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선생님께

어느덧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도 어김없이 선생님에 관한 책이 출간되고 있으니, 시간의 흐름이 무색하게 느껴집니다. 책을 통해 선생님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은 책을 읽으면서도 정신적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아도 책을 통해 교류할 수 있다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하셨지요. 선생님은 이미 한 세기 전에 세상을 떠난 유대인 여성 라헬 파른하겐을 좋은 친구라 여기며 그녀의 전기를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우정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 있다는 그 말씀은 지금도 여전히 매혹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의 ‘우정론’에 힘입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지난여름,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선생님의 원고를 보았습니다. <뉴요커>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였는데, 가볍게 둘러보다가 한 유리 진열장 앞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원고가 당시 사용된 타자기와 함께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뜻밖의 발견 앞에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진귀한 역사의 순간을 마주한 듯, 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꼼꼼히 들여다보았습니다. 타자로 친 활자 위에 펜으로 수정한 흔적, 1963년 2월부터 3월까지 다섯 차례로 나뉘어 <뉴요커>에 게재된 날짜는 역사의 생생한 증거처럼 보였습니다. 그 원고는 같은 해 5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지요.
한나 아렌트 묘비 곁에는 연필과 펜들이 꽂혀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원고 / 사진. © 김성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원고 / 사진. © 김성민
선생님은 직접 <뉴요커> 편집부에 아이히만 재판 기고를 제안하셨습니다. 편집장이 이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8)으로 이미 명성을 얻은 유럽 지식인이자,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한 유대인으로서 선생님은 이 재판을 취재하고 보도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을 테니까요. 선생님은 “이 재판을 참관하는 것은 제가 과거에 진 빚을 갚는 의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치 독일을 떠나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시기, 귀르 강제 수용소에 수감 되셨다가 간신히 탈출해 1941년 미국으로 건너오셨지요. 이후 귀르에 남아 있던 수감자들이 모두 학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선생님은 자신 역시 남아 있었다면 같은 운명을 맞았으리라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 아이히만을 직접 확인하고 기록하는 것이 학살당한 동료들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요.

재판장에서 마주한 아이히만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악마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정신과 의사들은 그를 정상이었다고 진단했습니다. 선생님도 “당황스럽고 충격적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선생님이 말한 ‘악의 평범성’은 외양의 인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순전한 무사유에서 기인했습니다. 아이히만의 입에서 나온 상투적인 언어 속에서 선생님은 그의 무사유를 발견했습니다. 무사유란 단순히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는 것을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명령에 복종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고의 무능. 선생님은 이 무사유야말로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큰 파멸을 낳을 수 있다고 보셨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이 세상에 던진 중요한 통찰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단 한 번 등장하지만, 이 개념은 이후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선생님은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 집단의 입장이 아니라 보편적 관점에서 재판을 다루었고, 이 때문에 “유대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사랑은 개인의 문제이지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고 응수하셨지요. 우정을 잃으면서까지 사유를 굽히지 않았던 용기를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드러난 ‘악의 평범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관료주의 사회에서 명령을 의심 없이 수용할 때, 평범한 개인도 언제든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경고이기 때문입니다.

뉴욕 공립도서관에서의 만남이 우연이었다면, 뉴욕 북부의 바드 칼리지 방문은 계획된 순례였습니다. 펜실베니아 역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을 달린 뒤 택시로 갈아타 도착한 캠퍼스는 여름 방학 중이라 한적했습니다.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도서관으로 향하니, 사서 헬렌(Helene Tieger)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드 칼리지를 찾기 전 제가 보낸 이메일에 그녀는 흔쾌히 답장을 주었고, 방문 약속을 잡아주었거든요. 알고 보니 그녀는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1975년 무렵부터 도서관을 지켜온 산 증인이었습니다.

헬렌은 제 마음을 읽은 듯 가장 먼저 묘지로 안내했습니다. 선생님과 바드 칼리지는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가 이곳에서 강의한 적이 있었지요. 두 분은 캠퍼스와 주변 자연을 좋아해 자주 방문했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블뤼허가 먼저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고, 선생님도 다섯 해 뒤 나란히 곁에 잠드셨습니다. 선생님의 묘비 곁에는 연필과 펜이 여러 자루 꽂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다녀가며 추모의 표시로 두고 간 것이겠지요. 저도 동참하고 싶은 마음에 망설이다 금빛 왕관이 새겨진 검은 연필을 꺼내 조심스레 비석 곁에 꽂았습니다. 그 조용한 의식이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한나 아렌트 묘지 / 사진. © 김성민
한나 아렌트 묘지 / 사진. © 김성민
한낮의 묘지는 추모의 공간이자 사유의 장소였습니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신비로운 빛의 조화를 이루었고, 낡고 부식된 비석들은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헬렌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이 1860년대 것이라고 말해주었지요. 묘비 사이에 놓인 벤치에 앉으니, 묘지는 단순히 죽음을 기억하는 곳이 아니라 정신적 대화를 이어가는 자리처럼 느껴졌습니다.

묘지에서 도서관은 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도서관은 친구 메리 매카시의 제안으로 마련되었다고 하지요. 친구들을 자주 초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던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아파트에서 옮겨온 책들이 이곳에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자료실 입구에는 선생님과 블뤼허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가 걸려 있었고, 안내문에는 블뤼허가 1952년부터 1967년까지 바드 칼리지에서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실천했던 사랑과 충실성이란 이렇게 각자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면서도 서로를 지탱하는 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나 아렌트 도서관 / 사진. © 김성민
한나 아렌트 도서관 / 사진. © 김성민
책장에는 선생님이 읽고 밑줄을 남긴 책들이 가득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와 칼 야스퍼스의 철학서, 소설책들 그리고 여러 권의 시집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를 즐겨 읽고 시를 쓰기도 했던 선생님. 철학적 사유는 시적 은유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아렌트 도서관에서 헬렌은 선생님이 남긴 메모와 밑줄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소개했습니다. 이곳에 오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더딘 작업이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낯선 방문자를 환대하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애쓰는 친절 속에서 저는 세계와 함께 살아가려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선생님이 ‘우정의 천재’라 불리며 우정을 돌보는 법을 아셨듯, 헬렌의 환대 또한 세계 사랑의 실천처럼 보였습니다.

오늘날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불안과 불신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요. 바드 칼리지에서 경험한 묘비의 연필, 책장 속 밑줄, 헬렌의 환대는 모두 선생님이 말씀했던 세계 사랑, ‘아모르 문디’를 증언하는 듯했습니다. 전쟁과 학살을 목격한 뒤에도 끝내 세계를 사랑하려 했던 그 사유는 지금도 신선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선생님이 말한 세계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공적 영역이었습니다. 정치적 삶이 이루어지는 무대이자, 인간의 복수성이 드러나는 장, 곧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었습니다. 세계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이 장을 지켜내려는 책임의 태도였음을 기억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실제로 일어난 일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계를 사랑하는 일의 시작이겠지요. 그 경험은 제 안에 오래 머물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 도서관 / 사진. © 김성민
한나 아렌트 도서관 / 사진. © 김성민
김성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