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빛낸 작곡가들의 마지막을 기리는 <백조의 노래>, 그 네 번째로 만나볼 명곡은 바로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마지막 명작입니다.

왈츠의 왕(Walzerkönig)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라데츠키 행진곡>, <비둘기 왈츠>, <안넨 폴카> 등을 작곡,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장남입니다. 21세의 나이에 첫째 부인 안나 슈트라임과의 사이에서 장남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비롯하여 4남 2녀를 낳았으며, 에밀리 트람푸쉬와의 사이에서 8명의 사생아를 낳았던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자신의 아들들이 자신처럼 음악가의 길을 걷는 것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많은 식구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들이 자신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을 견제하였던 까닭이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비롯하여 그의 바로 아래 동생 요제프 슈트라우스와 사생아들을 제외한 막내 에두아르드 슈트라우스는 아버지처럼 왈츠 음악가의 삶을 살았는데요, 특히 둘째인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빈 공과대학교에 진학하여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음에도 300곡에 가까운 작품을 작곡하며 형의 일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염려했던 것을 현실로 이뤘던 인물이 바로 첫째였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어머니 안나가 막내인 에두아르드를 임신하였을 때,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가족을 떠나 모자 제작자였던 에밀리 트람푸쉬와 가정을 꾸리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가족을 버린 아버지 대신 부양의 의무를 맡게 되었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와의 경쟁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점차 왈츠의 왕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망하고 난 뒤에는 아버지의 오케스트라까지 병합하여 자신의 악단으로 만들 정도의 성공을 거두게 되었죠. 그는 아버지를 넘어선 것은 물론 베르디나 브람스,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같은 음악가들의 존경을 받는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그러나 30대부터는 자신의 오케스트라 운영과 지휘를 동생들에게 맡기고 작곡에 전념하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그는 우리에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예술가의 삶>, <남국의 장미>, <빈 숲 이야기>, <천둥과 번개>, <피치카토 폴카>와 같은 500곡이 넘는 왈츠와 행진곡, 폴카 곡들을 남겼습니다. 또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1892년에 작곡한 오페라 <파스만 기사>는 물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1874년의 오페레타 <박쥐>, <로마 카니발>, <인디고와 40인의 도둑>, <여왕의 레이스 손수건>, <베니스의 밤> 등 15개의 오페레타를 작곡하였는데요. 그가 작곡한 유일한 발레 작품이 바로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백조의 노래>인 유작 <신데렐라>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발레 <신데렐라> 악보 표지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발레 <신데렐라> 악보 표지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신데렐라>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화입니다. 계모와 의붓언니들에게 핍박받던 소녀가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만큼 착한 마음씨를 아끼는 요정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드레스와 유리 구두를 신고 무도회에 가게 되지만 자정에는 그 마법이 풀리기 때문에 왕자와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도 잠시 급히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죠. 왕자는 혼비백산하여 떠나던 소녀가 남긴 유리 구두 한 짝을 들고 전국을 떠돌며 소녀를 찾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동화는 우리나라의 콩쥐팥쥐 이야기와 많이 닮아있는데요.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 이야기를 1697년,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가 각색을 하였고, 1812년에는 독일의 동화 작가 그림 형제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이 동화로 각색하였으며 로시니가 2막의 오페라 <라 체네렌톨라>로 완성하여 지금도 무대에 올려지고 있습니다.
프리츠 딩거(Fritz Dinger)가 그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발레 <신데렐라>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프리츠 딩거(Fritz Dinger)가 그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발레 <신데렐라>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유작인 발레 <신데렐라>는 3막의 발레 음악으로, 1898년, 요한 슈트라우스의 유일한 오페라 <파스만 기사>를 보고 감명받은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가 적극적으로 제안하여 작곡이 시작되었습니다. 빈 궁정 오페라의 감독이자 지휘자였던 구스타프 말러를 비롯하여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발레 시나리오 응모전까지 치르는 대형 프로젝트였음에도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현대적인 배경으로 각색된 이 시나리오를 그렇게 탐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한 까닭에서였을까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그는 1막과 3막의 절반만을 완성하고 이듬해인 1899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미완성 작품으로 남을 뻔했던 이 발레는 <한국의 신부>, <인형 요정> 등의 단막 발레를 작곡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자 궁정 발레단의 지휘자 요제프 바이어가 요한 슈트라우스가 남긴 전체 스케치를 토대로 곡을 완성하였습니다. 계약에 따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만을 사용하여 곡을 완성한 요제프 바이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지휘하기로 약속했던 구스타프 말러는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고, 독창성이 의심된다며 초연을 거절하였습니다. 1901년에서야 독일 베를린에서 초연이 올려진 이 발레는 마침내 1907년, 말러가 빈 궁정 오페라를 떠나자, 그 자리를 이어받은 오스트리아의 지휘자이자 작곡가 파울 바인가르트너에 의하여 원래의 목적대로 7년 만에 빈 궁정 오페라의 무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요제프 바이어(1852-1913)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요제프 바이어(1852-1913)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포시즌스라는 현대의 백화점을 배경으로 매장 주인 구스타프, 동생 프란츠, 그리고 직원인 아름다운 그레테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그레테의 계모이자 감독관 레온티네 부인과 두 딸이 일으키는 갈등으로 진행되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발레 <신데렐라>는 특히 2막에 등장하는 구스타프의 파티에서 연출되는 다양한 군무와 춤곡들이 눈길을 끕니다. 요즘은 흔하게 볼 수 있는 현대극으로의 각색을 무려 100년도 더 전에 시도했다는 점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매우 인상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작곡가의 ‘백조의 노래’였으나 미완으로 남겨졌기에, 그를 아끼던 친구가 완성하였음에도 무대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지금도 아주 가끔만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유작이 바로 <신데렐라>입니다. 올해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탄생 200주년이기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왈츠의 왕이 남긴 유일한 발레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을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늘길 바라는 사람들의 바람도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박소현 작가•바이올린/비올라 연주자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발레 <신데렐라> 관련 영상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발레 <신데렐라> 1막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발레 <신데렐라> 2막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발레 <신데렐라> 3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