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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풀어달라" 요청에…李 대통령 '핵폭탄급' 발언한 까닭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전환점에 선 韓 메모리 (3) 금산분리와 반도체
공장 한 기 짓는데 30조 이상 필요
그룹 자체 자금 조달에 한계 커져
외부 자금 유치 가로 막는 금산분리
규제 풀면 반도체 펀드 조성 가능해져
공장 한 기 짓는데 30조 이상 필요
그룹 자체 자금 조달에 한계 커져
외부 자금 유치 가로 막는 금산분리
규제 풀면 반도체 펀드 조성 가능해져
흉흉한 소문 돌았던 SK하이닉스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슈퍼스타'로 떠오른 SK하이닉스. 이 회사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위기를 겪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경기 불황, 소비 침체 여파로 불어 닥친 '다운턴'의 직격탄을 맞았다. 2022년 영업이익(6조8094억원)은 전년(12조4103억원) 대비 45.1% 급감했다. 2023년엔 '영업적자' 7조7303억원을 기록했다. 산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못 버틸 수 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다운턴 2년간의 상처는 컸다. SK하이닉스의 재무구조와 투자 여력은 약해졌다. 2022년과 2023년 2년 연속 '마이너스 4조원'대를 기록한 잉여현금흐름(FCF), 2023년 3조5021억원까지 줄어든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말해준다.
외국계 투자 받아 최첨단 HBM 공장 운영
SK하이닉스 경영진은 조급해졌다. 엔비디아 등 고객사에서 쏟아지는 HBM 주문을 소화하려면 생산 능력을 빠르게 늘려야 했다. HBM은 여러 D램을 쌓고 붙이는 등 복잡한 최첨단패키징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웨이퍼(반도체 원판)가 일반 D램보다 3~4배 더 필요하다. 그만큼 투자비가 더 드는 것. SK하이닉스는 2024년 실적이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현금이 부족했다.
금산분리 규제에 막힌 반도체 투자 펀드
현실의 벽은 높았다. 발목을 잡은 게 이 대통령이 언급한 금산분리 규제다. SK그룹 같은 산업자본이 운용사(GP)로 펀드를 조성해 외부에서 투자금을 모으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대안으로 법적으로 허용된 투자회사인 기업형벤처캐피털(CVC)을 설립해도 규제에 따른 한계가 명확하다. SK그룹 지주사가 CVC를 자회사로 두려면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 외부 자금 비중은 펀드 총출자액의 40% 이내로 제한된다. 해외투자는 CVC 총자산의 20% 범위에서만 허용된다. 총수 일가 지분 보유 기업이나 그룹 계열사에는 투자할 수 없다.
SK그룹이 최첨단 반도체 공장 한 기를 짓는데 필요한 약 30조원을 조달하기 위한 반도체 투자 펀드를 조성하려면, 투자액의 60%인 18조원을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주력 사업 불황으로 현금 조달 능력이 떨어져 있는 SK그룹 입장에선 쉽지 않은 '거금'이다. 해외투자 규제 때문에 미국 웨스트라피엣 HBM 공장이나 중국 우시 D램, 대련 낸드플래시 공장 투자에도 제한이 있다.
자금이 풍부한 은행의 비금융회사 출자 한도 규제도 펀드 활성화를 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의 비금융회사 출자는 15%(비상장사 30%) 이내로 제한된다. 간접투자라 하더라도 금융사가 출자자(LP)로 참여한 펀드가 특정 기업에 대규모로 투자하면 출자 한도 규제에 저촉될 수 있다.
금산분리 완화 필요성을 절감한 SK는 그룹 차원에서 정부와 정치권 설득에 나섰다. AI 시대 전략 물자로 부상한 메모리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지원 필요성이 커지자 정치권과 관가가 움직였다. 이 대통령이 결국 '규제 완화 검토'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글로벌 경쟁 고려해 국내 기업 지원해야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반도체업계에선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최근 오픈AI 같은 글로벌 AI 기업 간 투자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HBM 같은 메모리반도체 주문도 계속 느는 추세다. 샘 올트먼 CEO가 '월 90만장(웨이퍼 투입량 기준) 규모 최첨단 D램'을 요청한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메모리 슈퍼 호황이 2027~2028년까지 지속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각각 연 50조원 넘는 반도체 투자 실탄이 필요해진다.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이 AI·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으로 투자처를 제한했고, 독점 폐해가 없는 경우 등 '안전장치'를 조건으로 건 만큼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크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 특혜 프레임에 갇혀있기보단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란 보다 넓은 시각에서 국가 대표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