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미국 개입도 안 통한 환율…'복병'은 따로 있다?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베센트 美 재무장관 이례적 구두개입
환율 꼴찌 다투는 원화·엔화에 제동
일본엔 "건전한 통화정책 필요" 경고
엔화, 40년래 최저 수준 근접
원화 약세와 동행성 짙어져
美, 일본은행 금리 인상 요구
엔화 급격한 강세로 돌아서면
원달러 환율, 위험자산도 변동성
환율 꼴찌 다투는 원화·엔화에 제동
일본엔 "건전한 통화정책 필요" 경고
엔화, 40년래 최저 수준 근접
원화 약세와 동행성 짙어져
美, 일본은행 금리 인상 요구
엔화 급격한 강세로 돌아서면
원달러 환율, 위험자산도 변동성
이런 상황에서 지난 14일(현지시간)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이례적으로 원달러 환율 하락에 제동을 거는 개입성 발언(구두 개입)을 내놨지요. 구윤철 부총리와 만난 직후 “외환 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원화 약세는 한국의 견고한 경제 펀더멘털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직접 성명을 낸 겁니다. 비록 이틀 만에 거의 원상복귀했지만, 회담 전 1478원을 넘었던 환율은 단번에 한때 1462원까지 급락했었습니다.
다만 베센트 장관의 원화와 엔화에 대한 발언은 결이 살짝 달랐는데요. 13일 카타야마 일본 재무성 장관과 만난 직후 "과도한 환율 변동성은 본질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엔화 약세에 베팅한 투기 세력에 경고를 날린 건 같았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일본 측에) 건전한 통화정책 수립과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문구도 넣었습니다. 근본적으로 극심한 엔화 약세를 해소하려면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인식을 재차 드러낸 셈입니다. 베센트 장관은 지난해부터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
미국의 이례적 통화 개입, 왜?
미국 재무부 장관이 한국과 일본의 통화 약세에 제동을 건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우리나라에 대해선 의도가 투명합니다. 한국으로부터 3500억 달러의 직접 투자를 약속받은 입장에서 원화의 과도한 약세는 투자 집행에 불리하기 때문입니다.양국은 한국이 연 200억 달러 한도의 대미 투자 펀드를 집행할 때 '외환시장 불안을 야기해선 안 된다'고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외환시장이 지금처럼 불안하다면 연간 200억달러 펀드 조성은 어렵다"며 "MOU 상으로도 환율 변동성이 큰 경우 펀드 조성을 안 할 수도 있다(고 합의가 돼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그럼 일본 엔화에 대한 압박은 왜일까요.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적당한 달러 약세'가 엔화가 주도하는 아시아 통화의 훨씬 더 심각한 약세 때문에 잘 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정부의 핵심 경제 전략은 관세와 약달러, 저금리로 무역적자를 줄이고 미국 내 제조업 투자를 늘리자는 것입니다. 그 결과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110에 육박했던 ICE 달러지수는 한때 96 선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본 통화·국채 가치 동반 하락은 물론 사나에노믹스(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경제 부양 정책) 영향입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주도하는 대규모 재정 팽창,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억제 등의 스탠스가 조기 총선 이후 더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관측이 최근 엔화 약세와 일본 장기채 금리 상승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지나친 엔저가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경제 환경 조성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판단이 베센트 장관의 구두 개입, 그리고 한국에 대해선 없었던 "건전한 통화 정책(사실상 금리 인상)" 요구로 이어진 것입니다.
원화 추락 뒤 엔화의 그림자
BIS(국제결제은행)이 세계 64개국을 대상으로 매달 집계하는 실질 실효 환율을 보면 일본 엔화는 지난해 11월 기준 63위, 원화는 60위였습니다. 우리 원화의 추락도 충격적인데, 엔화는 더 심했습니다.
원화 약세가 엔화 약세 때문이었다(인과 관계)고 할 순 없지만 상관 관계는 강했다는 뜻입니다. 한국은행 역시 1월 환율 상승분 중 원화 단독 약세 요인이 25%, 나머지는 엔화 약세와 달러 강세, 지정학 리스크가 75%였다고 분석했습니다.
"신중했던 일본은행, 변할 수도"
엔화가 심리적 저항선인 달러 대비 160엔에 근접하면서 일본 정부도 엔화 방어를 위해 연일 구두 개입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160엔은 과거 일본 정부가 실개입을 단행했던 저지선이기도 합니다. 월가에서도 실개입 가능성과 그에 따른 후폭풍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하지만 약발은 거의 없습니다. 시장은 160~165엔 선을 '개입 가능 구간'으로 보면서도 엔화 약세에 대한 베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노무라 인터내셔널 런던 외환 옵션 트레이딩 데스크에 따르면 1억달러 이상 대형 옵션 거래에서 달러엔이 165엔까지 오를 것(=엔화 하락)이라고 베팅하는 콜옵션이 풋옵션의 2배 이상 많습니다.
결국 근본적으로 엔저를 저지하려면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에 따라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도 최근 꾸준히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일본은행이 기존의 신중했던 입장에서 벗어나고 있다"면서 금리 인상 속도를 연 1회에서 연 2회(반기별)로 올릴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다음 금리 인상 시점은 7월이 되겠지만, 엔화 가치가 추가로 하락하면 인상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엔캐리 리스크, 예전만큼 크진 않아도
일본은행이 정말 시장 예상보다 빠르게 금리를 올리거나 매파적 신호를 보낸다면, 지난 2024년 8월 전 세계 증시를 강타했던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일본은행은 오는 23일 통화정책회의 결과를 발표합니다. 이번엔 동결이 확실시되지만, 시장 예상보다 매파적인 기조를 드러낸다면 그것만으로 엔화 상승, 위험자산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연초 뜨거웠던 중소형주 랠리에도 차익실현의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재무장관까지 나서 엔화 환율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아시아 통화 약세가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시사합니다. 엔화의 강세 전환은 우리 원화 환율에도 중요한 분기점이지만, 무엇보다 위험 자산 전반에 쏠린 자금 흐름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연초 증시 낙관론과 1월 효과에 힘입은 랠리 이후 시장은 점점 하락 요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투자자들도 일본은행이 시장 예상보다 빠르게 매파적으로 입장을 전환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변동성이 단기적으로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리스크 관리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