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 종일 담배만 피웠지

필립 거스턴의 <Painting, Smoking, Eating>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 1913~1980)의 예술 세계는 20세기 미국 미술사에서 가장 복잡한 궤적을 그린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유대계 이민자였던 그는 추상표현주의의 성공 한가운데서 돌연 붓을 거꾸로 들었다. 1968년 이후 그의 화면에는 키치와 만화,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냉소가 들어왔다. 1970년 뉴욕 말보로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Recent Paintings>는 힐튼 크레이머를 비롯한 평론가들에게 “추상표현주의의 배신”으로 혹평받았지만, 훗날 재평가를 거치며 20세기 회화의 가장 용감한 전환 중 하나로 남았다.

그가 택한 이 전환의 정점이 <Painting, Smoking, Eating>(1973)이다. 형상의 단순함 뒤에는 한 인간이 견뎌낸 상처와 시대가 남긴 피로가 응고되어 있다.

고통을 응시하는 법

그림 속 인물은 작가 자신을 빗댄 자화상으로 보인다. ‘버터 빈(Butter Bean)’처럼 보이는 둥근 머리와 사이클롭스(Cyclops)처럼 크게 뜬 한쪽 눈이 인상적이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그는 가슴 위에 음식을 담은 접시를 올려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일상의 오브제들(신발, 컵에 꽂힌 붓, 어둑한 전구 등)은 눅눅한 체온과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을 담고 있는 것 같다.
Philip Guston <Painting, Smoking, Eating> (1973), Oil paint on canvas. 2023년 10월 필자가 테이트 모던에서 찍은 작품 사진. / 사진. © 이장욱
Philip Guston <Painting, Smoking, Eating> (1973), Oil paint on canvas. 2023년 10월 필자가 테이트 모던에서 찍은 작품 사진. / 사진. © 이장욱
이 그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인물의 ‘응시’이다. 몸은 침대에 가라앉았지만, 눈은 허공을 향해 끝내 떠 있다. 그 시선은 세상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고백이다. 라캉(Jacques Lacan)이 말한 ‘욕망의 응시’가 타인의 시선에 포획된 주체라면 거스턴의 응시는 스스로를 붙드는 시선이다. 그 눈빛에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고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력함이 함께 배어 있다. 그의 외눈은 개인의 트라우마와 시대의 그림자를 함께 비춘다.

거스턴은 어린 시절 캐나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유대계 가정에서 자랐다. 열 살 무렵 아버지의 자살 현장을 목격한 기억은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 1950년대 그는 추상표현주의의 중심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베트남전과 인종차별, 그리고 시대의 거짓된 낙관을 마주하며 깨달았다. 그는 비극의 시대에 형식의 세련됨으로 고통을 감추는 것은 예술의 배신이라 생각했기에, 그에게 회화는 더 이상 미적 장식이 아니라 양심의 증언이 되었다. 그는 상처와 시대의 무게를 ‘버터 빈(Butter Bean)’처럼 둥근 얼굴 속에 밀어 넣었다. 형태가 단순할수록, 그 안에는 더 깊은 불안이 응축되었다.

내가 살던 그 집

2023년 가을,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필립 거스턴의 <Painting, Smoking, Eating>을 마주했을 때, 그 시절 내가 살던 방이 떠올랐다.

이십 대 후반, 나는 서울의 한 대학가 옥탑방에 살았다. 동네는 재개발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고, 아침마다 벽이 무너지는 소리와 철거 트럭의 경적, 그리고 투쟁가가 뒤섞여 창문 너머로 밀려들었다. 어느 날은 철거용역 인부들이 탄 컨테이너가 크레인을 타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고,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과 큰 싸움이 벌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은 무너졌고, 그 자리에는 먼지와 침묵이 남았다.
Philip Guston <Flatlands> (1970), Oil paint on canvas. 2023년 10월 필자가 테이트 모던에서 찍은 작품 사진. / 사진. © 이장욱
Philip Guston <Flatlands> (1970), Oil paint on canvas. 2023년 10월 필자가 테이트 모던에서 찍은 작품 사진. / 사진. © 이장욱
그 시절 나는 자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계속되는 소음과 더불어, 이렇게 계속 밀리다 보면 ‘이 도시에서 더는 머물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공기처럼 방 안을 채웠다. 길도, 해결책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누워서 담배만 피웠다. 몸은 침대 속으로 점점 가라앉았지만, 눈은 점점 더 크게 떠졌다. 화면 속 접시, 담배, 신발, 붓이 ‘먹고, 피우고, 칠하는’ 반복의 시간을 말하듯, 그 시절 내 방의 냄새와 먼지, 불면과 초조도 나의 루틴이었다.

질문과 위로

거스턴은 단지 침대 위의 화가를 그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절망 속에서도 끝내 눈을 감지 못하는 인간의 형상을 그렸다. 그 응시 앞에서, 나는 비로소 고통이 공유될 수 있다는 것과 예술이 우리를 어떻게 위로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거스턴의 부릅뜬 눈은 여전히 묻는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피우며,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동안,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가?”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