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된다면, 다큐멘터리 <클림트와 쉴레. 에로스와 프시케>는 제목을 좀 바꿔야 한다. 이건 클림트와 쉴레를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는 다큐인 건 맞지만 결코 클림트와 쉴레의 얘기가 아닌, 더 정확하게는 그들의 얘기’만’이 아닌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비엔나라는 역사적 공간, 무엇보다 세기말인 1890년대에서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까지의 비엔나를 그리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보다 좁혀서 말하면 1897년 비엔나 분리파가 결성되고 무수한 화가, 음악가, 과학자, 의사, 패션 디자이너, 사진작가가 등장한 후 이들이 명멸되기까지의 시대를 그린다. 1907년 12월 유대인 박해를 피해 구스타프 말러가 미국으로 망명할 때 그를 배웅하기 위해 기차역에 모인 사람들이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는 얘기가 이 다큐의 핵심이다. “다 끝났어!” 기차역 멤버들은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렉산더 폰 젬린스키, 알반 베르크, 구스타프 클림트였다. 이들은 이때 이미 예술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 다큐의 진짜 의미, 그 울림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 1, 1901. /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클림트와 쉴레. 에로스와 프시케>는 엄밀하게 말해서 잘 만든 다큐는 아니다. 얘기의 초점이 왔다 갔다 한다.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는 잘 알겠으나 너무 방대한 소재를 러닝타임 94분 안에 욱여넣으려 한 게 패착이다. 과잉이고 과욕이다. 다만 역사학자 칼 쇼르스케가 쓴 『세기말 비엔나』나 윌리엄 존스턴의 저작인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을 읽은 사람들에겐 상당히 흥미로운 시각적 향연이 될 수 있겠다. 이 다큐는 결국 철저하게 지식인용 작품이라는 얘기가 된다. 아는 사람은 잘 보이고 모르는 사람은 잘 안 보이는 영화는 늘 유용성과 대중성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 다큐가 지닌 유용성은 매우 높다. 그건 곧 확장성이다. 지식으로의 여행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세계관을 넓혀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요란하고 복잡하며, 신경에 날이 서게 할 만큼 축약으로 점철된 한 시대에 대한 다큐가 담고 있는 중요한 의미이다.
이 짧은 다큐는 아마도 대중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비엔나 여행을 가게 만들며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에 가서 클림트의 작품을, 레오폴드 미술관에 가서는 쉴레의 작품을 들여다보게 할 것이다. 베토벤의 음악을 새로 찾게 되고 (비엔나 분리파들이 베토벤을 위해 전시까지 했다 하는 만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에 대해서 알아보게 할 것이다. 오토 바그너의 건축물이나 요제프 호프만의 가구를 찾으러 다니게도 할 것이다. 아르투어 슈니츨러나 슈테판 츠바이크 책을 찾아서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 다큐는 컷 바이 컷, 씬 바이 씬, 인터뷰 바이 인터뷰 하나하나 놓치면 안 되는 내용들로 되어있다. 극장 안에서는 필기가 불가하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일종의 통독용이지 정독용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기억을 되살리려 애쓸 필요는 없다. 통독하듯 휘리릭 영화를 보고 나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비엔나를 기록한 역사서를 찾아보는 것으로 영화를 이해하려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른 독해의 길이다.
예컨대 비엔나를 수도로 하는 오스트리아는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서부터 알아야, 이 다큐가 이해가 된다. 독일이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오스트리아이다. 오스트리아는 1800년대 초까지 과거 신성로마제국의 종주국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로 대표된다. 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 지금의 비엔나에 여럿 있었는데 본궁은 호프부르크 궁이고 여름 별궁이 쉔부른 궁이다. 지금은 다 박물관이 됐다. 프로이센이 독일이라는 단일 민족국가를 만들 때, 체코와 헝가리, 루마니아, 세르비아 지역을 소유하고 있었던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게 된 것인데 1차 대전은 한 치기 어린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젊은이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테러, 살해한 사건에서 시작한다. 다소 엉뚱하지만, 이 수려하고 단아한 예술 다큐멘터리 내내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은 그 시대를 담아 내려 했기 때문이다.
1914년 오스트리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한 세르비아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사건 발생 후 체포당하는 현장이라 알려진 사진.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물론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특히 <유디트>와 <키스> 같은 작품을 클로즈업으로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이기도 하다. 작품 중간중간 나오는 생리학자 에릭 칸델 같은 이의 설명을 들으면서 클림트의 <키스>라는 그림이 두 남녀의 ‘애정행각’보다 그 뒤 배경의 색깔과 무늬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된다. 제인 칼리르 같은 미술사학자의 진술은 매우 흥미로운데, 자신이 같이 일했던 많은 남성 큐레이터 혹은 컬렉터들은 쉴레의 세로 그림(인물이 수직으로 앉아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게 화가의 서명이 아래쪽에 되어있는데도)을 가로로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쉴레 그림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마다의 젠더적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칼리르는 말한다. 이 작품이 나름, 클림트와 쉴레의 부분에 많은 부분, 정성껏 할애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1907~1908. /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이 다큐의 커다란 주제이자 그 ‘속살’은 인간 스스로 욕망과 충동에 직면하게 만든 시대에 관한 것이다. 이전까지 사람들이 규율과 예절, 겉치레와 청교도적 도덕에 묶여 있었다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역작 『꿈의 해석』이 나오면서 세상은 요동치기 시작했으며 그 중심지가 비엔나였고, 그 핵심 예술가가 클림트와 쉴레를 비롯한 예술가들이었다는 것이다. 소위 ‘비엔나 분리파’는 타도 앙시앙 레짐을 주창하는 예술가들의 모임이었고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받아들이는 앙팡 테리블들이었다. 이번 다큐에서 이 분리파는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분리파는 아카데미즘과 전통적 관습에 얽매여 있는 보수적인 기존 예술계의 권위를 거부하고 예술의 자유를 주장하는 예술가들이 결성한 일종의 동맹 같은 조직인데 그 중심에는 베르타 주커칸들과 그의 남편 에밀 주커칸들이 만든 살롱이 있었다. 그들의 살롱은 화가, 건축가, 음악가, 작가, 과학자, 학자들이 늘 모여들게 했다. 베르타 주커칸들은 1920년대 파리에서 많은 작가를 키워 낸 여성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전신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빈 분리파 중심에 있던 인물 베르타 주커칸들(1864~1945).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쯤 되면 이 다큐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누군가 이 다큐를 세세하게 풀어서 OTT 10부작이나 20부작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역설적으로 클림트와 쉴레는 당시의 시대상으로 볼 때 화산처럼 폭발할 수 있었던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태연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죽음의 세상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예술을 통해 가능하다는 믿음에 봉직한 예술 성직자였다. 다큐의 내레이션을 맡은 로렌조 리첼미는 초반부에 책을 낭독한다. 이런 대목이다.
“살아갈 가치가 있는 세상은 멸망했습니다. 그 뒤를 이을 세상은 제대로 된 주민(민중 국민 인민)을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마도 자손을 낳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건 1900년대 초의 이야기인가 지금, 2025년의 이야기인가. 그 에로티시즘과 외로움, 불안과 무질서라는 새로운 세계는 이미 클림트와 쉴레가 보여주고 예고한 바 있다. 지금의 클림트와 쉴레는 누구인가. 지금의 분리파는 어디에 있는가. 이 다큐를 보고 있으면 지금의 세상이 보인다. 그것도 매우 적나라하게. 지금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가를 보여준다. 영화는 종종 역사와 예술을 가르쳐 주고 세상을 위해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가를 역설한다. 이 다큐 <클림트와 쉴레. 에로스와 프시케>가 던지는 화려하면서도 묵직한 메시지이다. 어쨌든 클림트와 쉴레 그 둘을, 그리고 주옥같은 당시의 예술가들을, 20세기가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21세기는 누구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미친 캐피탈리스트들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