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인과 동생이 불륜이라니"…끔찍한 사실에 이성 잃은 男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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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이후 마지막 천재'
돌에 숨결을 불어넣은 조각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Bernini)·上
돌에 숨결을 불어넣은 조각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Bernini)·上
골목에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자, 베르니니의 손이 분노로 떨렸습니다. 이성을 잃은 남자는 쇠지렛대를 집어 들고 홀린 듯 동생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기회를 틈타 동생의 옆구리를 후려쳤습니다. 갈비뼈 두 개가 부러진 동생은 허겁지겁 도망쳐 간신히 성당 안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지만 성당 안에서 사람을 해치면 사형감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갈 곳을 잃은 분노는 연인에게로 향했습니다. 베르니니는 하인을 불러 명령했습니다. 연인을 찾아가 그녀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라고. 하인은 그 끔찍한 명령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아무리 법체계가 느슨하고 인권 개념이 희박했던 17세기 로마라도, 이런 흉악 범죄는 중형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교황이었던 우르바노 8세는 베르니니에게 고작 ‘벌금형’을 내렸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의 솜방망이 처벌. 이어진 교황의 말은 더욱 황당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으로 로마에 태어난 천재 조각가다. 그런 천재는 때때로 독특한 행동도 할 수 있는 법이다. 우리는 이런 위대한 천재를 이해하고 보호해야 한다.”
압도적인 천재
긴말 않고 작품부터 보겠습니다. 1622년 완성된 조각 작품 ‘페르세포네의 납치’입니다.
1598년 이탈리아반도의 나폴리에서 조각가의 아들로 태어난 베르니니는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보였습니다. 예술가였던 아버지는 일찌감치 아들의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의 영재 교육 덕분에 베르니니는 불과 여덟 살의 나이에도 웬만한 어른 못지않은 그림과 조각 실력을 갖추게 됐습니다. 가족이 로마로 이사한 1606년, ‘꼬마 천재’ 베르니니에 대한 소문은 이미 그곳에도 퍼져 있었습니다. “실력을 한번 보고 싶군.” 예술을 사랑했던 교황 바오로 5세가 베르니니를 직접 불렀던 이유입니다.
“사람 머리를 한 번 그려보거라.” 베르니니를 본 교황은 말했습니다. 교황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니까, 긴장해서 그림을 망치더라도 적당히 격려해줘야겠군.’ 하지만 베르니니는 미소를 지은 채 되물었습니다. “어떤 머리를 그릴까요? 남자로 할까요, 여자로 할까요? 젊은이로 할까요, 늙은이로 할까요? 슬픈 표정, 유쾌한 표정, 비웃는 인상, 호감 가는 인상, 교황 성하께서는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당돌한 태도에 내심 놀란 교황은 말했습니다. “성 바오로의 얼굴을 그려보거라.”
어린 베르니니는 과감한 손놀림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30분 만에 스케치가 완성됐을 때, 완성된 작품을 본 교황과 추기경들은 그 뛰어난 실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합니다. 감동한 교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앞으로 우리 시대의 미켈란젤로가 될 것이다. 이 아이를 잘 가르치도록 하라.” 그리고 교황은 베르니니의 손에 금화 열두 닢을 올려줬습니다. 베르니니는 평생 그 금화를 쓰지 않고 간직했다고 합니다.
살아숨쉬는 돌
이제 베르니니는 교황의 사랑, 로마의 상징이 됩니다. 20대에 이미 그는 서양 조각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여럿 만들어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스물일곱 살 때 만든 ‘아폴론과 다프네’입니다.
조각이 로마 시민들의 화젯거리가 되면서 몬토야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혹시 몬토야 선생님 아니십니까?” 길거리를 걷는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겁니다. 베르니니의 전기를 쓴 프랑코 모르만도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베르니니가 조각상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몬토야는 그가 죽은 직후 영원히 잊혔을 겁니다. 하지만 조각상 덕분에 그는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됐습니다.”
보르게세 추기경이 베르니니를 찾아왔을 때, 베르니니는 이마 부분에 금이 간 조각을 보여줬습니다. 추기경은 속으로 크게 놀라고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베르니니를 너무나도 존경했기에 실망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베르니니도 아무렇지 않은 척 추기경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몇 분 후, 베르니니는 방 한쪽에 놓인 천을 잡아당겼습니다. 그 밑에는 흠집 없는 또 다른 조각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추기경은 감격해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이 됐습니다.
괴팍한 천재의 막장 드라마
천재 중에서는 괴팍한 사람이 많습니다. 베르니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아들은 베르니니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베르니니의 눈빛은 너무 날카로워서 공포감이 들 정도였다. 일에 몰두할 때는 너무 열정적이어서, 불을 뿜을 정도로 분노하는 일이 잦았다.” 베르니니 자신도 말했습니다. “나는 일할 때 피를 토한다.” 한편 사생활에서 그는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었습니다. 노년기에 접어든 베르니니는 스스로의 젊은 시절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나는 주색(酒色)에 빠져 있었다.”젊은 시절의 베르니니가 가장 뜨겁게 사랑했던 여성은 코스탄차 보나렐리였습니다. 코스탄차는 베르니니가 함께 일하던 동료의 아내. 그러니까 베르니니와 코스탄차의 관계는, 불륜이었습니다. 다만 코스탄차의 남편은 이런 관계를 암묵적으로 허락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베르니니가 30대 후반일 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2년 가까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베르니니의 귀에는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베르니니의 동생이 코스탄차와 불륜을 벌이고 있다”는 거였지요. 1638년 5월의 어느 날, 베르니니는 그 소문을 직접 확인해보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베르니니는 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베르니니는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시골로 출장을 좀 다녀올 거야. 며칠 걸릴 것 같아.”
그리고 다음날 아침, 베르니니는 로마를 떠나는 대신 코스탄차의 집 근처에 마차를 세운 뒤 골목에 숨었습니다. 얼마 안 돼 베르니니는 집에서 나오는 동생과 그를 배웅하는 코스탄차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소문이 사실이었던 겁니다. 베르니니는 분노와 모욕감에 치를 떨며 동생을 쫓아가 쇠지렛대로 마구 때렸습니다. 분노에 미쳐버린 베르니니에게는, 자신과 코스탄차의 관계도 불륜이었다는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인을 시켜 코스탄차에게까지 해코지를 했습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린 베르니니는 끝내 동생을 살해하기로 결심합니다. 칼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동생을 쫓아갔습니다. 어머니가 울면서 말려도 소용없었습니다. 동생은 근처 성당으로 간신히 도망쳤습니다. 베르니니는 뒤를 쫓아 성당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성당 안에서 살인을 저지를 수 없었던 베르니니는 결국 발길을 돌렸습니다. 동생은 곧 다른 도시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 ‘막장 드라마’는 당시 로마에서 엄청난 이슈가 됐습니다. 몇백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사건의 세부 사항을 이렇게 자세히 알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입니다.
당시 로마는 유럽 전체의 정치·문화 수도가 되기 위해 프랑스, 스페인 등 다른 강대국들과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무기는 예술. 탁월한 작품을 활용해 교황청의 권위를 과시하고 고대 로마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게 교황청의 계획이었습니다.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베르니니는 그 핵심 퍼즐이었습니다. 그러니 베르니니가 중형을 받게 된다면 교황 자신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지는 건 물론, 로마의 위상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베르니니는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베르니니는 또 다른 사건으로 인해 예술가 생명이 위험해질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이번에는 사생활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작품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기사는 Bernini: His Life and His Rome(Franco Mormando 지음), 디자인 천재(제이크 모리세이 지음, 김난령 옮김), Bernini(Anna Coliva, Andrea Bacchi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 담당 기자가 미술사의 거장들과 고고학, 역사 등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국내 문화 분야 구독자 1위 연재물입니다. 매주 토요일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미술 소식과 지금 열리는 전시에 대한 심층 분석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 구독 중인 7만여명의 독자와 함께 아름다운 작품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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