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의 타이베이는 신구 가치관이 충돌하는 정신적 혼돈의 시기였다.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많은 외국인이 유입되고 젊은 세대가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집단보다 개인의 가치에 우선권을 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이에서 거대한 변화와 균열의 조짐을 감지하고 이를 담아내려 <독립시대>(1994) <마작>(1996) <하나 그리고 둘>(2000)로 구성된 신(新) 타이베이 삼부작을 완성했다.

그중 <마작>은 국내에 관심 밖에 있다 이번에 정식 개봉(10월 19일)하는 작품으로 에드워드 양의 과소평가된 걸작에 속한다. 중국이 기원인 ‘마작’은 기본적으로 4인이 즐기는 테이블 게임이다. 이게 인기를 얻으면서 게임의 형태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마작 인구도 전 세계로 퍼졌다. 그럼에도 중화권 사람들이 즐기는 중국 게임이라는 인상이 강한데 에드워드 양은 마작을 제목으로 타이베이의 변화하는 시대상의 메타포로 삼는다.
영화 <마작> 스틸컷 / 사진제공. (주)에이썸 픽쳐스
영화 <마작> 스틸컷 / 사진제공. (주)에이썸 픽쳐스
당연히 중심인물은 넷이다.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는 이들은 홍어와 홍콩과 소(小)부처와 룬룬이다. 리더격인 홍어는 사기 칠 대상을 고르고, (장첸이 연기한!) 홍콩은 수려한 외모로 이성을 홀리고, 머리를 빡빡 밀어 승려로 보이는 소부처는 풍수를 보는 척 거짓말로 상대를 현혹하고, 룬룬은 셋의 명령을 받들어 허드렛일을 도맡는다. 이들은 오늘도 먹잇감 어디 없나 군침을 흘리다 전(前) 애인을 찾아 타이베이로 온 프랑스인 마르트에 눈독을 들인다.
영화 <마작> 스틸컷 / 사진제공. (주)에이썸 픽쳐스
영화 <마작> 스틸컷 / 사진제공. (주)에이썸 픽쳐스
사기를 도모하겠다고 이들 네 명이 주로 찾는 곳은 ‘하드록’ 카페다. 자국인과 외국인이 섞여 있고, 시끄러운 록 음악에 맞춰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음악도 즐기는 이곳은 당시의 타이베이가 직면한 혼돈의 상징과도 같다. 그 틈을 이용해 홍어와 홍콩과 소부처와 룬룬은 손쉽게 돈 좀 벌어보겠다고 일을 꾸미다 황당한 일에 직면한다. 홍어의 아버지가 300억의 빚을 지고 잠적했는데 이를 쫓는 조폭들이 룬룬을 홍어로 오인하여 납치하고 만다.

영문도 모른 채 납치당한 룬룬이나, 자기가 쫓기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홍어나, 납치할 대상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조폭이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하나 같이 혼란하다. 홍콩이나 소부처도 마찬가지다. 홍콩은 자기가 제비 짓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대상이 됐던 여자가 역으로 친구들과 함께 그의 몸을 탐하자 혼란해지고, 소부처는 친구들이 더는 함께하려고 하지 않자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골치가 아프다.
영화 <마작> 스틸컷 / 사진제공. (주)에이썸 픽쳐스
영화 <마작> 스틸컷 / 사진제공. (주)에이썸 픽쳐스
사기 친다고 의기양양했는데 실은 당하고 있는 아이러니. 변화는 현재진행형이 되어 있는데 과거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현기증을 느끼는 상황. 급기야 죽음을 택하고, 주저앉고, 눈물을 흘리는 등 영문도 모른 채 직면한 혼란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네 명의 주인공을 비롯한 타이베이의 현재가 <마작>에 담겨 있다. 그래서 통곡하는 홍어와 홍콩을 비추던 카메라는 서서히 팬을 하며 타이베이 전경을 풀숏으로 포착한다.

더는 타이베이의 미래가 없는 것인가. 아니다. <마작>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홍어로 오인당하여 잡혀갔던 룬룬이 풀려나 집으로 돌아오자, 하숙집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외국인 하숙생들과 마작 게임을 하고 있다. 룬룬의 눈에 그 풍경이 어색하지 않은 건 룬룬이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인 까닭이다. 어떻게? 친구들과 다르게 프랑스인 마르트에 남다른 감정이 있던 룬룬은 끝내 마르트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영화 <마작> 스틸컷 / 사진제공. (주)에이썸 픽쳐스
영화 <마작> 스틸컷 / 사진제공. (주)에이썸 픽쳐스
룬룬은 친구가 좋아 홍어와 홍콩과 소부처와 함께했던 거지 그들처럼 잘못된 가정사나 나쁜 마음을 품었던 적이 없다. 마르트가 보기에 타이베이에 돈이 몰린다는 이유로 흥청망청하는 전 애인과 비교해 룬룬은 미래를 함께 도모하기에 바르고 진심인 사람이다. 인파로 북적이는 시장 거리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국적도, 인종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은 진한 키스를 한다. 새로운 현재이자 다가올 미래의 시작. 에드워드 양은 <마작>으로 과거와는 다른 타이베이를 기대한다.

허남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