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를 외운다는 것은 '기억'하는 게 아니라
작품과 그 작곡가를 더 '알아가고 사랑하는' 과정
“악보도 놓지 않고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놀랍게도 이 비난은 위대한 여성 피아니스트의 역사를 시작했으며 고귀한 음악성과 천재성을 갖추었던 클라라 슈만이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연주했을 때 터져 나왔다. 로베르트 슈만의 부인으로서보다 타고 난 피아니스트, 매력적인 악상을 지녔던 작곡가로서의 면면이 더 알려져야 할 클라라가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이유는 한 가지, 악보 없이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클라라 슈만.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음악관과 테이스트에서 양극단에 서 있었던 두 인물이 비슷한 평을 들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인데, 또 한 명의 음악가는 바로 프란츠 리스트다. 등장하는 순간 혼절하는 여성들의 아우성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으며, 흥분한 귀족 여성들이 던지는 보석을 피하기 위해 피아노 뒤로 숨는 일이 흔했던 최고의 스타였지만, 그런 리스트에게도 악보 없이 무대에 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부정적 시각을 지닌 사람들의 의견은 리스트가 다른 작곡가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겸손한’ 자세로 악보를 바라보며 한음 한음 연주하는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자세와 비교하려는 청중들은 평소 유아독존을 자랑했던 리스트의 이미지에 교만함을 추가시켰다. 그 교만함을 더욱 과시하려는 듯, 그는 미리 준비해 온 악보를 연주 전 청중들에게 휙 하고 던지는 ‘퍼포먼스’를 추가시켰다.
피아노의 제왕 리스트가 벌인 획기적인 사건들을 변호하려는 마음이 없더라도, 가히 웅대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그의 음악성과 아이디어들이 ‘도도한 카리스마’라는 외피에 덮여 다소 왜곡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경험하면서 누구나 느끼게 된다. 그는 누구보다도 선대의 문화유산에 대한 중요성과 전통의 흐름에서 나오는 힘을 믿었으며, 자신의 능력을 통해 선배들의 작품에 새로운 빛을 투사해내려는 노력을 쉬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그에 의해 시작된 ‘리사이틀’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살펴보면 그 개척자 정신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1839년 리스트가 로마에 체류할 당시 자신의 작품과 편곡들을 섞어 처음으로 시도했던 ‘홀로 음악회’는 적당한 명칭조차 없는 상태였다. 기획 초기에 리스트 자신이 음악적인 솔리로퀴(Soliloquy), 즉 ‘독백’이라 부르던 혼자만의 무대는 어느덧 ‘암송’의 의미를 지닌 ‘Recital'이라는 제목으로 변했다. 피아노로 암송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팬들이 리스트의 리사이틀과 정식으로 만난 것은 1841년 경이었다. 새로운 전통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암보, 즉 악보를 보지 않고 머릿속에서 외워 연주하는 행위는 단순히 ‘기억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결국 인간의 육체적인 한계와 직결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유독 암보를 강요당하다시피 하는 피아니스트들이 클라라 슈만이나 리스트를 원망하는 것도 지친 지 오래인바, 피아니스트들끼리 모임을 가지면 그중 제일 젊은 사람이 악보를 놓고 연주해야 한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후배가 악보를 보기 시작하면 그 윗사람들이 기억력 쇠퇴를 핑계 대도 큰 비난을 받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긴 한데, 이런 거꾸로의 장유유서가 실현된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를 위해 연주하는 리스트.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피아노 전공자들이 학교에서 실기 시험을 볼 때 가장 큰 이슈 역시 악보를 외우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시험 기간이 되기 얼마 전부터 음대생들끼리의 인사는 으레 ‘악보 다 외웠니?’가 될 정도로, 악보를 보지 않고 긴장 상태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어떻게 하면 암보를 잘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선생으로서 답을 할 때 자주 하는 비유가 ‘지도를 보듯이’이다. 넓은 지역이 나온 지도는 전체 모습을 보는 데 좋지만, 건물이나 산 같은 자세한 모습은 안 보인다. 비행기에서 아래를 바라본 모양도 비슷할 텐데, 좀 더 좁은 지역이 표시된 지도를 보거나, 비행기가 땅에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세밀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지도를 천천히 보고 있으면, 어떤 지역이든 마치 내가 오래 살았던 동네처럼 전체의 모습이 익숙해지기 마련인데, 악보를 외우는 방법도 이와 비슷하다. 우선 작품의 전체적인 모양과 친숙해져야 하고 그 후 점차 구석구석을 알아가는 방법을 취한다.
악보가 아닌 동화나 소설을 외운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래도 모르는 이야기보다는 우리 전래 동화나 유명한 소설 같은 작품이 외우기 쉬운데, 그 이유는 우리가 대강의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건이 언제 나타나고, 주인공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 등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 들어있는 작은 에피소드들을 외우기가 훨씬 쉬워진다. 음악도 대개는 일정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기둥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이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악보를 외우는 학생들이 제일 피해야 할 것은 동서남북의 방향이나 전체 구도를 생각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마치 땅굴을 파는 것처럼 전진하는 방법이다. 열 페이지짜리 곡을 외울 때 이번 주는 앞의 다섯 페이지, 그다음 주는 뒤의 다섯 페이지... 이런 식으로 외우려는 학생들도 있는데, 결국 세 번째 주가 되면 앞부분은 기억에서 다시 지워지고 만다. 전체 줄거리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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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소수의 대가들에게만 국한된 얘기이지만 독주회에서도 악보를 보는 피아니스트들도 있다.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는 언제나 악보를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차근차근 음을 짚어간다. 1월에 내한이 예정되어 있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도 꽤 오래전부터 본인이 손수 이어 붙인 듯한 ‘두루마리식’ 악보를 들고 무대에 등장하는데, 책의 모습이 아니라 종이 뭉치에 가까워 더욱 재미있다. 기억의 보조 수단으로 악보를 보는 것 외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인물도 있는데, 러시아의 전설이었던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가 그 주인공이다. 노년에 들어 악보를 보는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기억력 쇠퇴를 떠올렸는데, 정작 그는 다른 이유를 말했다. “청력에 문제가 생겨 음정을 틀리게 듣는 경우가 생겼어요. 나는 절대음감이 있기 때문에 악보에 있는 음을 찾으려고 자꾸 다른 조로 이동하려는 일들이 벌어졌죠. 그렇게 되면 완전히 엉뚱한 조성으로 벗어나는 사고가 나기 때문에 악보를 보고 ‘그 음대로’ 연주하려는 노력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