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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재판서 판사 조롱하던 변호인들…결국 피해는 국민 몫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가처분 결정 불응시 실효적 강제 방안無
감치 명령, 절차 복잡하고 법관들도 신중
사법부 존중, 법치주의 국가 지탱하는 토대
감치 명령, 절차 복잡하고 법관들도 신중
사법부 존중, 법치주의 국가 지탱하는 토대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왕은 모든 사건을 일일이 재판할 수 없었기에 지역마다 자신을 대신할 재판관을 임명했고, 재판관은 왕으로부터 재판권을 위임받아 왕을 대리해 이를 행사했다. 재판관이 내린 명령은 왕명과 동일한 효력이 있었고, 이를 거역한 자는 단순 불복을 넘어 곧 왕의 권위, 더 나아가 신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엄한 제재를 각오해야만 했다. 이는 재판 절차 진행에 관한 것이든, 실제 결론에 대한 것이든 차이가 없었다.
판결이 곧 '王의 뜻'이던 과거
영미법의 '형평법'(Equity) 전통에서 이는 분명히 드러난다. 영미법엔 정식 재판에 앞서 당사자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말 것을 명하는 '임시적 유지명령'(Temporary Injunction)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과 유사한 제도다. 이는 왕과 법관에게 최대한의 재량권을 부여해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형평법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었다. 법관이 내린 명령을 사건 당사자가 우습게 여긴다거나 위반한다는 것은 애초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법원 명령 불응 빈번…강제할 수단 없어
필자는 법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유독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사건을 많이 담당했다. 변호사가 된 지금도 당사자들 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처분 사건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어렵게 가처분 결정을 받아내는 데 성공해 놓고도 정작 상대방이 이를 이행하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곤 한다. 일반적인 민·형사 재판에선 판결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남이 대신할 수 없는 어떠한 행위를 하게 하거나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가처분의 경우 상대방이 이를 따르지 않더라도 이를 실효적으로 강제할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위반 행위가 있을 때마다 일정한 제재금을 납부하게 하는 '간접강제' 제도가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간접강제 명령에 다소 소극적일 뿐 아니라 그 금액 역시 이행을 담보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방이 아예 간접강제금을 감수하겠다며 버티거나, 어차피 집행할 재산이 없다며 막무가내로 간접강제금 납부에 불응할 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필자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법원의 결정이 무력화되는 경우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사법부 권위,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
고도로 민주화된 탈권위 시대에 새삼 사법부의 권위를 이야기하는 게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사법부의 권위는 더 이상 신이나 왕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법원의 판단이 항상 옳기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법부의 최종적인 결정을 존중하고 따르는 구조 자체가 법치주의 국가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법원의 권위를 부정하면 언젠가 그 사람이 법원 판단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순간에 다툼 중인 상대방이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더라도 이를 제어할 방법은 사라진다. 오늘 법원의 권위를 부정하는 건 내일 법원의 보호를 기대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사법부의 권위가 떨어진 데는 사법부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다. 그렇기에 사법부는 그간의 과오를 성찰하며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동시에 국민들도 단편적인 이해관계에만 의존해 부당하게 사법부를 공격하거나 법원의 판단을 조롱하면, 결국 그에 따른 피해는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법부의 권위는 사법부 자신이 아니라 그 권위를 통해 보호받아야 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