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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트리 문을 열면 보이는 내밀한 인간의 초상
정수영 개인전 ‘I want to be invited, but I don’t want to attend’
학고재 갤러리에서 6월 28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6월 28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정수영 개인전 ‘I want to be invited, but I don’t want to attend’에는 15점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런데 어디에도 초상화라 생각되는 얼굴이 그려진 그림이 없다. 여느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팬트리’ 내부가 그려져 있을 뿐이다. 팬트리는 식재료를 비롯해 술, 조미료, 통조림, 주방기구 등 생활필수품을 보관하는 작은 저장실인데, 어딜 봐서 ‘Pantry(팬트리)’라 이름 붙은 이 연작들을 초상화라 말하는 걸까.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Pantry 7’과 ‘Pantry 8’이다. 같은 팬트리이지만 열리는 순간과 활짝 열린 모습을 각각 담아낸 그림이다. ‘Pantry 7’을 보면 마치 팬트리 주인이 예술적 소양이 깊고 질서(cosmos) 정연한 사람 같다. 앤디 워홀, 알렉스 카츠, 앙리 마티스, 요시토모 나라 등의 그림과 엽서들이 문에 다소 과할 정도로 깔끔하게 붙어 있다. 하지만 ‘Pantry 8’에 나타난 팬트리 속 공간은 제대로 정리정돈 되지 않은 혼돈(chaos) 자체다. 이는 아마도 작가의 자화상일 가능성이 크다. 얼굴은 없지만, 이보다 솔직한 인물 묘사가 또 있을까. 치토스 등 자극적인 스낵들로 가득찬 것 역시 식사보단 군것질을 즐기는 작가의 자화상이다.
독특한 팬트리 초상화는 일상적 공간을 그리는 정수영의 작업방식의 한 갈래다.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의 왕립예술학교 유학을 다녀온 그는 겉보기와 달리 ‘인싸(무리에서 잘 어울려 노는 사람)’와 거리가 멀다.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을 혼자 보내는 그는 컵에 남은 물 자국, 먹다 남은 음식, 바닥에 놓인 옷가지 등 스쳐 지나갈 법한 장면을 보다 오래 응시한다. 바에 진열된 술병의 비워진 정도를 보며 이곳에 들른 사람들이 쌓은 시간을 생각해보는 ‘Waiting for Nobody’ 같은 작품들을 이렇게 그렸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