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음악과 함께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 사이로 작은 곰이 걸어 나오는 순간,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영국에서 오래 사랑받아 온 캐릭터 패딩턴이 눈앞에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빨간 모자를 쓰고 한 손에 가방을 든 채로,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입을 움직여 말하고 노래했다.
1958년 <패딩턴이라는 이름의 곰(A Bear Called Paddington)>이라는 아동 도서에서 시작된 이 캐릭터는 지난 65년 동안 책, TV 시리즈, 영화, 봉제 인형, 체험형 어트랙션 등 다양한 형태로 영국인들의 일상 안에 자리 잡아왔다. 특히 2014년 영화가 세계적인 호평을 받으며 시대의 상징이 되었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주 앉아 홍차를 마시며 마멀레이드 샌드위치를 나누는 특별 영상은 영국인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장면이 되었다. 그리고 2025년, 긴 시간 개발을 거쳐 마침내 뮤지컬 ‘패딩턴’이 공개됐다.
뮤지컬은 마이클 본드(Michael Bond) 원작의 빨간 모자와 파란 더플코트, 모자 속 마멀레이드 샌드위치 같은 익숙한 설정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패딩턴을 실제 존재처럼 구현할 것인가’라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냈다. 영화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이 담당하던 움직임을 무대에서는 실제 배우가 구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복잡하고 정신없는 런던의 패딩턴 기차역에 덩그러니 놓인 패딩턴의 첫 등장 장면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인형 조종자가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패딩턴을 무대에서 살아 숨 쉬게 하는 데 성공했다.
두 배우가 함께 탄생시킨 패딩턴은 그야말로 하나의 생명체였다. 샤의 신체 연기와 하미드의 목소리·표정이 결합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었다. 커튼콜에서 샤가 슈트를 벗고 등장했을 때 어린 관객들이 놀란 듯 부모의 얼굴을 바라보던 모습은 이 캐릭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구현되었는지를 말해준다. 이 캐스팅은 기술적 선택일뿐 아니라, 서로 다른 조건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완전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작품의 근본 정서와 맞닿아 있다. 이는 다양성과 포용을 지향하는 런던 극장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30년 넘게 영화, TV, 공연, 라이브 이벤트에서 대표적인 캐릭터를 창조해 온 그는 ‘진짜 살아 있는 존재처럼 보이는 것’을 만드는 데 있어 업계 최고로 꼽히는 인물이다. 자파르는 섬세한 기술과 예술적 감각을 총동원해 패딩턴의 신체 구조, 움직임, 털의 질감, 표정 변화를 하나하나 설계했다. 노래할 때 입이 움직이는 방식까지 실제 생명체에 가깝게 디자인한 덕분에, 관객은 패딩턴을 인형이나 장치가 아니라 존재하는 캐릭터 자체로 받아들이게 된다.
수년에 걸쳐 준비한 뮤지컬 ‘패딩턴’은 구성이 알차게 짜여 있다. 무대 역시 볼거리가 풍성하다. 자연사박물관을 표현한 장면은 시각적 압도감을 선사하고, 런던을 상징하는 택시와 기차, 비둘기 등은 유머와 풍자로 재창조되어 도시의 활력을 전한다. 특히 ‘런던의 리듬(The Rhythm of London)’은 도시 자체를 노래하는 넘버로, 자칫 유치할 수 있는 도시에 대한 찬가를 흥겨운 한 장면으로 녹여낸다. 거기에 관객과 함께 부르는 마멀레이드 노래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쉬운 멜로디로, 공연 후에도 계속 흥얼거리게 된다.
이 뮤지컬은 ‘런던’을 반복하며 노래하는 완벽한 관광상품으로 보이지만, 이야기의 구성과 표현 방식은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패딩턴을 발견해 집으로 데려온 브라운 가족의 관계, 사춘기 딸과 엄마의 화해, 까다로운 이웃 미스터 커리와의 갈등, 사악한 박제사 밀리센트 클라이드와의 대립까지 다양한 서사가 촘촘하게 엮여 있어 극의 흐름을 풍성하게 만든다. 각 캐릭터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배우들은 그 서사를 풍부하게 표현해 관객이 놓치기 쉬운 작은 감정선까지 생생하게 전달했다. 엄청난 연습량이 느껴지는 앙상블의 완벽한 합은 무대를 더욱 빛냈다.
장애 배우가 무대 중심에서 환호받는 모습은, 작품이 담아낸 다양성과 협력적 인류애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패딩턴’은 상업 뮤지컬을 넘어 런던이라는 도시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사건이다. 뮤지컬 ‘패딩턴’은 런던을 향한 찬가이자, 다양성을 축복하는 이야기이며, 창작진의 오랜 연구와 헌신이 만들어낸 따뜻한 세계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