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동안 빛난 음악과 아쉬움 남긴 무대와 연출...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리뷰
국립오페라단 첫 국내 전막 초연 바그너 오페라
서울시향의 견고한 연주와 설득력 부족했던 연출
국립오페라단 첫 국내 전막 초연 바그너 오페라
서울시향의 견고한 연주와 설득력 부족했던 연출
지난 한 주간 국내에서도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이례적으로 뜨거웠다. 국립오페라단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막 초연이 열린 지난 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공연 시작 한참 전인 오후 2시 이전부터 이미 주차장이 만차였고, 음악당 주차장으로의 회차 안내가 이어졌다. 평일 오후임에도 로비는 오페라 애호가, 음악 전공자, 공연 산업 종사자들로 붐볐다.
이 작품이 받는 유별난 관심은 오페라의 탄생 배경과 음악사적 의미에서 비롯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흔히 ‘낭만주의의 완성형’ 작품으로 평가된다. 다른 바그너 작품이 게르만 신화와 민족주의를 반영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작곡가의 체험이 서사의 핵심을 이루는 보기 드문 오페라다. 바그너는 후원자 오토 베젠동크의 아내 마틸데와의 비극적 사랑을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투영했다. 베젠동크에게 발각돼 끝이 난 둘의 밀회는 작품의 2막에서 마르케 왕이 왕비 이졸데와 충신 트리스탄의 만남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전개된다.
1막 전주곡에서 시작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파–시–레#–솔#’의 이른바 ‘트리스탄 화성’은 기존 조성 체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근대 음악의 문을 연 기념비적 코드다. 전통적 조성처럼 해소와 안정을 지향하지 않고, 다음 화음으로 미끄러지듯 넘어가며 긴장을 축적하는 이 화성은 ‘떠 있는 조성(Floating Tonality)’이라 불린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를 “홈이 없는 야구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화성은 이후 드뷔시의 인상주의, 쇤베르크의 무조음악, 알반 베르크의 12음 기법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음악사의 출발점이 됐다.
한국에서 이 거대한 오페라가 처음 소개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전곡 초연은 2012년 정명훈의 지휘로 서울시향이 콘서트 버전으로 선보였으며, 두 차례 휴식을 포함해 약 6시간에 달하는 이 대작은 2025년 얍 판 츠베덴의 지휘 아래 국립오페라단이 전막 오페라 형태로 다시 올리며 국내 오페라 제작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금까지 음악만 4시간이 넘는 전곡을 완주한 국내 오케스트라는 서울시향이 유일하다.
그런데도 한국 성악가들의 활약이 빛났다. 마르케 왕을 맡은 베이스 박종민은 등장과 동시에 무대를 압도했다. 2막 독백에서 그는 자의 충신과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한 왕의 고뇌를 풍부한 성량과 깊은 저음으로 표현했다. 3막에서 배신을 당했음에서도 그들을 직접 벌하지 않은 왕을 노래한 박종민의 가창에서 바그너가 기억한 오토 베젠동크의 인상을 알 수 있었다. 브랑게네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효나도 안정적인 호흡과 표현력으로 작품의 무게 중심을 단단히 지탱했다.
장시간 이어지는 공연 내내 서울시향의 연주는 안정적이었다. 특히 관악 파트가 제 역할을 해냈다. 2막 도입부 호른 군의 중주는 완성도 높은 음정과 따뜻한 울림을 들려주었고, 베이스 클라리넷은 마르케 왕 독백의 심리적 무게를 단단히 지탱했다. 3막의 잉글리시 호른과 트럼펫은 츠베덴의 디테일한 지휘 속에서 기술적으로 완벽한 솔로를 펼쳤다. 인터미션 40분 동안 쉬지 않고 연습하던 연주자들의 성실함이 무대에서 그대로 빛을 발했다.
국립오페라단(단장 최상호)은 바그너 오페라가 전통적 무대와 현대적 해석이 공존하며 다양하게 상연되는 독일과 달리, 이번 공연이 국내에서는 첫 전막 초연이었다는 점을 조금 더 세심하게 고려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콘월로 향하는 배를 우주선으로 설정하고, 주인공들에게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힌 연출, 그리고 트리스탄의 상처에서 형광 노란색 액체가 흘러나오도록 한 설정은, 바그너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에게 자칫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인간성의 왜곡’으로 느끼게 할 가능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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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