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핫’했던 얼굴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본 눈
[arte] 김선경의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들
영국 런던의 국립 초상화 미술관
영국 런던의 국립 초상화 미술관
초상화 미술관은 1856년에 역사적 인물들의 얼굴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취지로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국회의사당과 정부 기관이 모여 있는 웨스트민스터 주변에 있었다. 그러다가 1896년에 트라팔가 광장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의 컬렉션은 특정 시기의 화풍이나 매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뛰어난 예술가가 그린 작품만 모으는 것도 아니다. 이 미술관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누가 그렸는지가 아니라 누구를 그렸는가이다. 초대 운영위원회가 세운 원칙이었다. 그 결과 컬렉션은 왕실과 귀족, 주요 정치가와 군인, 예술가와 사상가 등 ‘영국의 얼굴’들의 초상이 주로 포함하고 있다. 의미 있는 인물을 담았다면 회화는 물론이고 사진이나 조각도 수집했다.
1층에는 최근에 수집한 초상화들을 모아둔 전시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영국 유명 밴드 원 디렉션(One Direction) 출신 가수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1994- )를 마주했다. 한때 전 세계의 10대 소녀들의 가슴을 뛰게 한 스타일스의 사진을 미술관에서 마주치게 될 줄이야. 그의 초상이 유난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너무나 동시대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SNS를 통해 이미 수없이 소비된 이미지가 오랜 초상화와 같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곧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미술관의 벽에 걸린 다른 인물들 역시 그 시대에는 가장 핫한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사는 이들의 얼굴 역시 언젠가 초상화에 담겨 어느 우아한 건물 벽에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내가 현재라고 느끼는 이 시간도 언젠가는 기록되고 분류되는 과거가 된다는 사실 때문이지 않았을까?
시대순으로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초상화를 그리는 형식의 변화도 느낄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초상화는 어두운 배경 앞에 인물을 배치하고 얼굴을 또렷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보통 인물의 시선은 마치 우리가 여권 사진을 찍을 때처럼 정면을 향했다. 누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 그것이 오랫동안 초상화가 맡아온 중요한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초상화가 얼마나 진실되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지금의 포토샵 기술처럼 당시에는 화가들의 손질로 조금 더 아름답게 표현되기도 했을 것이다.
과감한 색의 사용은 존스가 바셀의 움직임과 에너지에서 느낀 인상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다. 바셀이라는 인물을 ‘정확히’ 재현하기보다 그가 지닌 생동감과 리듬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얼굴을 닮게 그리는 것만이 초상화의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작가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가 그 인물의 얼굴만큼이나 또렷하게 남는다. 버네사 벨(Vanessa Bell, 1879-1961)이 그린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 초상도 그렇다. 그림 속 울프는 안락의자에 몸을 맡긴 채 혼자만의 생각 속에 머무는 듯 보인다. 얼굴은 또렷하지 않고 윤곽이 부드럽게 흐려져 있다. 이 초상은 위대한 작가의 얼굴을 보여주기보다 가까운 사람이 그를 조용히 바라본 순간을 남긴다. 그렇기에 이 그림은 울프에 대한 정보보다 감상의 결과에 가깝다.
영국 국립 초상 미술관은 인물들을 따라 역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초상 뒤에 때로는 은은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작가의 시선이 남아있다. 이 시선을 함께 읽어낼 때 더 재미있게 미술관을 즐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