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최근, 어쩌면 처음으로 대중에게 모습이 드러난 것은 <Sr.>(크리스 스미스, 2022)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일 것이다. <Sr.>는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와의 관계를 그리는 일종의 인물 다큐멘터리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러나 짐작건대 아마도 많은 이들이 알지 못했던 것은,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가 1960년대와 70년대를 대표하는 아방가르드 영화 감독이자 반문화운동(the counterculture movement)의 아이콘이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그는 뉴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언더그라운드 영화(New York Underground Film Movement)의 중추였으며 폴 토마스 앤더슨을 포함한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멘토이기도 했다.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 필자 제공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 필자 제공
무엇보다 시니어의 영화는 ‘발칙’했다. 맨해튼의 매디슨 에비뉴에 밀집해 있는 광고 에이전시를 배경으로 한 풍자극, <퍼트니 스워프>(Putney Swope, 1969)는 한 광고 회사의 유일한 흑인 임원, ‘퍼트니 스워프’의 대표직 승진을 통해 기업의 인종차별 문화와 지나친 상업주의의 병폐 등을 신랄하고도 과장된 표현으로 고발한다. 예컨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광고 에이전시 '진실과 영혼 주식회사(Truth and Soul Inc.)'는 총기나 주류, 담배 광고 의뢰를 거절하는 대신 시리얼, 에어컨, 화장품 등 문화적으로 ‘무해한’ 상품에 주력하지만 이를 위해 그들이 만드는 광고는 기괴하고 음탕하기 그지없다. 예를 들어 귀여운 인형이 등장하는 시리얼 광고에 나체와 성행위가 가득한 식이다.
영화 <퍼트니 스워프> 포스터. / 필자 제공
영화 <퍼트니 스워프> 포스터. / 필자 제공
흑백과 컬러를 넘나드는 이 초현실적인 작품으로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는 언더그라운드 영화 씬에서 일약 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늘 저예산에 친구들이 등장하는 ‘게릴라 제작’에 가까웠지만 영화의 주제와 이야기적 소재만큼은 (대기업의 스폰서쉽을 받는) 주류 영화에서 절대 할 수 없는, 필요하고도 당위적인 것들이었다. 그의 다음 작품 <그리저스 팰리스>(Greaser’s Palace, 1972, 아들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데뷔작이기도 하다)는 예수의 부활을 소재로 한 웨스턴 영화로 전작과 마찬가지로 풍자와 코미디가 주를 이룬다. 이야기는 ‘제시’라는 캐릭터가 폭군 ‘그리저’가 지배하는 한 마을에 당도하며 시작된다. 그는 그리저가 운영하는 마을의 살롱에서 그리저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죽인 그의 아들 대신 가수로 일하게 된다. 그는 마을에 머물면서 아픈 병자들을 고치고, 물 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등 갖가지 기적(?)을 행한다.

명백히 성경에 명시된 예수의 기적을 코믹하게 혹은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불경스럽게 풍자한 이야기였지만, 영화의 메시지는 전작 <퍼트니 스워프>가 그랬던 것처럼 당시 워터게이트 이후로 미국 사회에 팽배했던 권력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그것이 초래한 세대적인 냉소주의였다. 다시 말해 시니어의 영화는 극단적이었지만, 지적이었다. <그리저스 팰리스>는 뉴욕의 작은 극장에서 개봉했음에도 타임지와 같은 하이브라우(highbrow) 정론지의 평론가들로부터 극찬받았다. 타임지의 제이 칵스는 이 작품을 시니어가 만든 작품 중 “가장 재미있고 용기 있는 영화”로 평가함과 동시에 “그해 만들어진 미국영화 중 가장 모험적인 영화”로 기술하기도 했다.
영화 <그리저스 팰리스> 스틸 컷. / 사진. © IMDb
영화 <그리저스 팰리스> 스틸 컷. / 사진. © IMDb
닉슨 사태와 베트남 반전 운동의 물결이 지나간 80년도에도 시니어는 꾸준히 영화를 제작했다. 그러나 혁명의 기운이 쇠락한 시대의 시니어 영화에는 공허한 코미디와 패러디만 있을 뿐, 그의 명성을 빚어낸 전작들이 가진 선동적인 메시지가 부재했다. 그럼에도 그는 80년도에만도 네 편의 작품을 연출했고, 90년도에 들어서 역시 텔레비전 에피소드를 포함 세 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는 그 어떤 기준으로도 – 예컨대 흥행과 유명 영화제 수상 여부, 개봉 및 상영의 스케일 등 – 거장으로 언급될 수 없는 인물이지만 분명 한 시대를, 혹은 한 분야를 대표했던 감독이었다. 그는 68혁명과 워터게이트,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이 잠식한 미국 사회의 단면을 가장 재미있고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인물이었다. 또한 뉴 할리우드 시네마와 블록버스터 시대로 새로운 부상기를 맞은 할리우드의 저 반대편인 뉴욕에서, 그리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제작한 도발적인 프로젝트로 지식층과 대중문화 아티스트를 매료시킨 장본인이었다.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 필자 제공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 필자 제공
현재 일본영상자료원에서는 뉴욕의 다른 실험 영화들을 포함한 시니어의 <그리저스 팰리스>의 특별 상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50여년이 흐른 현재 도쿄에서 그의 작품이 상영되리라는 것을 시니어는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이쯤 되면 더 이상 그에게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라는 레이블은 오명인지도 모르겠다. 한 시대와 도시를 대표했던 감독은 이제 전 세계에서, 전 시대를 대표하는 전방위적 아티스트로 재탄생을 준비 중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