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아르데코 100주년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화려함과 단순함이 공존하는 양식으로 전 세계 디자인에 영향을 끼친 바로 그 아르데코. 이를 기념해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파리 장식미술관에서는 2026년 1월 11일까지 패션계의 아르데코 선구자 폴 푸아레(Paul Poiret)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푸아레는 1879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패션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하우스를 설립하고, 여배우 레잔(Réjane)의 의상을 디자인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푸아레는 20세기 프랑스 패션계에 큰 영향을 미친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와 함께, 여성들의 허리와 가슴을 조이던 코르셋을 처음으로 없애고 하이웨이스트 실루엣의 조제핀 드레스를 선보였다. 여성의 몸을 해방시킨 혁신적인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Thérèse Bonney, Paul Poiret와 모델 Renee, Paris, 1927. / ⓒ l’ARCP, 파리시청 역사 도서관 Bibliothèque historique de la Ville de Paris
Thérèse Bonney, Paul Poiret와 모델 Renee, Paris, 1927. / ⓒ l’ARCP, 파리시청 역사 도서관 Bibliothèque historique de la Ville de Paris
아이러니컬하게도, 푸아레는 1910년대에 이르러 종아리 부분을 리본이나 밴드로 조이거나 치마폭이 극도로 좁은 호블 스커트(Hobble Skirt)를 디자인했다. 여성을 해방시켰던 그가, 오히려 여성들의 다리에 다시 족쇄를 채웠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유행은 1908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모터가 장착된 비행기에 탑승한 에디스 오길비 버그(Mrs. Edith Ogilby Berg)의 복장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당시 비행기에는 단순한 좌석만 설치돼 있었다. 치마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종아리 부분을 끈으로 묶었고, 이 독특한 실루엣이 푸아레에게 디자인 영감을 준 것이다.
치마를 졸라맨 최초의 미국 여성 승객 에디스 오길비 버그.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치마를 졸라맨 최초의 미국 여성 승객 에디스 오길비 버그.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푸아레의 디자인은 간결한 실루엣, 가벼운 소재, 밝고 산뜻한 색감을 통해 매우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화려한 색채는 20세기 초 야수파 화가들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학적 감수성을 한껏 드러낸다.
[왼쪽부터] 폴 푸아레가 디자인한 조제핀 이브닝드레스(1907), 퀼로트 드레스와 망토(1911), 이브닝코트(1910년 경). / © Les Arts Décoratifs/Christophe Dellière
[왼쪽부터] 폴 푸아레가 디자인한 조제핀 이브닝드레스(1907), 퀼로트 드레스와 망토(1911), 이브닝코트(1910년 경). / © Les Arts Décoratifs/Christophe Dellière
오리엔탈 정원의 술탄 파티

1910년부터 푸아레는 파리 안탱가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에서 화려한 테마 파티를 열기 시작했다. 이 파티는 당시 파리에서 가장 눈부신 사교 행사 중 하나로 손꼽혔다. 화가 키스 반 동겐(Kees van Dongen), 자유 무용의 거장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can)을 비롯한 사교계 인사들과 예술계 유명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푸아레가 기획한 많은 파티 중에서도, 1911년 6월 24일에 열린 《1002번째 밤(La Mille et Deuxième Nuit)》은 파리 사교계에 전설로 남은 행사가 되었다. 이날 푸아레는 자신을 이슬람의 술탄으로 분장하고, 저택의 정원 전체를 오리엔탈풍의 환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 튀어나온 듯한 분수와 양탄자, 향로 전등 등이 정원을 장식했고, 심지어 사슬에 묶인 표범 한 마리까지 등장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훗날 이 파티의 독창적인 연출이 까르띠에(Cartier)의 상징인 표범 모티프에 영감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911년 '1002번째의 밤'에서 폴 푸아레와 부인 드니즈(Denise Poiret). 푸아레의 아내이자 뮤즈였던 드니즈(Denise Poiret)는 그의 창작 세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단순한 모델을 넘어 디자이너이자 창작의 동반자로, 해방된 여성의 상징이자 세계적인 감각을 지닌 세련되고 교양 있는 인물이었다. / 필자 제공
1911년 '1002번째의 밤'에서 폴 푸아레와 부인 드니즈(Denise Poiret). 푸아레의 아내이자 뮤즈였던 드니즈(Denise Poiret)는 그의 창작 세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단순한 모델을 넘어 디자이너이자 창작의 동반자로, 해방된 여성의 상징이자 세계적인 감각을 지닌 세련되고 교양 있는 인물이었다. / 필자 제공
Delphi, 푸아레의 대표적인 드레스 중 하나인 야수 드레스를 입은 Denise Poiret, 1919. /  © Les Arts Décoratifs
Delphi, 푸아레의 대표적인 드레스 중 하나인 야수 드레스를 입은 Denise Poiret, 1919. / © Les Arts Décoratifs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의 선구자

푸아레는 홍보나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지기 이전부터 이미 그 중요성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단순히 여성복을 디자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는 다양한 예술가들과 긴밀한 교류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또한 미국의 아방가르드 수집가이자 갤러리 오너인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 등 국제적인 부유층 인사들과도 활발히 교류하며, 이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고객으로 자리 잡도록 했다.

푸아레는 단순한 패션 디자이너를 넘어 아트 디렉터로서의 역할을 개척한 선구자였다. 그는 패션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무대처럼 연출했고, 최초로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자신의 텍스타일, 무대 장식, 일러스트,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예술성을 불어넣었다. 오늘날 보편적인 전략이 된 예술가와 패션 브랜드의 협업은 푸아레에게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의 유명 화가 라울 뒤피는 푸아레와 협업해 《라 페르스(La Perse)》 컬렉션을 포함한 다양한 프린트 원단을 디자인했다. 일러스트레이터 폴 이리브(Paul Iribe)는 1908년 푸아레의 드레스 작품을 담은 《Les Robes de Paul Poiret》라는 패션 일러스트 앨범을 제작했는데, 이는 오늘날 브랜드 룩북이나 카탈로그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조르주 르팝(Georges Lepape)은 《라 가제트 뒤 봉 통(Gazette du bon ton)》을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푸아레의 작품을 그래픽으로 소개하며 그의 미학을 널리 알렸다.
라울 뒤피, La Perse 드레스 원단 디자인과 드레스. / 사진 출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 연구소 웹사이트
라울 뒤피, La Perse 드레스 원단 디자인과 드레스. / 사진 출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 연구소 웹사이트
폴 이리브의 푸아레의 드레스들(Les Robes de Paul Poiret, 1908)과. 조르주 르팝의 작품(1911). / 사진 출처. 위피피디아/© Les Arts Décoratifs
폴 이리브의 푸아레의 드레스들(Les Robes de Paul Poiret, 1908)과. 조르주 르팝의 작품(1911). / 사진 출처. 위피피디아/© Les Arts Décoratifs
푸아레는 글로벌 브랜드 개념을 처음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를 비롯해 인테리어, 향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브랜드를 구축했다. 특히 향수 조향사로서 딸 로진(Rosine)의 이름을 딴 《로진의 향수(Les Parfums de Rosine)》를 론칭했다. 각 향수 병은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독특하고 예술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Marie Vassilieff, Julien Viard, Henri Alméras, 로진의 향수, 1923. / © musée International de la Parfumerie
Marie Vassilieff, Julien Viard, Henri Alméras, 로진의 향수, 1923. / © musée International de la Parfumerie
1909년 초,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Ballets Russes) 파리 공연에서 푸아레는 음악, 무용, 무대 디자인, 의상 등 다양한 예술이 융합된 러시아 발레의 현대성에 깊이 매료됐다. 이 경험은 이후 그가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과 뇨타 이뇨카(Nijōta Inoka) 같은 무용수들의 무대 의상을 디자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는 1911년, 장식예술을 위한 아틀리에이자 교육기관인 라 메종 마르틴(Maison Martine)을 설립했다. 이곳은 당대의 아트 워크숍으로서 큰 역할을 했으며, 후에 바우하우스(Bauhaus) 설립에도 영감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Leon Bakst, 천일 야화의 세헤라자데(Sheherazade) 발레 무대 디자인, 1910. / © Les Arts Décoratifs
Leon Bakst, 천일 야화의 세헤라자데(Sheherazade) 발레 무대 디자인, 1910. / © Les Arts Décoratifs
푸아레는 20세기와 21세기의 수많은 디자이너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존 갈리아노, 크리스티앙 디오르,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이브 생로랑과 같은 디자이너들은 그의 오리엔탈리즘, 민속적인 요소, 축제적인 감각, 공연 예술에서 비롯된 색채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왔다. 폴 푸아레 패션 하우스는 2018년,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류바니스(Luvanis)로부터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인수하여, 현재는 푸아레라는 이름의 럭셔리 코스메틱 브랜드로 다시 태어났다.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