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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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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는 없다
    히말라야 남쪽 기슭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부탄과 네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두 곳에 대해 가진 인상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다. 부탄은 영국의 한 기관이 실시한 세계 행복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알려지면서 ‘마지막 샹그릴라’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특히나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선호하는 탄소 발자국이 적은 원시성, 경쟁 없는 느린 삶의 표본 같은 나라로 통한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세계 최하위권인 남녀평등지수, 한국보다 높은 살인율과 불평등지수, 가정 폭력에 따른 높은 자살률 등. 네팔은 부탄과 맞붙어 있으면서 같은 지리·환경적 요인으로 덩달아 행복 국가로 인식되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최근 국제 뉴스의 핫토픽이 된 네팔 사태는 이런 환상을 여지없이 깨트린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건 정부가 SNS 플랫폼을 차단하면서다. 당국이 SNS 봉쇄 이유로 제시한 ‘가짜 정보’라고 하는 것은 네팔 특권층 자녀들의 영상과 사진이다. 루이비통, 까르띠에 등 수천만원 상당의 명품 상자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든 장관 자제,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뒤 벤츠 승용차 앞에서 폼 잡고 있는 법관 아들 등의 모습과 그들을 비판한 영상이다.

    네팔을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몰아넣은 이번 시위를 주도한 계층은 20~30대 젊은 층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상당수가 해외 이주 노동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한국의 고용허가제 비자(E-9)로 들어오기 위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한국어 인증 시험에 합격해 대기 중이거나, 시험을 재수 중인 사람들도 있다. 해외 취업을 위해 하루 3000명의 네팔인이 고국을 떠난다고 한다.

    해외에 나간 네팔 근로자 220만 명이 본국으로 보내는 돈이 네팔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달한다. ‘송금 경제’로 유지되는 네팔에서 SNS는 해외 근로자와 국내 가족을 연결하는 중요한 소통선이기도 하다. 그런 SNS를 차단하자 국가와 권력자의 부패에 대해 켜켜이 쌓여 있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듯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도 없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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