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 윌리암스의 희곡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는 영화와 연극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미국 뉴올리언스, 몰락한 남부 귀족 가문의 딸인 블랑쉬 듀보아는 집안 재산과 영지를 모두 잃고, 삶의 기반이 무너진 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여동생 스텔라 코왈스키가 사는 집을 찾는다. 그녀는 오랜 세월 자신의 아픔과 불우한 과거를 감추며, 여전히 세련되고 고상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현실은 그녀가 지닌 허상과 전혀 다르다. 스텔라는 남편 스탠리 코왈스키와 결혼해 소박하지만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스탠리는 거칠고 남성적인 인물로, 블랑쉬의 고상한 태도와 꾸며낸 이야기들을 곧바로 불편해한다. 블랑쉬는 자신이 여전히 과거의 영광 속에 있는 듯 행동하지만, 스탠리는 그녀의 과거를 의심하고 집요하게 파헤치려 한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스틸컷 / 사진. ⓒKurt HuttonGetty Images, 출처. IMDb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스틸컷 / 사진. ⓒKurt HuttonGetty Images, 출처. IMDb
블랑쉬는 스텔라와 스탠리의 결혼 생활을 보며 경악한다. 스탠리의 폭력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스텔라는 남편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의 관계 속에서 일종의 애착을 느낀다. 블랑쉬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동생을 구출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스텔라는 현실적인 삶을 선택했을 뿐, 블랑쉬의 이상적인 세계를 따를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와중에 블랑쉬는 스탠리의 친구인 해롤드 미치와 만나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품는다. 미치는 그녀의 우아하고 세련된 태도에 매료된다. 블랑쉬도 그에게 기대어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스탠리는 미치가 블랑쉬와 결혼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며, 블랑쉬의 과거를 철저히 캐내 폭로한다. 그는 블랑쉬가 교사 시절 미성년 제자와의 관계로 추문을 일으켰고, 이어 호텔에서 여러 남성과 관계를 맺으며 파멸적인 삶을 살아왔음을 폭로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치는 블랑쉬를 떠나고, 그녀는 또다시 버림받는다.
해롤드 미치와 블랑쉬 듀보아 / 사진. ⓒ2012 Warner Bros Entertainment, 출처. IMDb
해롤드 미치와 블랑쉬 듀보아 / 사진. ⓒ2012 Warner Bros Entertainment, 출처. IMDb
절망한 블랑쉬는 점점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로 빠져든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상류 사회의 여성이며, 곧 어떤 부유한 남성과 결혼해 새 삶을 시작할 것이라 믿으려 한다. 스탠리는 그녀를 현실 속으로 끌어내리려는 듯 잔인하게 몰아붙이고, 결국 폭력과 모욕으로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짓밟는다.

블랑쉬는 완전히 무너진 정신 상태로 정신병원에 끌려간다. 그녀는 여전히 친절한 낯선 사람의 손을 잡으며 "나는 낯선 이의 친절에 의지해 살아왔어요(I have always depended on the kindness of strangers)"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긴다. 스텔라는 남편 스탠리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에 남으며, 블랑쉬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한다.

이 작품은 몰락한 구(舊) 남부 귀족 계급을 상징하는 블랑쉬와, 산업화된 미국의 새로운 계급을 대표하는 스탠리의 대립을 통해 전통과 현실, 환상과 욕망, 몰락과 생존이라는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블랑쉬의 비극적인 최후는 인간이 현실을 부정하고 허상 속에 머물 때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블랑쉬 듀보아는 몰락한 남부 귀족 계급을 상징한다. 한때는 부와 지위를 누렸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경쟁력을 잃고, 과거의 영광만 붙들고 살아가는 모습은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 도태되는 낡은 경제 부문과 닮았다. 블랑쉬가 허상과 체면으로 자신을 지탱하려 하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커져만 간다. 이는 경쟁력을 잃은 산업이 정부 보조금이나 규제라는 ‘허상’에 의존하며 생존을 연장하는 모습과도 겹쳐진다.

반면, 스탠리 코왈스키는 산업화 이후 부상한 새로운 계층을 대표한다. 그는 투박하고 거칠지만 현실적이고, 무엇보다 생산과 노동이라는 실질적 힘을 바탕으로 살아간다. 스탠리가 블랑쉬의 허위를 폭로하고 그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과정은, 구경제가 신경제 앞에서 무너지는 과정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스텔라는 두 세계 사이에 끼인 ‘중산층’을 상징한다. 그녀는 언니의 화려한 과거에도 끌리지만, 동시에 남편 스탠리의 현실적 생존력에 의존한다. 결국 스텔라는 스탠리 곁에 남음으로써 현실을 택한다. 이는 사회 변화 속에서 중산층이 이상과 체면보다 생존과 안정이라는 현실적 선택을 우선하게 되는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스텔라와 그녀의 남편 스탠리 코왈스키 / 사진. ⓒ2012 Warner Bros Entertainment, 출처. IMDb
스텔라와 그녀의 남편 스탠리 코왈스키 / 사진. ⓒ2012 Warner Bros Entertainment, 출처. IMDb
미치는 전환기의 기회나 대안을 나타낸다. 그는 블랑쉬와 새로운 삶을 꾸려갈 가능성을 제공했지만, 결국 과거의 진실이 드러나자 관계는 무너진다. 이는 산업·사회의 전환기에 존재하는 잠재적 투자 기회가 과거 리스크가 폭로되면서 사라지는 과정과 유사하다. 블랑쉬가 끝내 환상 속에 갇혀 파멸에 이르는 모습은 환상에 기대어 현실을 부정하는 개인과 산업, 혹은 국가의 비극적 말로를 상징한다. 반대로 스탠리가 대표하는 새로운 힘은 잔혹하고 불완전할지라도 현실에서 생존 가능한 질서를 만들어낸다.

영화 속 블랑쉬가 허상 속에 갇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현실과 욕망을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욕망은 단순히 파괴적이지 않다. 오히려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 그 자체이다. 더 나은 집, 더 좋은 일자리, 더 풍요로운 삶을 향한 욕망이 소비와 투자를 자극하며 성장의 불씨가 된다. 문제는 종종 정부 정책이 이 욕망의 흐름을 무시하거나 거스르려 한다는 점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번영을 골고루 반영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노력이지만 돈만 낭비하는 듯한 인상이 짙다.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이 수도권 집중을 막으려 하지만, 일자리와 교육·문화 인프라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은 자연스레 수도권으로 몰려든다. 출산 장려 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순한 현금 지원으로는 청년 세대가 바라는 안정된 주거와 일자리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결국 정책은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괴리만 키우게 된다.
스탠리 코왈스키와 블랑쉬 듀보아 / 사진. ⓒHulton Archive/Getty Images, 출처. IMDb
스탠리 코왈스키와 블랑쉬 듀보아 / 사진. ⓒHulton Archive/Getty Images, 출처. IMDb
경제는 욕망이라는 보이지 않는 전차에 의해 움직인다. 이 전차를 막으려는 규제나 강제가 효과 없이 지속될 때 본연의 의도와 다른 효과가 나타나고 언젠가 궤도를 이탈할 수 있다. 세종시 이전과 혁신 도시 이전을 통해서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의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었을까. 정책은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보다 생산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욕망을 거스르는 정책은 실패하지만, 욕망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정책은 미래를 여는 힘이 될 수 있다.

조원경 UN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