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 및 바이올린, 르노 카퓌송
피아노, 마르타 아르헤리치
첼로, 고티에 카퓌송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Chamber Orchestra of Europe)
베토벤 | 삼중 협주곡
드보르자크 | 교향곡 8번
음악계와 연예계를 넘나들며 클래식 음악을 두루 전파하는 전령사들이 몇몇 있다. 클래식 연주자들을 아티스트의 범주에서만 바라보며 그들에게 예술적 진정성을 요구했던 과거와는 달리, 밀레니엄 시대의 클래식 연주자들은 연예인 뺨치는 화려한 비주얼과 스테이지 매너 그리고 대담한 연주로 대중들을 사로잡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은 스타로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국가적 행사에 참여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며 클래식 공연의 범위를 넘어서 중요하고 굵직한 공공 이벤트에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열린 르노 카퓌송의 50세 기념 공연 / 사진. ⓒCaroline Doutre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Renaud Capuçon)과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 형제는 클래식 음악계와 연예계를 넘나들며 다양하고 폭넓은 활동을 펼치는 대표적인 클래식 아티스트이다.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카퓌송 형제의 이름만큼은 잘 알 정도로 이들은 사회적 공인이 되었다. 지난 1월 27일 샹젤리제 극장. 프랑스의 국민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의 50세 생일을 맞이하여 두 형제와 그들의 젊은 시절 데뷔를 지원했던 음악계의 대모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 카퓌송 형제는 신인 시절 아르헤리치를 통해 음악계에 알려졌던 아티스트들이며 아르헤리치와 오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Chamber Orchestra of Europe)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여전히 견고한 연주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아르헤리치와 스타급으로 성장한 카퓌송 형제가 한 무대에서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으로 관객들과 짜릿한 감흥을 함께 나누었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 르노 카퓌송은 협연과 지휘를 겸하며 더더욱 주목받았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열린 르노 카퓌송의 50세 기념 공연 / 사진. ⓒCaroline Doutre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세 솔로 악기가 대등한 관계를 이루면서 오케스트라와 섬세한 균형을 이루는 것을 작품의 본질로 한다. 세 솔로 악기가 이렇듯 대등한 역할을 지닌 협주곡은 서양 음악사에서 그 유례가 없다. 첼로의 솔로로 시작되는 작품의 도입부에서 고티에 카퓌송의 윤기 있고 깊이 있는 음색이 무대와 객석을 따뜻하게 감싼다. 이어서 형 르노의 바이올린이 그 흐름을 이어받고, 마침내 피아노가 합류한다. 세 악기의 비중이 고르게 배분된 이 협주곡에서,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를 견제하듯 밀고 당기는 장면은 마치 형제간의 유쾌한 배틀을 연상케 했으며, 피아노 왼손의 베이스와 바이올린이 주고받는 대목에서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며, 작품의 구조적 정교함이 선명히 드러난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손끝에서 피아노는 완전히 살아 숨 쉬었다. 자유롭고 건강한 사운드, 시원한 타건은 마치 샴페인처럼 청량하다. 이날 샹젤리제 극장의 슈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 역시 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하며, 그녀의 음악적 에너지를 고스란히 반영해 냈다. 명목상 지휘는 르노 카퓌송이 맡았지만, 무대 위에서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의 음악적 흐름과 방향성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간 존재는 단연 아르헤리치였고, 언제나 그렇듯 건반의 여제는 이번에도 피아노라는 악기를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만들어냈다.
(왼쪽부터) 르노 카퓌송, 마르타 아르헤리치, 고티에 카퓌송 / 사진. ⓒCaroline Doutre
스타 바이올리니스트의 50세를 기념하는 특별 공연에는 폭넓은 클래식 팬들이 객석을 가득 메웠고, 극장 안에는 시종일관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으며,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은 이날 무대의 신조인 ‘형제애’와 ‘깊은 우정’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라르고 악장에서 쉼 없이 론도 악장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자연스러운 호흡은, 세 아티스트가 공유하는 오랜 경험과 깊은 신뢰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두 형제와 아르헤리치는 각자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며 균형 있게 분담했고, 그 결과 삼중 협주곡은 매우 입체적인 다이내믹을 지닌 음악으로 완성되었다. 클래식 음악의 정상들이 나눈 이번 무대는 ‘우정’과 ‘신뢰’가 가득했다.
르노 카퓌송은 2부 순서에서 바이올린 활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에 담긴 체코의 대지와 자연의 정기를 살려내었고 샹젤리제 극장은 약 50명 규모의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의 세련된 사운드에 걸맞은 음향을 들려주었다. 그간 간헐적으로 지휘대에 올랐던 르노 카퓌송은, 이번 50세 기념 무대를 통해 지휘자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을 선언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며 새로운 도약을 암시했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열린 르노 카퓌송의 50세 기념 공연 / 사진. ⓒCaroline Doutre
폭넓은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음악가인 만큼, 르노 카퓌송은 지난 몇 년간 언론에서 몇 차례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공공 문화 정책, 음악가의 사회적 역할, 위기 상황에서의 예술 활동과 관련한 그의 발언과 입장이 일부 매체와 음악계 내부에서 다양한 해석과 반응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러한 논란들은 그의 예술적 가치나 연주자로서의 성취보다는, 오늘날 클래식 음악가가 사회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느냐는 보다 폭넓은 질문을 환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다양한 논쟁 속에서도 연주와 음악적 활동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일관된 태도를 이어가며 존재감을 더욱 공고히 해오고 있는 르노 카퓌송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