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에서 9월 28일 4일간, 인도 뉴델리에서 킨텍스와 (주)아트아시아가 공동 주최한 아트아시아 델리가 열렸다. 표면적으로는 하나의 국제 아트페어이지만, 이 행사는 한국 전시산업과 미술시장이 새로운 블루오션을 탐사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한국화랑협회 회장을 두 차례 역임하며, 프리즈 서울 동시 개최, 자카르타 협력 전시, KIAF in 시카고 엑스포 등 굵직한 글로벌 협업 등을 주도했던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가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가 협회장 임기를 마친 후 킨텍스와 손잡고 추진한 첫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있다. 그는 2016~2017년 스푼아트쇼를 개최하며 이미 킨텍스와 인연을 맺은 바 있으며, 이번 인도 진출로 그 영역을 또 한 번 확장시켰다. 이는 단순히 한 명의 인물이 주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한국 전시산업과 아트페어 운영 노하우가 아시아 전역으로 수출 가능한가'라는 실험이기도 하다.
아트아시아 델리의 공식포스터. / 아트아시아 제공
아트페어가 개최된 야쇼부미 컨벤션 센터(정식명칭: India International Convention & Expo Centre – Yashobhoomi)는 2023년 9월에 개관하였다. 개관한 지 2년밖에 안 된 야쇼부미는 2025년 국제건축상을 받을 정도로 멋진 외관과 쾌적한 컨디션을 갖고 있다. 인디라 간디 공항과의 접근이 매우 용이하고, 지하철이 컨벤션과 연계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차량으로 20분 내외의 거리에 5성급 주요 호텔들과 월드마크몰이 인접해있어 해외에서 온 참가자와 방문객이 행사 기간 내 머무르기 좋다. 또한 보안 검색과 안전 관리가 철저하여 인도의 불안한 치안과 안전사고에 대해 안심하고 방문할 수 있다.
실제로 DIDAC INDIA 2025(아시아 최대 규모의 교육&기술 박람회)나 ACMA Automechanika New Delhi 2026(차량 모빌리티 박람회)를 비롯해 다양한 국제적인 규모의 행사가 열리고 있다. 14.6억 인구를 가진 인도에 쾌적한 환경의 컨벤션은 MICE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탐나는 블루오션인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컨벤션 내부에 전시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부족하다. 아직 개관 2년 차라는 점을 감안하여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갈 부분이지만, 한국의 코엑스에 익숙한 전시자라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인도 및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야쇼부미 컨벤션 센터. / 사진 출처. 야쇼부미 컨벤션 센터 공식웹사이트
첫 회 아트아시아 델리는 한국 갤러리와 작가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9개로 구성된 특별전은 한국 미술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인도 미술 시장에 K-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였다. 박서보, 이강소, 박대성 등 원로 및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 마스터즈 섹션에서는 한국 미술의 높은 품격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전통적인 기법과 소재인 자개, 금박, 한지, 달항아리를 활용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인 특별전과 첨단 장비와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강애란, 이이남, 이재형 등 14인의 미디어 아트를 선보인 특별전은 한국 미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며, 현지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런 구성은 한국 미술을 인도에 알리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었지만, 현지와의 협력이 한국과 인도의 신진작가들 간의 이머징 아티스트 교류에 제한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장기적으로는 현지 갤러리, 아티스트, 미술관을 비롯하여 인도 미술 생태계와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VIP 프리뷰에 인도 현대미술관(NGMA) 관장과 아트인디아 관계자 등 인도미술계의 주요 인사가 참석하여 협력 가능성을 타진한 점은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아직은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에는 이른 시점이다. 이는 오히려 장기적인 전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과거 한국화랑협회에서 진행했던 ‘코리안 아트쇼’가 마이애미에서 3년간 꾸준히 진출하며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했던 것처럼, 인도 시장 또한 철저한 분석과 인내심 있는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도에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문화 자산이 매우 많으며, 이는 인도의 독창적 문화 자산을 활용할 기회를 제공한다. 타지마할을 비롯한 다층적 문화유산과 관광 프로그램을 결합한다면, 아트페어 방문객에게 기존 아트페어에서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문화 체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K-컨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인도의 젊은 세대들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 관람객이 윤희태의 작품을 찍고 있는 모습. / 사진. ⓒ 박준수
극복해야 할 또 다른 난관이 있다. 현장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현지 설치업체와 인력의 전문성 부족이었다. 아트페어에 적합한 가벽, 조명을 비롯한 장치, 시설물 등이 10여년 전 한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로 인해 운영사무국을 비롯한 한국에서 넘어간 전문 인력들은 아트페어를 무사히 오픈하기 위해 매일 철야 작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전시 품질 관리에는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동시에 한국 전시산업의 선진성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운영, 설치, 서비스 전반에서 이미 한국은 국제 수출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해 있으며, 아트아시아 델리 운영위원회가 한국 업체와 현지 업체의 협력을 유도한다면 이는 한국 전시산업의 해외 확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시설 장치 작업이 현장에서 목공으로 진행되었으며,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 부족한 장비와 노하우를 해결하였다. / 사진. ⓒ 박준수
전 세계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났던 아트페어가 최근 많이 사라지고 있다. 타이페이 당다이와 ADAA는 2026년의 개최를 취소한다고 발표하였고, 다른 많은 아트페어들 역시 규모를 축소하거나 연기를 고려하고 있다. 장기적 불황과 불안한 국제 정세, 트럼프 정부의 관세 문제(인도 역시 12%의 GST가 부가되고 있으며, 25년 9월 22일 5%로 변경되었으나, 아트아시아 델리는 그전에 항공, 해상으로 작품이 배송되어 12%로 책정되었다)로 인해 갤러리들은 국제아트페어 참여를 축소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참가 갤러리 모집이 어려워 많은 국제아트페어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로 인해 아트페어라고 하는 비즈니스 모델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아트아시아 델리가 시사하는 바는 단순한 해외 시장 개척에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인도의 미술 네트워크와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동아시아-남아시아 간 미술 교류는 거의 부재했다. 만약 아트아시아 델리가 이질적인 문화권을 연결하며 새로운 아시아 담론을 형성한다면, 이는 단순한 시장 확장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미술 행사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양국 간의 문화 교류의 교두보 역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트아시아 델리는 이제 첫발을 내디딘 단계다. 현장에 나와 함께 해보니, 앞으로 해나가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이 산재해 있었다. 무슨 일이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실험이 장기적 안목 속에서 체계적 전략과 협력 구조로 이어진다면, 한국 미술계와 전시산업은 인도라는 거대한 블루오션과 더불어 새로운 아시아 문화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