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나라를 향한 걱정을 ‘부끄러움’이라는 시어로 노래한 민족시인 윤동주 선생. 그의 정신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히지 않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부끄러움’은 양심에 기초
합니다. 오랜만에 탄 버스가 청운동의 윤동주 문학관을 지날 때 문득, 시인의 부끄러움은 사실 양심이었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수도가압장 터의 물때와 흔적이 남은 윤동주문학관 / 사진. © 김현호
수도가압장 터의 물때와 흔적이 남은 윤동주문학관 / 사진. © 김현호
오래전 뉴욕 맨해튼 5번가의 한 보석 가게 앞을 지났을 때, 영화의 제목이기도 했던 그 장소에서 한 배우를 떠올렸습니다. 바로 전설적인 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Kathleen Hepburn)입니다. 사진가 카쉬(Yousuf Karsh)의 작품 속에서 질끈 묶은 머리에 영원한 미소를 띠고 있는 오드리 헵번은 떠나는 날까지 인류애를 실천했던 것으로 유명하죠. 10대 시절에는 나치에 저항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레지스탕스 활동을 펼쳤다는 기록이 있고 동갑내기였던 안네 프랑크에 대해선 일종의 부채의식을 가졌다고도 전해집니다. 대배우의 마음속에는 항상 양심이 존재했던 모양입니다.

염치와 양심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선생의 혜안은 다양한 분야에서 빛을 발합니다. 비교적 최근 저서인 『양심』의 경우 본문도 마음을 울리지만 어쩐지 꾹꾹 눌러쓴 서문이 참 매력적입니다. 염치와 양심에 관한 학자의 견해를 대중들도 알기 쉽게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최재천 선생은 ‘양심냉장고’와 『소년이 온다』처럼 누구나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사례로 ‘양심’에 관해 명쾌한 설명을 해냅니다.

그러니까 ‘양심냉장고’는 바로 이 장면이죠. 30여 년 전 한 TV 프로그램이 ‘차량 정지선 준수’를 주제로 방송을 기획한 적이 있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아무도 정지선을 지키지 않자, 방송을 포기하려던 제작진은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깜짝 놀랄 결과를 얻게 됩니다. 진행자들이 횡단보도 앞 정지선을 지킨 차량을 세우고 창문을 내리자 놀랍게도 어눌한 말투의 장애인 부부가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작진은 그들에게 왜 신호를 지켰냐 물으니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늘 지켜요” 『양심』의 서문에서도 이 일화를 언급합니다.

최재천 선생은 『소년이 온다』 가운데 ‘4장 – 쇠와 피’ 부분의 한 문단을 통째로 인용합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최재천 선생의 서문을 읽다가 저도 오랜만에 『소년이 온다』를 다시 펼쳐 ‘양심’을 읽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시민과 무명의 독립투사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불의와 폭력에 온몸으로 맞서며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들에게는 한 가지 큰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양심입니다. 누구나 양심에 따른 행동을 실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도 극한의 상황에서 선뜻 용기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비교적 평온한 일상에서도 종종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만약 나에게 그런 시간이 온다면?’ 하고 말이죠. 양심에 관한 작은 이야기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최후의 결전지 옛 전남도청사 / 사진. © 김현호
518 민주화운동 최후의 결전지 옛 전남도청사 / 사진. © 김현호
95점과 100점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를 시작한 여름 저녁, 4학년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국어와 영어 시험을 봤다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국어·영어 시험에서 각각 95점과 100점을 받아왔다는 것이 설명의 요지였습니다. 기분 좋은 말투로 격려하니, 아이가 강조하려던 것이 점수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원래 최초의 채점에선 두 과목 모두 100점이었다는 것이죠. 건네어 받은 시험지를 확인하면서 선생님이 국어 한 문제를 잘못 채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선생님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문제는 제가 틀린 것인데 정답을 맞힌 것으로 잘못 채점하신 것 같아요”라고 말이죠. 이에 선생님은 평가를 95점으로 정정해 주면서 “마음은 이미 100점”이라며 칭찬해 주셨다고 아이는 제게 말했습니다.

이 ‘양심’ 있는 행동에 대해서는 단순히 칭찬으로 끝날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팔을 높이 치켜들어 손뼉을 맞대고는 “100점보다 더 큰 95점을 받아왔구나. 이건 숫자의 차원을 넘어선다”라며 격려했습니다. 당시 속으로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우리 애가 이렇게 정직한 행동을 해내다니’ 하며 놀랐고, 요즘도 가끔 그 생각을 떠올리면 뭉클합니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서울 한 청과물 도매시장에서 단감, 토마토, 대파 등을 산 아내는 ‘암산으로 제시된 가격’에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사장님, 거스름돈을 3천 원 더 주셨어요. 이거 다 합하면 1만 5천 원어치가 아니라 1만 8천 원이에요”라며 솔직하게 계산하는 것이었는데요. 이때에도 다시 한번 100점과 95점 사건이 떠올라 흐뭇했습니다. 양심 있는 태도는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공동선(共同善)을 향한 삶, 지구를 지키는 사람

초등학교 1학년 막내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이었습니다. 차량이 골목길에 접어들었을 때 아이는 한 할아버지가 수레에 종이상자를 가득 올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아빠, 저 할아버지는 지금 뭘 하고 계신 거야? 찻길이 위험한데?”라고 묻기에 “저렇게 거리를 정리해 주는 분들이 있어서 도시는 항상 깨끗하단다”라며 이야기를 매듭지으려 하자 아이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아, 저 할아버지는 ‘지구를 지키는 사람’이구나. 나 저 모습을 많이 봤어. 나 알아”라고 말했습니다.

‘지구를 지키는 사람’은 어벤져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이웃들이라는 것에 대해 어린이들은 참 잘 아는 모양입니다. 그 이후로 수레를 끌고 있는 분들을 만나면 더욱 숭고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한번은 청소도구를 잔뜩 실을 수 있는 전동 자전거를 끌고 ‘기동대’라는 귀여운 별칭으로 동네를 누비는 환경미화 공무원들로부터 유사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지키는 사람과 살리는 사람, 공동선(共同善)
지구를 지키는 사람 / 사진. © 김현호
지구를 지키는 사람 / 사진. © 김현호
‘공동선(共同善)’이라는 개념을 어렴풋하게 이해한 것도 그즈음이었습니다. 우연히 읽었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에도 바로 이 ‘공동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가 암살 직전 가졌던 연설에서 청소 노동자의 존엄과 공동선을 연결한 점을 샌델 교수는 인용했는데요.

“언젠가 우리 사회는 청소 노동자들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죠. 따져 보면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의사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질병이 창궐할 테니까요. 모든 노동은 존엄합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시작된 ‘기여적 정의’가 우리를 이렇게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공동선에 기여할 때만 완전한 사람이 되며, 우리가 한 기여로부터 우리 동료 시민들의 존경을 얻는다”

그러니 공동체를 지탱하고 지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아이들의 분석은 아주 오래전부터 진리로 계승되어 온 것이죠.

맑아지는 그 음악

오누키 타에코의 음악을 사카모토 류이치가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한 ‘도쿄 비요리(Tokyo Biyory, 도쿄 맑음)’는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연주곡입니다. 이 음악을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아이들(세상의 모든 아이)과 약자들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카모토 류이치는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면서 동시에 환경 단체를 세우고 핵발전소 건립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환경운동가였습니다. 특히 2011년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던 동일본 대지진 이후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환경운동에 앞장서기 시작했는데요. 사카모토 류이치를 움직인 동력도 바로 ‘양심’이었을 것입니다. 이미 작곡가로서 모든 성취를 이룬 상황에서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공동선을 실천했던 것인데요. 세속적인 가치를 뛰어넘는 명장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양심’을 떠올렸습니다.

양심의 시인을 기리는 추모 공간과 <소년이 온다>의 안팎에서 우리를 잇는 상징의 장소 광주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윤동주와 사카모토 류이치, 마틴 루터 킹, 오드리 헵번, 지구를 지키는 수많은 이들이 했던 것처럼 공동선에 기여하기 위해 희생하는 삶은 좀처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다소 개운치 않은 100점을 받기보다 차라리 정직한 95점을 선택하는 것처럼 아주 작은 실천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난히 양심에 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겨울 저녁입니다.

김현호 칼럼니스트
518 민주화운동의 상처를 간직한 아시아문화전당 / 사진. © 김현호
518 민주화운동의 상처를 간직한 아시아문화전당 / 사진. © 김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