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은 본디 우울하다. 궂은 날씨, 맛없는 음식, 무뚝뚝한 사람들. 프랑스인들이 화사한 자연을 화폭에 담을 때, 독일인들은 추운 골방에서 악보를 끄적인다. 소리들이 펼칠 향연을 꿈꾸며 비루한 일상을 꾹꾹 애써 참는다.

미술이 공간 속에 거처하는 공간예술(Raumkunst)이라면 음악은 시간을 부여잡는 시간예술(Zeitkunst)이다. 미술이 현재의 무언가를 만들고 구성한다면, 음악은 나중에 펼쳐지고 전개될 재현(再現)을 기다린다. 음악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기에 되레 의젓하고 듬직하다. 순수예술인 이유다. 기다림⸱끈기⸱인내심의 미학은 긺⸱무거움⸱어려움과 통한다. 4시간을 훌쩍 넘는 바그너의 악극(Musikdrama)이 그 대표 선수로 버티고 서있다.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트리스탄 역 테너 브라이언 레지스터와 이졸데 역 소프라노 엘리슈카 바이소바 / 사진 제공.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트리스탄 역 테너 브라이언 레지스터와 이졸데 역 소프라노 엘리슈카 바이소바 / 사진 제공. 국립오페라단
바그너의 악극(오페라)는 지루하고 난해하다.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은 합하면 15시간에 달하고 올곧게 이해하기 힘들다. 반복과 변형이 자꾸만 반복된다. 인물·개념·사건을 상징하는 이른바 라이트 모티브/Leitmotiv, 유도동기(誘導動機)가 끝을 모르고 나아간다. 화성과 관현악이 무겁고 복잡하다. 무조음악(無調音樂) 직전 단계의 낯선 화성에 긴장감 가득한 크로마티시즘(Chromaticism)까지 줄을 잇는다. 크로마티시즘은 반음(半音) 단계의 음을 자꾸 구사함으로써 악곡에 채도(彩度)와 긴장감을 높이는 기법. 보통의 장조·단조의 테두리 안에 없는 낯선 반음을 끼워 넣어 복잡계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농밀함과 신비성을 담보하는 노림수다.

어여쁜 아리아는 극히 제한적이고 나와도 역시나 길다. 가수들을 레치타티보로 쉬어가는 걸 방해하고 끊김 없이 노래하게 하는 서사형을 지향한다. 서사(敍事)는 또 어떤가? 본능·심리·권력·구원·몰락 등 거대한 테마로 일관해 섣불리 접근하기 어렵다. 텍스트는 방대하고 시적·상징적 표현이 그득해 독일어에 대한 이해와 감각 없이는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다.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것들투성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그너 음악은 이런 허들을 극복하면 보상이 큰 세계다. 마치 영화처럼 이야기⸱장면⸱음악이 촘촘히 융합되기 때문에 감상자는 차별화된 고양감을 얻게 된다. 특히, 압도적인 내러티브와 극강의 음악적 구축력은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든 바그너 오페라만의 마력이라 하겠다.
브랑게네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효나 / 사진 제공. 국립오페라단.
브랑게네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효나 / 사진 제공. 국립오페라단.
46세. 창작의 절정에 있던 바그너 음악이 품은 정수(精髓)가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1859)’다. 켈트인의 전설이 모티브로 줄거리는 단순하다. 독약 대신 사랑의 묘약을 마시는 바람에 약혼자를 살해한 남자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종국엔 둘 다 죽음에 이른다는 이야기. 남자는 왕의 친구이자 충복, 여자는 왕의 아내가 되었어야 할 운명의 반전이 극의 양감(量感)을 돋운다. 바그너는 여기에 음악을 입혀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 격렬하고 미묘한 감정선, 해소될 듯 말 듯 하는 긴장감, 에로틱하고 몽환적인 색채, 불안과 갈망이 버무려진 비극적 분위기가 장중하게 어우러진다.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졸데와 브랑게네 사이에 사랑의 묘약이 있다. / 사진 제공.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졸데와 브랑게네 사이에 사랑의 묘약이 있다. / 사진 제공.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노래하는 테너 브라이언 레지스터 / 사진 제공.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노래하는 테너 브라이언 레지스터 / 사진 제공. 국립오페라단
음악학자 다수는 이 작품을 두고 ‘게르만적 영혼의 내면 드라마’라고 했다. 바그너가 추구한 미학(美學), 즉 “독일음악은 내면을 표현한다” “게르만인은 세계와 정신을 음악으로 빚어낸다.”와 상통한다. 켈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지만 바그너식 ‘독일 정신주의’로 재창조된 오페라가 ‘트리스탄과 이졸데’다. 이는 쇼펜하우어의 Erhabenheit(숭고미/崇高美)와도 직결된다. ‘의지’는 ‘고통’. 그 부정(否定)인 ‘죽음’은 해방. 사랑은 의지의 최고 형태로 고통이다. 죽음은 의지의 부정으로 구원이요 해방이다. 이졸데의 최후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초월적 합일, 즉 존재론적 숭고인 것이다. 숭고미야말로 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핵심 정서라 할 수 있다.

2025년 겨울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마침내 이 땅에 발을 디뎠다. 무대·의상·연출을 모두 갖춘 형태로는 국내 초연이다. 독일 일류 스태프와 바그너 전문가수들, 서울시향⸱국립오페라단이 총출동했다. 바다를 우주로, 파도를 은하수로 콘셉트화한 현대적 해석도 신선하다 할 만하다. 헬덴(Helden, 영웅적) 테너와 바그너 소프라노의 위력 외에 건강한 바리톤 레오나르도 이, 엄중한 베이스 박종민, 앙칼진 테너 이재명 등 우리 젊은 가수들의 활약도 큰 수확이었다. 쿠르베날⸱마르케 왕⸱멜로트를 알차게 소화했다. 리하르트 바그너와 클래식 코리아가 마침내 접점을 이룬 노둣돌이라 할 테다.

▶▶[관련 리뷰] 6시간동안 빛난 음악과 아쉬움 남긴 무대와 연출...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마르케 왕을 노래한 베이스 박종민 / 사진 제공.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마르케 왕을 노래한 베이스 박종민 / 사진 제공. 국립오페라단.
전 KBS아나운서, 음악칼럼니스트 강성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