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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잠잠한데 왜 나만"…체감 변동성 극심해진 이유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겉보기 지수는 잠잠한데
개별 종목·섹터 롤러코스터
알고리즘·헤지펀드·레버리지 ETF 등
펀더멘털보다 수급·모멘텀이 가격 좌우
'안전판' 역할 자사주 매입도 약화
개별 종목·섹터 롤러코스터
알고리즘·헤지펀드·레버리지 ETF 등
펀더멘털보다 수급·모멘텀이 가격 좌우
'안전판' 역할 자사주 매입도 약화
요즘 미국 증시가 정말 롤러코스터 같습니다. 기술주 중심의 급락과 반등이 반복되면서 체감 변동성이 극도로 커졌기 때문입니다. 아마존,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공룡 기업들이 하루에도 10% 안팎씩 오르내리는 일이 다반사가 됐고, 섹터별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엔 증시가 급락할 때 시장 전체가 한 방향으로 쏟아지는 경향이 더 짙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섹터 간 상관관계가 낮아지고 개별 종목의 변동성은 극대화되는 방식으로 시장의 작동 방식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시장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 큰 변화가 없어도, 수면 아래에서 시장을 움직이는 기계적인 메커니즘 때문에 투자자의 체감 변동성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무라증권의 크로스애셋 매크로 전략가인 찰리 맥엘리곳은 추세(모멘텀)에 불을 붙이는 알고리즘 기반 펀드와 헤지펀드들, '단타'에 최적화되고 있는 옵션 시장과 레버리지 ETF 등이 모두 결합한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모멘텀 먹고사는 알고리즘의 역습
개별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첫 번째 요인은 알고리즘 펀드입니다. 이런 펀드들은 추세를 추종하는 전략(CTA), 변동성에 맞춰 레버리지를 자동 조절하는 전략(Vol Control) 등에 따라 움직이며 분초 단위로도 시스템 매매를 합니다.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가격 변동성과 모멘텀에 따라 기계적으로 사고판다는 뜻입니다.이런 시스템 매매 펀드들은 추세가 강해질 수록 포지션을 더 싣고, 변동성이 높아지면 기계적으로 레버리지를 줄입니다. 하락장이 시작되면 자동으로 더 빠르게 매물을 쏟아내면서 하락폭을 더 키우는 '자기 강화적인' 구조를 만듭니다.
맥엘리곳은 "이런 전략을 따르는 펀드가 많아지면서 시장 구조가 '모멘텀을 먹고 사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펀더멘털보다 수급과 추세가 시장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는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최근의 급락 뒤에도 이런 알고리즘 펀드들이 일부 역할을 했습니다. 그동안 변동성이 낮은 국면에서 이 펀드들은 모멘텀이 좋은 테마 주식들을 많이 사들였고, 포지션이 더이상 매수 여력이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커졌습니다. 맥엘리곳은 급락장이 시작되기 직전 노무라증권 내부 퀀트 자금 총 노출도가 5년 전 데이터와 비교했을 때 상위 99.7% 수준이었다고 말합니다. 골드만삭스가 분석한 헤지펀드 데이터 기준으로도 5년 내 100% 백분위에 달했습니다.
'시장 중립' 헤지펀드의 진화
헤지펀드의 주류 전략이 변한 것도 과거보다 개별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원인입니다. 10~15년 전까지 헤지펀드의 주류는 전통적인 롱숏 펀드였습니다. 특정 산업·종목에 대한 펀드매니저의 의견과 재량적 판단을 바탕으로 좋은 기업은 사고(롱), 나쁜 기업은 팔되(숏) 시장 순노출도는 플러스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이제 주류가 된 ‘멀티 스트래티지 펀드’는 다릅니다. 여러 전략을 동시에 굴린다는 뜻의 이 펀드는 롱숏 전략뿐 아니라 옵션 트레이딩, 이벤트 드리븐 등 다양한 전략을 하나의 펀드 안에서 동시에 굴리는 플랫폼형 헤지펀드입니다. 시장 방향에 베팅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수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시장 중립' 펀드라고도 부릅니다. 맥엘리곳에 따르면 최근 5~10년 간 헤지펀드로 유입된 신규 자금의 80%가 이 멀티스트래티지 펀드로 갔다고 합니다.
맥엘리곳은 "과거엔 모든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전반적으로 좋아지고(리스크 온) 나빠지는(리스크 오프) 식의 현상이 있었지만, 이젠 시장 중립적인 멀티 스트래티지 펀드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자금과 레버리지를 장악하고 있어 더이상 그런 현상을 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합니다. 기술주는 폭락해도 에너지, 소비재, 기초소재 같은 그동안 소외됐던 섹터는 크게 오르는 장세가 최근 빈번하게 연출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개인투자자 도구가 변동성 폭탄으로
개인 투자자들이 애용하는 레버리지 ETF와 제로데이트(0DTE·당일 만기) 옵션 역시 개별 종목의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됩니다.특히 하락장에서 레버리지 ETF는 기초자산이 떨어질 때 그 하락폭을 키우는 역할을 합니다. 레버리지 ETF는 매일 종가 기준으로 약속한 배율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죠. 가령 기초자산이 된 종목이 5% 하락하면 2배 레버리지 ETF는 -10%를 맞추기 위해 장 막판에 주식을 더 팔아야 합니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지난 한 주 동안 레버리지 ETF의 리밸런싱 때문에 발생한 매도 규모만 369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 당일 만기 옵션은 미국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점점 더 인기가 많아져 이제 전체 옵션 거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거래소들은 더 많은 수수료 수입을 위해 당일 만기 옵션 시장의 종류와 만기일(주 1회→주 3회)을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변동성 폭탄이 더 자주 터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사주 매입 '안전판' 약화
과거 하락장의 안전판 역할을 했던 자사주 매입도 약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지난 15년 간 압도적으로 가장 큰 매수 수요이자 변동성 억제제 역할을 해왔습니다.하지만 'AI 군비 경쟁' 국면에 들어서면서 이 자사주 매입 여력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S&P 500 자사주 매입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빅테크와 대형 AI 기업들은 AI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설비투자(CAPEX) 경쟁에 뛰어들었고 잉여 현금을 자사주 매입보다 인프라 투자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들이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직접 주식을 사들여 하방을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완충 장치가 약해지면서 이제 시장은 하방 충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습니다.
"버핏이라면 무엇을 살까"
맥엘리곳은 이제 시장의 '평균 회귀'가 단기적으로 잘 작동하지 않는 구조가 됐다고 말합니다. 기계적 매커니즘의 지배력이 커지면서 펀더멘털에 따라 비싼 걸 팔고 싼 걸 산다는 가치 투자의 원칙이 단기적으로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단기 가격은 모멘텀과 수급, 포지셔닝에 좌우되는 장세가 됐기 때문입니다.결국 개인 투자자들도 단기 트레이딩을 할 땐 자금의 흐름과 수급, 모멘텀에 더 기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순환매와 급등락이 반복될 때 어떤 종목과 테마가 추세가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최근 하락장에서도 지지를 받았던 메모리 반도체, 데이터센터 인프라, 전력 설비, 금속·채굴 기업 등의 테마가 그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골드만삭스의 브라이언 가렛 트레이더는 “지금은 AI로 인해 사업모델이 재평가받는 국면의 초입"이라면서 "이 시장에는 여전히 기회가 있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대형 기술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는 때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워런 버핏이라면 무엇을 살까 라는 질문을 던져봐야 할 시장”이라는 겁니다. AI가 주도하는 혁신과 장기 투자 스토리는 여전히 견고하지만, AI 관련주 안에서도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는 장세에서 저평가된 가치주에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아 보인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