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프랑스한국대사관은 지난 12월 15일 저녁 대사관저에서 '제26회 한불문화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1999년 제정된 한불문화상은 프랑스 내에서 한국 문화예술의 가치를 알리고 양국 간 교류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매년 선정한다. 그간 지휘자 정명훈, 피아니스트 백건우, 발레리나 박세은 등이 수상했으며, 2021년부터는 글로벌 럭셔리 그룹 LVMH가 독점 후원사로 참여해 상금과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의 수상자는 루브르 박물관의 지류 보존 실장 아리안 드 라 샤펠(Ariane de La Chapelle)과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불어로 공동 번역한 최경란·피에르 비지우(Pierre Bisiou) 번역가다. 한지와 언어라는 서로 다른 매개로 한국 문화를 프랑스에 전해온 주역들을 만났다.
제26회 한불문화상 시상식. 앞줄 왼쪽부터 최경란 번역가, 아리안 드 라 샤펠 / 사진제공.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제26회 한불문화상 시상식. 앞줄 왼쪽부터 최경란 번역가, 아리안 드 라 샤펠 / 사진제공.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아리안 드 라 샤펠 루브르 박물관 실장
"한지, 과거를 복원하고 미래로 전수될 자산"


아리안 드 라 샤펠(Ariane de La Chapelle)은 1990년부터 루브르 박물관에서 지류 보존을 담당해 온 최고 전문가다. 프랑스 국립문화유산학교(INP) 교수를 역임한 뒤, 2012년부터 루브르의 회화 복원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일본 화지가 표준처럼 쓰이던 유럽 지류 복원 시장에서 한국 한지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한지의 섬유 구조와 보존 특성을 다각도로 분석해 복원 재료로서의 우수성을 확인했으며,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품 복원에 한지를 공식 도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드 라 샤펠에게 한지는 단순 보강재가 아니라 인류의 문화유산을 지속시키는 고도의 기술적 자산이다.

▷한지 복원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한지의 약점이라면 막대한 작업량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입니다. 이를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조차 쉽지 않지요. 한 장의 한지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된 기술과 노하우(savoir-faire), 그리고 섬세한 제작 과정에 엄청난 시간이 투입됩니다. 대량 생산이 불가능한 종이라는 점은 복원가에게 (한지의) 특징이면서 어려운 지점입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희소성과 타협하지 않는 제작 방식은 한지가 서구 복원 시장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작품의 격에 부합하는 정교한 복원 작업이 가능해지면서 서구의 복원 전문가들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라 샤펠은 “한지는 기존에 알던 일반적인 종이와는 차원이 다른 물성을 지녔다”며, 특히 손상에 취약한 서양 명화 복원 작업에 탁월한 안정성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김병준 주프랑스대사대리와 아리안 드 라 샤펠 / 사진제공.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김병준 주프랑스대사대리와 아리안 드 라 샤펠 / 사진제공.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 한지를 지키고 알리는 데 매진하는 이유는요?

"사라져가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한지 안에는 반드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한지는 과거의 예술 작품을 깊이 이해하고 우리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식입니다. 이 귀한 재료를 현장에서 계속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새선 한지 사용을 장려하고 그 가치를 지키며, 한지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라 샤펠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피사넬로(Pisanello)의 작품을 언급하며, "앞으로도 복원이 필요한 경우 한지를 준비해 두고 적극적으로 활용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수상은 한지가 미래 세대에 전수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번역가 최경란·피에르 비지우
"서로 다른 두 언어의 마음을 잇는 시간"


아리안 드 라 샤펠이 한지로 작품의 물리적인 시간을 보전한다면, 최경란, 피에르 비지우 번역가는 한국 문학의 정서를 프랑스에 알리고 있다. 최경란 번역가는 1998년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프랑스에 소개한 이래, 30여 년간 꾸준히 번역 작업에 매진해 왔다. 최 번역가는 “내 방에서 읽고 쓰는 즐거움에 집중해 왔을 뿐인데, 큰 상을 받게 되어 감사하면서도 얼떨떨하다”며 담백한 소회를 전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은 좋은 작품을 찾아내고 프랑스 독자들에게 완성도 있게 전달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한국 작가 최초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최 번역가의 역할이 컸다. 10년 전 출판사 편집자에게 건넸던 한강의 작품 번역 제안이 세월을 거쳐 신작 번역과 세계적 수상이라는 값진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 한국어 정서를 프랑스어로 옮길 때, 피에르 비지우 번역가와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제가 한국어의 미묘한 정서적 맥락과 문화적 함의를 짚어내어 프랑스어 초안을 잡으면, 피에르 비지우 번역가와 긴 대화를 나눕니다. 이 책이 어떤 느낌인지, 가장 정확하고 알맞은 어조와 감성, 정서를 담기 위해서죠. 그 후 비지우 번역가가 번역 작업을 하고, 다시 논의를 거쳐 거듭 수정 작업을 반복하면서 작품을 완성합니다. 좋은 작품을 번역할 때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설렘과 같아서, 새벽에 잠도 안 오고 몰입해서 번역하게 돼요.”
김병준 주프랑스대사대리와 최경란 번역가. 공역자인 피에르 비지우 번역가는 한국에 있는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다. / 사진제공. 주프랑스한국문화원
김병준 주프랑스대사대리와 최경란 번역가. 공역자인 피에르 비지우 번역가는 한국에 있는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다. / 사진제공. 주프랑스한국문화원
▷ 한국어의 미묘한 결을 프랑스어로 옮길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은 무엇인가요?

“어느 문화권에나 관용적인 표현은 있지만, 언어유희는 전달하기 매우 까다로운 영역입니다. 예를 들어 조남주 작가의 작품 중 어머니가 전화로 ‘아버지가 가출(家出)했다’고 전하자, 주인공이 차라리 ‘출가(出家)’를 했다고 하면 믿었을 거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글자 순서만 바뀐 언어유희지만 프랑스어로는 그 맥락과 묘미를 살리기가 불가능에 가깝죠. 고민 끝에 결국 우리 단어를 그대로 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앞으로 프랑스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한국 문학이 있으신가요?

“최근에는 김영하 작가의 '작별 인사'와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기'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작별 인사'는 SF의 형식을 빌려 휴머노이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인간성에 대해 문학적으로 아름답고 슬프게 질문하는 작품입니다. 장르의 틀 안에서 순수 문학의 깊이를 담아낸 이런 작품들이 프랑스에서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것이라 봅니다. '아버지의 해방일기'는 이데올로기의 무거운 상흔을 전라도 방언 특유의 해학과 유머로 풀어낸 작품이고요.”


제26회 한불문화상은 한국 문화가 일시적인 유행을 지나 오랫동안 보존하고 향유할 수 있는 가치로 전해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아리안 드 라 샤펠이 한지를 통해 물리적 보존의 길을 열었다면, 최경란과 피에르 비지우는 번역을 통해 정신적 공감의 토대를 마련했다. 보존을 위한 노력과 마음을 잇는 문장이 더해져 양국의 문화적 연대가 천 년을 가는 한지처럼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파리=김인애 럭셔리&컬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