰매견 조련사이다. 그는 (자기 생각에 여기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콘스탄스(줄리앤 니콜슨)와 자식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내는 워낙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기만 하는 강아지 한 마리를 예뻐했지만, 세팔라는 이 녀석을 (훈련하기에는 너무 작고 약골이어서) 가망이 없다며 두 번이나 분양을 시도한다. 그러나 탈출의 왕자라는 칭호처럼 강아지는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세팔라는 곧 강아지가 썰매견으로서, 그것도 리더독(맨 앞줄에서 달리는 개)으로서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름을 ‘토고’라 지어준다. 토고라는 이름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함대를 격파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에서는 그냥 ‘장군 토고’처럼 작지만 용맹하다는 뜻으로 짓자고 세팔라가 콘스탄스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토고>의 주된 줄거리는 도시 놈에 퍼진 디프테리아를 막기 위해 혈청을 구하는 험난한 여정, 그 위대한 인간 승리와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과 동물은 얼마든지 교감할 수 있고 진심과 진심이 통하면 인간과 인간이 해내는 일보다 훨씬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을 동물, 특히 개와 함께라면 이뤄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토고>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1925년 도시 놈에 디프테리아가 퍼진다. 디프테리아는 아이들을 죽이는 질병이다. 혈청 한방이면 된다. 그런데 혈청은 페어뱅크스 철도병원에 있고, 거기서 네나나라는 도시로 보낸다고 하는데 놈에서는 네나나까지만도 왕복 1,000km 이상 되는 거리다. 당연히 기차나 비행기로 가야 한다. 그러나 1925년이고, 비행기는 지금의 비행기가 아니다. 게다가 대형 눈사태까지 일어난 때였다. 시속 100km급 허리케인 강풍을 동반했다. 체감온도는 영하 65도까지 떨어진 데다 화이트아웃(눈보라로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는 상태) 현상이 벌어진다. 실제로 세팔라는 토고가 이끄는 썰매견과 함께 절벽 아래로 추락할 뻔한다. 그는 토고에게 자신이 잘못 명령해도 네가 알아서 멈추라고 말한다. 화이트아웃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세팔라는 토고에게 이제 네가 스스로 가라고 말한다. 세팔라는 썰매 위에서 선 채로 거의 혼절한다. 그가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토고와 썰매견이 자신을 목표 지점 가까이 데리고 온 뒤였다.
디프테리아 혈청 공수는 총 20개의 썰매견 팀으로 이루어졌다. 각 팀이 50km씩을 달렸으며 세팔라와 토고 팀만이 425km를 달렸다. 더욱더 대단한 것이, 세팔라는 달리는 도중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굉음처럼 퍼지는, 얼어 있는 바다, 일명 ‘노턴 사운드(Norton Sound)를 건너갔다는 것이다.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육로를 엄청나게 우회해야 한다. 세팔라는 토고에게 무서워하지 말고 달리라고 소리친다. “잘하고 있어 토고”, “용감해 토고”를 반복해서 외친다. 토고는 오로지 주인의 말만을 믿고 앞으로, 또 앞으로 달린다. 영화 <토고>는 바로 이 장면을 가장 공들여 찍었다. 거의 CG가 전부처럼 보이지만 실사가 많이 섞여 있다. 거기에 디지털 효과까지의 삼단 공법을 절묘하게 섞은 것이다.
영화 <토고>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일단 실사는 (윌렘 대포가 대역 없이 직접) 캐나다 앨버타주 로키산맥의 고지대에서 썰매견들이 질주하는 장면을 찍었다. 여기에 특수 설비로 제작된 안전판 위에서 바다 위 얼음이 솟구칠 때 세팔라와 썰매견들이 흔들리는 모습들을 연출했으며 화이트아웃은 디지털 시각효과를 통해 이루어낸 것이다. 동물 소설로 유명한 전설의 좌파 작가 잭 런던(1876~1916)이 상상만 했던 장면을 21세기의 영화는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낸 셈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월트 디즈니가 가장 잘하는 점이기도 하다.
원래 이 영화는 토고가 전달한 혈청을 마지막 릴레이로 받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 준 ‘발토’라는 썰매견 그리고 발토를 이끈 조련사 군나르(숀 벤슨)에게 모든 공로가 돌아갔고 이것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후세 사람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 고증에 고증을 거쳐 토고와 세팔라의 명예를 회복시킨 것을 기념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같은 팩트체크는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해냈으며 ‘역사상 가장 용감한 동물 10마리’ 기사를 통해서였다.
영화 <토고> 스틸컷 / 사진출처. IMDb
토고가 세팔라와 함께 노턴 사운드를 건넌 것은 12살 때이다. 노견이다. 토고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 가면서도 주인을 위해, 무엇보다 주인과 함께하기 위해 죽을 고비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개 영화, 동물영화가 감동스럽고 위대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인간은 수시로 개를 내다 버리고 심지어 인간은 인간을 버려도 개는 결코, 결단코, 인간을 버리지 않는다. 그 점을 깨달으면 인간도 숭고해진다.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는 『동행』이라는 소설에서 개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본성은 무계급주의에 있음을 갈파한 적이 있다. 개들은 자기 주인이 부자이든 거렁뱅이이든,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백인이든 네이티브 아메리칸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세팔라는 뒤늦은 각성을 통해 자신을 질책한다. “훗날이 돼서야 토고가 달리고 싶은 본능보다는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는 사랑이다. 영화 <토고>가 궁극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도 사랑이다. 들어라 인간들이여. 개에게서 사랑과 신의를 배우리로다. 2019년 영화지만 요즘 세상에 더욱 빛나는 가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 눕방일지가 주저 없이 선택한 이유이다.
P.S. 영화에서 토고 역을 맡은 강아지는 실제로 토고의 직계 후손이다. 이름은 디젤이다. 세팔라는 이후 브리더로 나섰고 현재 세팔라 시베리안 허스키는 유명 견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