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개별 자회사로 분리하는 증권시장 구조 개편 법안을 내놓는다. 한국거래소가 여러 시장을 통합 관리하는 대신 개별 자회사가 각 증권시장 특성에 맞는 상장 요건 등 거래제도를 갖출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정부도 코스닥시장 활성화 정책의 하나로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법 개정에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5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이르면 16일 발의한다. 한국거래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그 아래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코넥스 등 각 시장을 자회사 형태로 두는 것이 골자다.
당정 조율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만 김 의원 관계자는 “발의 과정에서 금융위원회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코스닥시장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로 거래소 지주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주 열리는 금융위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해당 내용이 담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 개정안은 사실상 코스닥시장 활성화에 방점을 뒀다. 현재 국내 증권시장은 공공기관 성격의 한국거래소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등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구조다. 거래소 정책이 유가증권시장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코스닥은 유가증권시장의 하위 리그라는 인식이 적지 않았다. 코스닥 상장사의 차별성이 흐려지고 우량 기업 이탈이 이어지면서 코스닥시장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0년부터 작년까지 코스닥에서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한 기업은 52개다. 코스닥이 별도 자회사로 분리되면 기술 중심의 성장기업이 모인 시장 특성에 맞는 상장 요건 및 거래제도 설계, 지수 개발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량 기업 상장 유치를 위한 각 시장 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 의원은 “코스닥이 사실상 2부 리그처럼 취급되다 보니 단기 매매 위주의 시장 구조가 고착화돼 있고 장기 투자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거래소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스닥처럼 혁신벤처 무대로 체질개선…코스닥, 2부리그 탈출 거래소 지주사 아래 '헤쳐모여', 10년 전에도 추진했지만…
여당이 코스닥시장 분리·독립 카드를 꺼내든 것은 자본시장의 ‘만년 2부리그’로 전락한 코스닥을 활성화하려는 포석이다. 내년에 출범 30주년을 맞는 코스닥은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 성장의 마중물로 자리매김한다는 취지로 문을 열었지만 개인투자자의 ‘단타 투기판’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코스닥시장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면 경쟁을 통해 시장 효율성이 커지면서 혁신 촉진과 자본 회수라는 본연의 기능이 강화될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다.
◇거래소를 지주회사로 전환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여당이 추진하는 ‘코스닥 시장 분리’ 법안은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다. 지주회사 산하 각 거래소는 독립적으로 상장법인을 관리 감독한다. 지주회사로 편입하려는 자회사는 금융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거래소 지주회사 아래 코스피, 코스닥, 코넥스, 파생상품 시장 외에 시장 감시 법인, 청산 회사 등을 세울 수 있다.
개정안에는 독립된 시장 감시 법인 등을 지주회사 자회사로 두는 내용도 담겼다. 시장 감시 법인을 비영리 법인으로 설립해 독립된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거래소 지주회사와 각 거래소, 다자간매매체결회사(ATS) 등이 시장감시법인 회원사로 참여할 수 있다.
여당이 이 같은 개혁안을 제시한 건 코스닥시장이 오랜 기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가 연초 이후 73.67%(12일 기준) 뛰는 동안 코스닥지수는 38.21% 오르는 데 그쳤다.
정부와 여당의 증시 활성화 대책도 ‘코스피 5000’ 시대에 초점을 맞추면서 코스닥시장은 소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유가증권시장(1963조원)과 코스닥(340조원) 시가총액은 6배 차이다. 반면 미국 나스닥시장 시총은 4경1831조원(지난해 말 기준)으로, 뉴욕증권거래소(4경3151조원)와 맞먹는다. ‘경쟁 시스템’이 나스닥 성장을 가능케 했다는 게 여당의 시각이다.
◇거래소 간 경쟁 체제 돌입
증권가에서는 코스닥시장이 분리되면 시장별 정체성이 명확해지는 데다 효율성도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코스닥시장이 한국거래소 내 일개 본부 체제로 운용되다 보니 혁신·모험적 시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개별 거래소 체제가 되면 코스닥시장이 혁신기업 성장 단계에 맞는 맞춤 지원 전략을 짤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발 앞서 자본시장을 개혁한 일본 역시 거래소 시장 분리를 통해 질적 개선을 이뤄낸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2022년 한국의 코스닥과 코넥스에 해당하는 자스닥·마더스를 합쳐 그로스마켓으로 재편했다. 자스닥 시절 존재하던 ‘좀비기업’들을 과감하게 퇴출하고 상장 유지 조건을 명확히 해 시장 신뢰를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 경쟁 효과는 대체거래소 도입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이날부터 두 달간 한시적으로 주식거래 수수료를 20~40% 인하하기로 했다. 넥스트레이드(NXT)의 가파른 성장 이후 시장 점유율이 쪼그라들고 있어서다. 넥스트레이드의 지난 10월 기준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13조3158억원으로, 한국거래소의 49.4%를 차지했다.
다만 법안 통과까지는 몇 가지 난관을 해소해야 한다. 2015년에도 금융당국이 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취지로 한국거래소 지주회사 및 산하 7개 자회사 설립 방안을 제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거래소 노동조합의 반발과 함께 실효성 논란이 불거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각에선 사실상 적자 상태인 코스닥시장을 분리하면 독자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 코스닥시장이 분리 독립과 같은 구조적 개혁이 아니면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뢰를 잃어버린 게 사실”이라면서도 “단순히 시장 분리만 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