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더니즘 산문의 절정

러시아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안드레이 벨리는 1912년에서 1913년, 불과 몇 주에 걸쳐 장편 <페테르부르크>를 완성했다. 등장인물의 생각은 분기되고 부서지며 실제 사건이 섬망과 뒤섞인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20세기 모더니즘의 최고작 몇 편을 굳이 등수를 매겨 줄 세웠는데 <페테르부르크>를 경이로운 상상력의 비행으로 간주하며, <율리시스>에 이은 20세기 최고의 소설이라 평했다(<율리시스>는 <페테르부르크>보다 7년 후에 등장한 소설이다). 그런가 하면 파스테르나크가 서명한 벨리의 사망 기사에는 ‘제임스 조이스는 안드레이 벨리의 제자’라고 적혀 있다(물론 둘은 만난 적이 없다). <페테르부르크>는 혁명 직전 러시아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되며, 유럽과 아시아의 충돌이 일어나는 무대라는 오래된 러시아적 주제가 펼쳐지는 장소로서 제국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를 기하학으로 풀어냈다.
1910년 페테르부르크 넵스키대로 / 사진출처. russiainphotoru
1910년 페테르부르크 넵스키대로 / 사진출처. russiainphotoru
191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20세기 러시아의 대표적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크의 긴밀한 참여로 문을 연 출판사 ‘시린’(인간의 얼굴을 한 고대 러시아의 거대한 새. 그 목소리를 듣는 이는 자기 일생을 잊어버리고 사막으로 들어가 길을 잃고 죽는다. 낙원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이 새는 독특한 소리와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에서 <페테르부르크>는 출간되었다. 벨리는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촉발된 1905년 혁명의 결과를 이해하고 있었다. 대규모 파업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인민의 의지’ 조직을 필두로 한 테러 공격이 잦아지면서 이에 대응하는 황실 경찰의 조직력 또한 강화되었다. 안드레이 벨리는 이 모든 재앙의 예감과 1905년 수도를 장악한 광기를 표현하려 했고 다채롭게 확장된 이미지, 반전, 암시로 텍스트를 채웠다.

굳이 작품의 줄거리를 꼽아본다면, 그것은 혁명 정치에 휘말려 어떤 정부 고위 관리, 즉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는 임무를 맡은 불운한 니콜라이 아폴로노비치 아블레우호프의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다. 어느 순간, 니콜라이는 피터 대제의 유명한 청동 기마상의 말발굽 소리에 페테르부르크의 안개 속에서 쫓기기 시작한다.
안드레이 벨리(1904) / 사진출처. ©dzenru
안드레이 벨리(1904) / 사진출처. ©dzenru
페테르부르크 신화의 대단원

<페테르부르크>에서 벨리는 고골의 <넵스키대로>와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이 도시에 대한 문학적 신화를 이어간다. 벨리에게 이 도시는 노란 불빛으로 밝혀진 어두운 거리를 따라 끔찍한 사람들이 걷고 있는 공간이다. 서쪽과 동쪽, 질서와 혼돈이라는 두 요소가 이 도시에서 충돌한다. 그런가 하면, 직선, 사각형 및 평행 육면체로 구성된 매우 엄격한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폴론 아폴로노비치는 “니스칠한 육면체” 같은 마차를 타고 완벽하게 곧은 중앙 거리를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모든 것을 구조화하기에 바쁜 이 정부 관리에게 도시는 순수한 기하학으로 단순화되어 완전하게 안전한 곳이 된다. "아폴론 아폴로노비치는 이 상황에 대한 논리적이고 평온한 해답을 찾기 위해 사랑하는 정육면체에 대한 사색에 몰두했다." 그러나 직선 도로는 안개로 덮이고 그는 시야를 잃게 된다. "원로원 의원은 <...> 카오스, 바로 그 무한대의 카오스를 보았다. 태고로부터 원로원 의원의 집을 주시하던 안개 낀 수많은 굴뚝, 바실리옙스키 섬의 카오스였다." 도시는 비와 진창에 휩싸이고 있으며 물에 씻겨 내려가고 있다. 초록빛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주민들을 지켜본다. 정어리 통조림 속 시계태엽 장치가 폭발을 예고한다. 아폴론 아폴로노비치는 책상 한가운데 놓여 있는 '평면기하학' 강의서를 "꿈으로 출발하기 전," 펼쳐놓고 "은혜로운 형상 (평행육면체, 평행사변형, 원뿔, 정육면체, 피라미드) 을 관조함으로써, 꿈에 복종하지 않는 삶을 머릿속에서 진정"시키곤 했다.

아폴론 아폴로노비치가 절대적인 서구주의자라면, 그의 아들 니콜라이는 칸트를 열독하면서도 아시아의 영향권에 있기도 하다. 니콜라이는 부하라 실내복을 입고 타타르 신발을 신고 거실을 돌아다닌다. 사랑하는 소피아 리후티나(그녀는 심지어 친구의 아내다)에게 버림받은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강에 몸을 던지고 싶어 한다. 그를 자살로부터 구출한 한 혁명가는 아버지인 아폴론 아폴로노비치를 죽임으로써 다른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하라고 부추긴다. 감정적으로 니콜라이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곧 이 생각을 후회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제안 혹은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테러리스트들이 그를 차르의 비밀 경찰에게 넘겨주도록 (밀정에 의해) 이미 판이 짜여있다.

니콜라이의 거래를 상기시키는 것은 폭발물로 채워진 (개조된) 정어리 깡통이다. 악몽 속에서, 어린 니콜라이는 종종 인간의 모습을 한 폭탄(빠르게 팽창하는 가스)을 가지고 있었는데, 페프 페포비치 페프라는 이름의 공처럼 뚱뚱한 남자는 특유의 쉭쉭 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산산이 찢어졌다. 줄거리가 진행되는 동안 미친 이미지들은 종종 인물의 의식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에 실재하기 시작한다. 신비한 페르시아인 시쉬나르피예프는 테러리스트 두드킨의 알코올 중독 정신 착란에서 태어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점차 비합리적인 생물에 의해 점거되고 인물들은 음모를 꾸미거나 직접 테러리스트가 되는 방식으로 서로를 배신하고 죽인다. 빨간 망토를 두르고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정체불명의 남자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 여기저기에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는다. 밤에 받침대에서 내려오는 청동의 기사가 등장한다. 당연히 그는 푸시킨이 그려낸 피터 대제다.
안드레이 벨리가 그린 붉은 도미노 / 사진출처. researchgatenet
안드레이 벨리가 그린 붉은 도미노 / 사진출처. researchgatenet
혁명적 열정에 휩싸인 알코올 중독자 두드킨은 환각을 통해 자신의 지령자 리판첸코가 법 집행 기관의 선동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섬망 증세에 시달리던 그는 한밤중에 리판첸코의 집에 몰래 들어가 가위로 그를 찌른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집어삼킨 혁명적 투쟁은 끝나지 않는 악몽처럼 길게 이어진다. 이렇게 푸시킨과 고골과 도스토옙스키의 페테르부르크는 벨리의 페테르부르크를 통해 비로소 소비에트 레닌그라드로 이동한다.

혁명의 기운 한가운데 선 부르주아 지식인

안드레이 벨리의 본명은 보리스 니콜라예비치 부가예프(1880-1934)다. 모스크바의 저명한 지식인 가문(아버지는 유명 수학자, 어머니는 피아니스트로 사교계의 중심에 있었다)에서 태어난 그는 신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헌신적인 추종자였다. 그는 모스크바의 유서 깊은 지역인 아르바트에서 자랐고 수학, 생물학, 화학, 음악, 철학, 문학에 두루 관심을 두었다.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수학했고 상징주의 운동과 러시아 신칸트주의 학파에 모두 참여했다. 알렉산드르 블로크와 그의 아내인 류보비 멘델레예바와 가깝게 지내면서 그녀와 사랑에 빠졌고, 그 때문에 두 시인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다(니콜라이 아폴로노비치와 친구 아내와의 스캔들과 유사하다).
[좌측부터] 안드레이 벨리, 류보비 멘델레예바, 알렉산드르 블로크 / 사진출처. © Formaslov
[좌측부터] 안드레이 벨리, 류보비 멘델레예바, 알렉산드르 블로크 / 사진출처. © Formaslov
스타일적으로 고골은 의심할 여지 없이 벨리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 자신도 고골의 스타일로 작업했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또한, 아블레우호프 부자는 투르게네프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을 구현하고, 니콜라이 아블레우호프가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에 나오는 스타브로긴의 특징을 캐리커처로 표현한 혁명적 허무주의자인 것도 사실이다. 한편, 아폴론 아블레우호프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정치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세 명의 차르 치하에서 고위 인사였던 콘스탄틴 포베도노스체프의 명백한 캐리커처다. 그는 매우 완고한 보수주의자였고, 벨리가 일상에서 발견하는 부정적 인물이었다.

프란츠 메링과 같은 비평가는 상징주의자들은 현실을 전염병처럼 피해 도망친다고 하며, 상징주의 문학을 인간의 사회적 조건이나 역사적 맥락을 외면한 채 주관적 인상과 신비주의적 상징에 의존해 현실을 해체하거나 탈정치화한다고 보았다. 이 분석은 소설에서도 인용되는 “종말을 예감한 부르주아는 신비주의에 매달린다”라는 구절과도 통하는데, 이는 엥겔스의 <반듀링론> (1878)에 나오는 것으로 엥겔스는 사회주의 체제가 창공을 나는 새처럼, 물질의 세계에서 자유의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 믿었다.

벨리의 상징주의를 반(反)혁명적이라 간단히 판단하기는 어려운데, 그를 비롯한 일군의 상징주의자들은 새 시대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벨리는 혁명을 우주의 형이상학적 전환으로 보기도 했다. 다만, 벨리의 사고는 서구주의 일변도의 당시 혁명 사상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서구적 교양인이자 아시아적 본능을 동시에 지닌 니콜라이가 실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 장면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지금 그는 오래된 비밀스러운 임무, 모든 질서를 해체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러시아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피와 살로 환생했다. 아리아인의 부패한 핏속에 태고의 용이 타올라야 했다. <...> 태고의 동양은 보이지 않는 폭탄을 우리 시대에 쏟아 부었다. 이제, 니콜라이 아폴로노비치-고대 투란인의 폭탄-는 고향을 바라보며 환희로 산화했다. 이제, 니콜라이 아폴로노비치의 얼굴에는 이미 잊힌 몽골인의 표정이 떠올랐다.”

과거에서 찾는 미래 전망

<페테르부르크>는 줄거리로만 본다면 한 편의 추리 소설 형식을 띠고 있으니 폭탄의 행방에 따라 인물들의 생사화복이 결정될 것이었다. 아폴론 아폴로노비치는 아들의 방을 살피다 무심코 이 정어리 통조림(모양의 폭탄)을 자기 방으로 가져간다. 어느 날 폭발은 빈방에서 일어난다. 아폴론 아폴로노비치의 (애인과 함께 해외로 도망쳤던) 아내가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막 개선되기 시작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망가진다. 아블레우호프 부부는 수도를 떠나 지방으로 가서 여생을 보낸다. 니콜라이 아폴로노비치는 이집트로 떠난 후 중동 국가들을 방문하며 <사자(死者)의 서(書)>와 <마네퐁의 기록>을 다시 해석한다. 그는 칸트는 잊고 미라에 이끌린다.

안드레이 벨리가 비대승적 밀교성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소설 <페테르부르크>를 외적으로는 혁명이라는 사건이 전개되지만, 실상 운명으로부터의 내면적 해방을 감추고 있는, 한 생애 속에서 펼쳐지는 종말론적 드라마로, 벨리가 흠모했던 루돌프 슈타이너의 ‘카르마의 드라마’ 모델을 구현한 작품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의 에필로그에서 언급되는 한 철학자의 이름은 그의 모색이 진행형이었음을 넌지시 말해준다.
레온 박스트가 그린 안드레이 벨리(1905)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레온 박스트가 그린 안드레이 벨리(1905)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니콜라이 아폴로노비치 아블레우호프는 부모가 사망한 후에야 러시아로 돌아온다. 그는 거의 은둔자의 삶을 이어간다. "그의 모습은 교회에서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최근에는 스코보로다 철학을 공부한다고 한다." 그리고리[흐리호리] 사비치 스코보로다(1722–1794)는 우화로 사유하는 철학자, 우크라이나의 소크라테스, 방랑하는 현인이었으며, 그의 사상은 헬레니즘 철학,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그리고 고대 루스[키이우 루스]의 영적 전통을 절묘하게 결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