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아줌마가 또 땅바닥에서 잠들었어요.”
[차례대로] 조원희 글•그림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_숲』,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_호수』 / 출처. 사계절출판사
[차례대로] 조원희 글•그림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_숲』,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_호수』 / 출처. 사계절출판사
울끈불끈 벌건 근육에 짧게 깎은 머리,
몸 자랑에 신이 나서 팬티 한 장 입고 숲을 누비는 아저씨.
그리고 그 옆, 푸근한 인상의 뚱보 아줌마.

시선을 이끄는 멋진 표지의 주인공인 조원희 작가는 자연과 동물, 그리고 쉽게 지나쳐지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린다.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가 숲과 호수에서 무엇을 할지 궁금증에 급히 그림책을 넘기다 보면, 입가가 천천히 움찔거린다.
조원희 글•그림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_호수』 / 출처. 사계절출판사
조원희 글•그림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_호수』 / 출처. 사계절출판사
성나 보이는 근육 아저씨의 반전 매력과 언제나 평온해 보이는 뚱보 아줌마의 얼굴은 독자들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조화로운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고단했던 뇌가 쉬어간다.
조원희 글•그림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_숲』/ 출처. 사계절출판사
조원희 글•그림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_숲』/ 출처. 사계절출판사
사자나 곰 사냥을 즐기며 격정의 하루를 보낼 것 같았던 근육 아저씨가 아기 새를 돌보고, 투박하게 쿵쿵 걸어 다닐 것 같았던 뚱보 아줌마가 작은 생명체를 섬세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장면은, 이 세상을 단정과 선입견이라는 편협한 아집으로 바라보던 나의 시선을 조용히 흔든다.

Q: 요즘은 특히 ‘뚱보’라는 표현이 조심스럽지요. 이 그림책에서는 너무나 다정하게 쓰였지만요.

“제가 먼저 고민한 건 아니고, 그런 의견들이 있다고 편집자로부터 전해 들었어요. 비하 의도가 없더라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면,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러 대안을 내 봐도 어색하고 이상했어요. 이 이야기는 외모에서 오는 선입관을 작게 깨트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조심스럽게 에둘러 표현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그냥 처음에 자연스럽게 나온 표현이 가장 좋을 거라 생각해서 바꾸지 않았어요.”
- 조원희 작가의 인터뷰 中 (사계절출판사 홈페이지)

‘뚱보’라는 표현에 관한 질문과 작가의 답을 읽게 되었다. 조심해야 할 말과 피할 수 없는 말 사이에서, 작가가 얼마나 고민했을지 고통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그림책은 에둘러 말하는 대신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택한다. 외모에 대한 한 단어를 숨기거나 희석하기보다, 그 단어가 품고 있던 선입견을 다정한 이야기의 힘으로 무너뜨린다. 불편함을 제거하는 대신, 불편함이 스스로 힘을 잃게 만드는 방식이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꿔 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 태도의 변화는 언제나 가장 다정한 장면에서 시작된다는 것 또한 잊지 않기로 해본다.

“IK MOET. 해야 한다.”

“부끄러워해야 한다.
내 생각과 행동에는 언제나 무언가 부끄러운 것들이 있다.
..........(중략)
마치, 물에 들어간 적도 없고 완성된 적도 없이 천천히 녹슬어가는, 항해를 위해 만들었지만 인적 없는 조선소 한편 풀로 뒤덮인 경사면에 놓인 화물선 안톤 안토노비치 호처럼.”
- 『해야 한다』 中 (LOB)
톤 텔레헨 글, 잉그리드 고돈 그림, 안미란 역 『해야 한다』 / 출처. 롭: LOB 인스타그램(@lob_publisher)
톤 텔레헨 글, 잉그리드 고돈 그림, 안미란 역 『해야 한다』 / 출처. 롭: LOB 인스타그램(@lob_publisher)
결연한 눈매와 굳게 다문 입, 단단한 모습으로 독자를 마주하는 아이.
첫 장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독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때로는 할아버지처럼 담담하게, 때로는 경기중 잠시 숨을 고르는 복싱 선수에게 코치가 건네는 다그침처럼.

2026년 문턱에서 마음속 깊이 다짐했던 무언가가 있는 어른이라면, 그러나 그 다짐이 지난해처럼 쌓아 올려지지도 못한 채 모래처럼 쓸려 내려갈 것 같은 불안함과 찝찝함을 안고 있다면 ‘펼쳐봐야 한다.’

네덜란드어인 'IK MOET'와 나란히 적힌 『해야 한다』라는 그림책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어투로 툭툭 뱉어낸다. 중요하다고 집착했던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다가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긴 손톱이 거슬리는 현실적인 순간을 표현하고, 인간의 나약한 의지와 원죄, 죽음과 행복에 관해 이야기한다.
톤 텔레헨 글, 잉그리드 고돈 그림, 안미란 역 『해야 한다』 / 출처. 롭: LOB 인스타그램(@lob_publisher)
톤 텔레헨 글, 잉그리드 고돈 그림, 안미란 역 『해야 한다』 / 출처. 롭: LOB 인스타그램(@lob_publisher)
이 그림책의 그림작가 벨기에 일러스트레이터 잉그리드 고돈(Ingrid Godon)은 그들의 다리와 손, 시선과 웃음,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삶의 순간들을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냈다. 작가의 말처럼, 지나간 일들은 안도감과 죄책감의 오묘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불가역성에 불과하다. 네덜란드 작가 톤 텔레헨(Toon Tellegen)의 철학적 메시지와 잉드리드 고돈의 예술이 어우러진 이 그림책과 함께 2026년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안도감의 할당량이 더 높은 해로 도약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박효진 길리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