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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보다, 메트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미술관이 최고입니다
[arte] 임지영의 예썰-재밌고 만만한 예술썰 풀기
예술, 그냥 보는 것과 응시하는 것은 다르다
여유 있는 시간과 유연한 공간 속에서
능동적 주체로 예술을 향유해보자
예술, 그냥 보는 것과 응시하는 것은 다르다
여유 있는 시간과 유연한 공간 속에서
능동적 주체로 예술을 향유해보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도 묻고 싶었다. 메트는 너무 거대한 규모로 여러 번 길을 잃었다. 하루 만에 보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 선택과 집중으로 다니는데도, 만보쯤 걷자 앉을 데만 눈에 들어왔다. 네시간쯤 지나자 아름다운 예술이고 뭐고 내 다리 내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유명한 미술관 좀 와보겠다고 열몇시간을 비행기 타고 날아와서 그 현장에 있는데도 딱 네시간 만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예술 향유는 하지 못하겠구나 씁쓸한 진실을 알아챘달까.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들도 예상과 달리 하나같이 피로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왠지 모를 배신감도 느꼈다. 패트릭 브링리처럼 그윽한 눈으로 사유하는 경비원을 바란 건 아니지만, 책은 가끔 잘못된 환상을 심는다.
그냥 보는 것과 응시하는 것은 다르다. 슥 쳐다보고 지나가는 것과 가만히 멈추어 누리는 것은 다르다. 그 시간의 품질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그림 앞에 어떤 질문을 갖고 있는가. 그 질문에 어떻게 응답하는가까지가 진짜 향유의 과정이다. 그러려면 조건이 있다. 시간의 여유와 공간의 유연. 넓어진 마음이어야 느긋하게 예술이 스며든다. 그러므로 처음 몇 번은 혼자 다니는 게 좋고, 너무 먼 데보다는 가까운 데가 좋고, 한 점을 느리게 보는 게 좋고, 명화보다 동시대 미술이 좋다. 그런 전시에는 대체로 사람도 없어서 향유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의 탐색은 먼 데 가지 않아도 여행 효과를 준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나 홀로 존재의 고독은 내면의 힘을 길러준다. 요즘 시대를 반영한 현대 미술은 탁월한 통찰력으로 내 마음을 더 잘 투영해준다. 그래도, 전시하면 인상주의 명화지! 얼리버드 공구로 친구들이랑 같이 가야지! 유명하다니 멀어도 내가 한번 봐줘야지! 대체로 우리는 이렇게 유행처럼 예술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리 보는 게 맞나 갸우뚱하면서 굿즈 몇 개 사 오는 걸로 만족하면서. 물론 그리 해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고.
하지만 미술관을 그렇게만 쓰기에는 너무 아깝다. 한 발 더 본질로 깊이 들어가 보는 것, 능동적 향유의 주체로 나아가 보는 것, 그게 필요한 시점이 온다. 생경한 분위기에 나를 놓는 것, 새로운 관점에 나를 두는 것, 가슴 뛰는 경험에 나를 던지는 것, 이 모든 것들을 한 번에 할 수 있으므로. 바로 그 전시, 내가 좋아하는 그림 한 점 앞에서. 전시회에서 적극적으로 맘에 들어온 한 점을 고르면 내 상태를 알게 된다. 내내 허허실실했는데 마음은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이기도 하고, 맑음인 줄 알았는데 터너 폭풍우 치는 바다에 서 있기도 하지.
그래서 미술관에 가는 일은, 놓치고 있는 나를 만나러 가는 일이다. 알아채기 쉽지 않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먼 나라 북적북적한 유명한 미술관에서는 잘하지 못한다. 대신 서울시립미술관에 가면 해볼 수 있다. 국현보다 규모는 작지만, 여러 전시들이 알차게 구성되어 다리 아프지 않고 보고 누리기에 좋다. 지금 <최재은: 약속>전과 <근접한 세계>전, <천경자 상설전> 등이 열리고 있는데 각각 다 너무 재밌다.
어느새, 불안한 내 마음은 가만해지고 평안해져 있다. 오늘 내가 고른 작품엔 지금 나의 마음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네. 끄덕끄덕, 메타인지의 시간. 미술관은 이렇게 활용하면 된다. 단지 남들이 다 가니 가는 곳이 아니라, 나의 성장 시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추운 날엔 특히 더 좋다. 따뜻하고 드넓은 공간에서 여유 있는 산책과 향유, 한 번에 다 된다. 오르세보다, 메트보다 우리에겐 가까운 미술관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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