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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의 조건
박종훈 SC제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정부와 유관 기관의 강한 정책 추진은 ‘한국 주식은 원래 싸다’는 체념 섞인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상법 개정을 통한 이사의 충실 의무 강화, 배당소득 관련 세제 개편 논의, 그리고 외환시장 24시간 개방 추진과 영문 공시 확대 같은 인프라 개선 조치는 시장에 분명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최근 글로벌 투자자 사이에선 한국 정부의 발표를 의심하거나 정책 방향에 맞서려 하지 않는 기류가 뚜렷하다. 과거에는 정부의 환율 안정화 대책이나 증시 부양책에 회의적이던 외국인들이 정부 발표에 귀 기울이며 이를 투자의사 결정의 핵심 상수로 두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정책 신뢰도 제고는 고환율 환경에서도 외국인이 자금 유출을 과도하게 확대하지 않고, 한국 시장을 신뢰할 수 있는 투자처로 인식하는 강력한 기반 역할을 하고 있다. 정책 신뢰가 지수를 끌어올리고 지수 상승이 곧 국가 정책의 실력에 대한 프리미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된 셈이다.
기업들의 분전 또한 큰 역할을 했다. 인공지능(AI) 슈퍼사이클 속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입증한 반도체 기업과 방산, 조선 등 전통 제조업의 괄목할 만한 턴어라운드는 지수 체급을 올렸다. 여기서 핵심은 제도 변화가 실적 개선을 ‘시장 레벨업’으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이익 전망 개선과 멀티플(실적 대비 주가 수준) 재평가가 동시에 일어나는 선진국형 모델이 드디어 한국에서도 작동하기 시작했다.
1%대 저성장 기조 속에서 지수만 앞서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거품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게 인색한 평가인 듯하다. 지금의 흐름은 ‘말의 밸류업’에서 ‘행동의 밸류업’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당한 재평가이기 때문이다.
이제 코스피 5000은 새로운 도전으로 나아가는 기준선이어야 한다. 코스피지수 5000을 넘어서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열어가는 필요조건은 추가적인 ‘선언’이 아니라, 정책 변화의 지속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주주 환원이 시장 전반의 규범으로 정착돼야 하고, 불공정 거래에 대한 실효적 제재와 제도 변화의 일관성이 신뢰를 누적해야 한다. 신뢰는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행동이 반복될 때 형성된다.
코스피 5000이 ‘행동의 결과’였다면, 그 이상은 그 행동을 지속 가능한 제도로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가능해질 것이다.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진정한 비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