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 오랜만에 한국영화 세 편 <윗집 사람들> (하정우), <콘크리트 마켓> (홍기원), <정보원> (김 석)이 동시에 개봉했다. 독립영화가 아닌 스타 중심의 상업영화가 세 편 이상 한꺼번에 공개되는 것은 올해뿐만 아니라 지난 추석, 설 등의 메이저 영화 시장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물론 변화는 있다. 세 편 모두 제작비 30억원 안팎의 저예산 영화라는 사실과 주로 대작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던 배우들 (허성태), 혹은 (비교적) 신인 배우들(홍경)을 전면에 두는 프로젝트라는 사실이다 (하정우 배우가 직접 연출, 캐스팅을 주도한 <윗집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는 예외다).
극장 관객의 하락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국 영화 세 편의 동시 개봉은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지만 우려가 큰일이기도 하다. 이들이 함께 관객 유입을 유도하기보다는 정해진 관객 수를 나누어 가져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의 질적 하락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자는 세 편의 영화가 눈에 띄는 컨셉과 관람 후 만족스러운 완성도로 입소문을 낼 수 있는 경우로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영화의 홍보 활동이 중추가 되는 상황이다. 이 중 <정보원>은 유튜브와 예능을 포함한 각종 매체에서 가장 공격적인 홍보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해운대>와 <마이 웨이>등의 현장 편집을 담당했던 김 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 <정보원> 스틸컷 / 사진제공. ㈜엔에스이엔엠
<정보원>은 작전의 실패로 강등 당한 후 방황하고 있는 형사, 오남혁(허성태)과 그의 운명 공동체이자 정보원, 조태봉(조복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남혁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경찰 조직에 회의를 느끼고 조태봉이 몸담고 있는 밀수 조직을 털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남혁에게 일말의 동정도 없는 태봉은 숨겨뒀던 돈을 챙겨 달아나 버린다. 뒤늦게 도착한 남혁은 낯선 무리에게 납치를 당하고 태봉 역시 멀리 가지 못한 채 덜미를 잡힌다. 늘 그랬듯, 이들은 또다시 운명 공동체로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다만 이번에는 서로의 목숨을 걸고 말이다.
허성태라는 캐스팅, 그리고 이야기의 표면으로 하드보일드 범죄물을 떠올리게 하지만 <정보원>은 사실상 코미디 영화다. 허술해 보이지만 전설적인 싸움 스킬을 보유한 형사와 시종일관 그를 이용할 궁리만 하는 조직원의 좌충우돌 상황극이 <정보원>의 주요 전제다. 따라서 이야기는 형사와 정보원이 마주하게 되는 범죄와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코믹한 설정들이 중심을 이룬다.
영화 <정보원> 스틸컷 / 사진제공. ㈜엔에스이엔엠
문제는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범죄도, 중간 중간에 끼워 넣은 듯 등장하는 코미디적인 상황극도 진부하거나 억지스럽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100편의 한국 영화에서 등장했을 법한 ‘장부’를 둘러싼 비리극이라던지, 짝사랑하는 여형사의 환심을 사려는 주인공 형사 등 영화는 마치 30여년 전에 개봉했던 <투캅스 3> (1998, 김상진)보다도 퇴보한 면면을 보인다. 이야기와 캐릭터만큼이나 조악한 미술도 영화 <정보원>에 집중하기 힘든 요소 중 하나다. 흑백의 스케치를 보는 듯한 폭발씬의 CG, 그리고 렌즈 없는 안경을 쓰고 등장하는 악당은 영화의 예산에 기반한 문제라기보다는 감독의 연출적인 미숙과 한계로 비춰지는 부분이다. 이야기의 과잉과 난국이 그러하듯, 미술과 후반작업 역시 연출자의 적절한 결정과 실행을 거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정보원> 스틸컷 / 사진제공. ㈜엔에스이엔엠
참으로 안타깝지만 <정보원>은 2025년에 개봉한 한국 (상업) 영화 중 가장 퇴행적이고 미숙한 영화다. 영화의 한계를 언급하는 과정이 내내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이다. 이는 한 편의 영화를 지켜주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이 한 편의 영화가 현재의 한국영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그럼에도 어디에선가는 좋은 한국영화가 만들어지고, 관객들 역시 작게나마 꾸준히 화답하고 있다. 이제 2만을 넘긴 <한란> (하명미)과 20만을 향해 가고 있는 <세계의 주인> (윤가은)이 그러한 예다. 현재로서는 한국 독립영화에 모든 답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