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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의 팬데믹을 겪기 이전에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써야 하고, 집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밖을 나갈 수 없는 생활을. 병에 걸리면 그간의 동선이 공개되고 일정 기간 타인과의 만남을 최소화한 채 격리되어야 하는 규범을. 그러나 우리는 그 방 안에서의 시간을 겪었고, 다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같다. 믹스커피를 몇백 번 저어서 쫀득한 달고나라떼를 만들기도 하고, 뜨개질을 하며 책을 읽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 보통 안락한 휴가보다는 감금과 불안의 시간으로 기억되기 때문일 터다.

“사람에겐 몇 개의 방이 있는 걸까요. 그 방이 모두 어둠으로만 구성된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요. 제게도 많은 방이 있습니다. 아주 어둡고 아주 더러운 방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 방에서 탈출하고 싶기도 하고 탈출하고 싶지 않기도 하단 말입니다.” (136~37쪽)

3년 전 『고독사 워크숍』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이 기억 속에 여전한데 박지영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도 만만찮은 작품이었다. 제목은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불운일지 행운일지 모르겠는 이 말 자체가 우리의 삶과 닮은 듯해 호기심을 자극했다. 파라노이드 바이러스로 새로운 전염병 사태를 맞은 근미래, 동선 공개 때문에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아웃팅 당한 채 실직하게 된 우식의 사정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그가 세 번째 격리 상황을 맞으면서 우연히 읽게 된 ‘격리 전문가’ 조기준의 회고 서사와 교차된다. 기준은 1983년 산속 안전 가옥에서 일곱 살 때부터 10여년간 격리 생활을 하게 된 남자로, 자신이 주변 존재를 모두 죽일 수 있는 ‘전쟁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믿게 되어 여배우 안나의 집 벽장에 숨어 유년을 보낸 사람이다. 미성년자 약취와 감금 사건으로 짐작하며 읽어가다가 보면 자꾸만 개입되는 다른 정보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반전된다. 안가에서 지내며 무료함에 시달리는 소년 조기준의 “소름이 끼쳤으면!”이라는 반복적인 외침이 정말로 읽는 나에게 소름으로 다가오게 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박지영 장편소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한겨레출판, 2025)
박지영 장편소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한겨레출판, 2025)
이 소설은 펴자마자 빠른 속도로 책장이 넘어가 금세 끝에 다다랐는데, 문득문득 생각나서 다시 펼쳐보곤 했던 책이다. 우식의 이야기만, 혹은 기준의 이야기만 따로 읽어보기도 했는데, 그러면 또 다른 느낌이 있는 레고 같고 퍼즐 같은 소설이었다. 결국 조기준의 회고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그는 끝내 밖으로 나와 자신의 인생을 기록하고 편집했다. 마지막 장의 소제목 “방 탈출 레벨 업 가이드”의 표현 그대로, 어떤 성장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같은 챕터에서 우식은 방 탈출 카페에서 나올 수 있었던 공략법을 이렇게 표현한다.

“저는 누가 밖에서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해보지도 않고. 저는 진짜 나가고 싶은지 저에게 다시 물었고, 간절함을 확인한 후 손잡이를 잡고 가운데 버튼을 누르며 돌렸어요. 문이 열리더군요. 아주 간단히.” (207쪽)

박지영 소설의 매력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에 이 문단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허구의 인물이라 해도 빛으로 나아갈 수 있게, 조금 더 자라날 수 있게 남겨두는 작은 틈새.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도록 밝은 문틈을 열어둔다고 생각했다.

최지인 문학 편집자•래빗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