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 도착한 건 이른 아침이었다. 먼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갓 구운 시나몬 롤을 들고 있었고, 생선 가판대 앞에서는 구경꾼의 탄성이 터졌다. 스타벅스 1호점 앞에는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커피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실감 났다.

사실 시애틀에 온 데엔 영화 한 편이 작용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30년이 넘은 영화인데 이상하게 잊히지 않았다.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라디오 방송을 타고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고, 결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마주 선다. 어찌 보면 비현실적이고 조금은 과장된 이야기지만, 그 감정만큼은 묘하게 오래 남아있었다.

그 흐릿하고 낭만적인 서사의 끝자락이 시애틀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유리로 만든 정원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내가 가는 곳이다.

스페이스 니들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목표 지점이 가까워졌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Chihuly Garden and Glass)'. 유리 조각이 심어져 자라고 있는 정원, 내가 이 도시에 온 이유였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글라스하우스'에서 보이는 스페이스 니들 / 사진. ©unsplash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글라스하우스'에서 보이는 스페이스 니들 / 사진. ©unsplash
정문을 지나자 투명한 세계가 펼쳐졌다. 실내 갤러리는 조명이 낮았다. 조각들은 마치 물속에서 피어나는 해초 같았다. 유리는 여기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색은 강했고, 선은 부드러웠다.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들이 질서 있게 흩어져 있었다. 유리가 이렇게 유기적인 재료였나 싶은 순간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걸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떻게 이런 걸 생각했을까? 유리를 불어 꽃을 만들고, 정원에 심고, 그 위로 햇빛이 흐르도록 공간을 만든 사람. 치훌리라는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이곳에서 처음 제대로 마주했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 출처.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 홈페이지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 출처.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 홈페이지
데일 치훌리(Dale Chihuly)는 시애틀에서 멀지 않은 곳,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유리창 너머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운 사람 같았다. 처음엔 실내 디자인을 공부했고 우연히 유리에 빠졌다. 그에게 유리는 빛이 머무는 공간이었고, 선이 흐를 수 있는 여백이었다.

그는 유리를 혼자 만드는 것보다 함께 만들어야 하는 재료로 여겼다. 베니스에서 유리 불기를 배운 뒤 팀워크를 예술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수십 명이 함께 작업해야 완성되는 유리 구조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로만 가능했다. 그건 유리가 가진 본성이기도 하다. 깨지기 쉬우면서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재료.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가 생긴 건 2012년에 시애틀 센터 안에 미술관과 정원을 짓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됐다. 기존 건물은 허물지 않고 전시장으로 바꿨고, 그 주위엔 유리를 심을 수 있는 정원이 만들어졌다. 뭔가를 없애지 않고, 거기 있는 걸 받아들이고 다듬는 방식. 마치 유리가 빛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공간도 치훌리의 손을 거치며 다시 태어났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야외 정원 / 출처.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 홈페이지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야외 정원 / 출처.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 홈페이지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어둠이었다. 바깥의 햇빛은 저 멀리 남겨지고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자 공간은 전혀 다른 리듬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 글은 내가 느낀 그 감정을 따라 전시 동선을 하나씩 따라가며 기록한 것이다. 마치 당신도 그 공간을 함께 걷고 있는 것처럼.

1. 치훌리의 영감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치훌리라는 인물에 대한 배경이 펼쳐진다. 고향의 물소리와 해안 풍경, 어머니의 정원에서 받은 기억, 그리고 태평양 북서부 해안을 따라 살아가는 원주민 부족들의 시각문화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전시는 그의 시선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갤러리 한편에는 '바쿠니', '실린더', '부드러운 실린더' 등 초기 시리즈와 더불어, 북미 원주민의 짠 바구니나 무역품, 에드워드 S. 커티스의 사진 자료까지 함께 전시돼 있다. 치훌리가 지역과 공동체의 미적 전통을 계승하려 했던 예술가라는 점이 드러난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치훌리의 영감' / 사진. ©최영식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치훌리의 영감' / 사진. ©최영식
2. 해양생물실 (Sealife Room)

문을 지나면 바다로 들어간다. 해양생물실은 푸른 유리로 이루어진 15피트 높이의 'Sealife Tower'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바다에 살고 있는 불가사리, 해파리, 물고기, 성게, 가오리 같은 존재들이 형상화되어 있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그 무게와 규모에 놀라게 된다. 이 공간은 치훌리가 바다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의 고백이다. 주변 벽면에는 Sealife Drawings와 Vessels도 함께 전시돼 있어 평면과 입체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이곳은 단순히 형상을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유리를 통해 바다의 흐름과 생명력, 빛의 반사까지 담아내려는 시도가 곳곳에 느껴진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해양생물실' / 사진. ©최영식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해양생물실' / 사진. ©최영식
3. 페르시아 천장 (Persian Ceiling)

곧 이어지는 페르시아 천장 공간에서는 시선이 위를 향하게 된다. 1992년 시애틀의 새 미술관 개관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이 시리즈는 다양한 색과 크기의 유리 접시, 컵, 꽃잎 모양 조각들이 천장 유리창 위에 배열되어 있다. 아래에서 보면 색채가 겹치며 입체적인 패턴을 만든다. 형태의 중심이 아니라 그 그림자와 중첩에 집중한 구성이다. 1986년부터 시도된 이 시리즈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조각, 더 복잡한 구조로 발전했고, 이제는 건축 구조물처럼 공간 자체를 구성한다. 빛이 통과하는 천장을 통해 마치 색유리가 하늘을 덮은 것 같은 몰입감을 준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내부 갤러리 '페르시아 천장' / 사진. ©최영식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내부 갤러리 '페르시아 천장' / 사진. ©최영식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내부 갤러리 '페르시아 천장' 작품 세부 / 사진. ©unsplash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내부 갤러리 '페르시아 천장' 작품 세부 / 사진. ©unsplash
4. 밀레 피오리 (Mille Fiori, 천 개의 꽃)

갤러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밀레 피오리'다. 이탈리아어로 '천 개의 꽃'을 뜻하는 이 시리즈는 2003년 타코마 미술관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이후 치훌리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형형색색의 유리꽃들이 하나의 정원처럼 길게 펼쳐져 있고, 곡선과 색의 흐름은 마치 살아 있는 식물의 군락처럼 보인다. 그가 말하길, 이 유리 정원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정원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밀레 피오리' / 사진. ©최영식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밀레 피오리' / 사진. ©최영식
5. 이케바나와 플로트 보트 (Ikebana and Float Boats)

다음 방은 전시장 전체에서 가장 이색적인 공간 중 하나다. 조명 아래에는 두 척의 배가 놓여 있다. 하나는 꽃을 닮은 곡선의 유리 조각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또 하나는 둥글고 투명한 구형 유리로 채워져 있다. 각각 '이케바나 보트'와 '니지마 플로트 보트'라 불린다.

이 시리즈는 1995년 핀란드 누타야르비의 호수에서 시작되었다. 치훌리는 어린이들이 호수에 유리 조각을 띄우는 걸 관찰하다가 유리와 물의 상호작용에 매료되어 이 작업을 구상했다고 한다. 여기서 이케바나는 일본 전통 꽃꽂이에서 영감을 받은 형식이고, 플로트 보트는 치훌리가 유년기 일본 해안에서 보았던 어망용 유리 부표에서 착안한 것이다.

정적인 전시물이 아니라 마치 유리꽃과 유리물방울이 배를 타고 물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인상이었다. 관람객의 시선도 배 위를 따라 유유히 떠돌게 된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이케바나와 플로트 보트' / 사진. ©최영식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이케바나와 플로트 보트' / 사진. ©최영식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이케바나와 플로트 보트' 작품 세부 / 사진. ©unsplash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이케바나와 플로트 보트' 작품 세부 / 사진. ©unsplash
6. 샹들리에 (Chandeliers)

전시장 후반부로 갈수록 천장이 점점 높아진다. 머리 위로 시선을 옮기면 거대한 유리 샹들리에가 한 점씩 걸려 있다. 이것은 치훌리의 대표적인 실험 중 하나다. 그는 공간 속 예술, 특히 '천장'이라는 구조가 단순히 건축 요소를 넘어서 예술의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1992년 시애틀 미술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부터 이 생각이 본격화되었고, 이후 1995~1996년 프로젝트에서는 베니스 전역의 공공 공간과 전통 건축에 13점의 샹들리에를 설치했다.

그중 한 점이 이 방의 중심에 놓여 있다. 실제로 그가 작업을 시작하면서 '공중에 떠 있는 형태의 예술'을 탐색해 갔던 실마리가 이 샹들리에 시리즈에 모두 담겨 있다. 유리는 부유하며 공간을 재구성했고 그 아래 서 있는 관람자에게는 마치 색채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듯한 착각을 준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샹들리에' / 사진. ©unsplash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샹들리에' / 사진. ©unsplash
7. 마키아 숲 (Macchia Forest)

전시의 마지막, 그리고 가장 색이 폭발하는 공간. 이곳은 일종의 클라이맥스다. 치훌리는 1981년, 세상에서 가능한 한 많은 색을 한 작품에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키아(Macchia)' 시리즈를 시작했다.

마키아는 이탈리아어로 '점, 얼룩'을 뜻한다. 그는 핫숍에서 구할 수 있는 300여 가지 색을 조합해 실험했고, 친구가 제안한 이름처럼 유리 위에 점과 층, 얼룩처럼 색을 쌓아 올렸다. 이 방의 조각들은 실내와 실외의 빛을 모두 반영하기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제작되었고, 각 작품에는 복잡하게 겹쳐진 색과 입체적인 조명이 반사된다.

치훌리는 이 시리즈에서 특히 색채와 질감의 가능성을 확장했고 각 작품은 따로 존재하면서도 숲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걷는 동안, 색이 앞에서 밀려오고 뒤에서 따라붙는 느낌. 일종의 '빛의 숲'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마키아 숲' / 사진. ©최영식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실내 갤러리 '마키아 숲' / 사진. ©최영식

야외 정원에 나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유리로 만들어진 나무였다. 실제 나무와 나란히 서 있었고 두 소재는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조화로웠다. 어느 쪽이 살아 있는 나무인지, 어느 쪽이 유리로 빚어진 조각인지, 경계는 흐릿했다. 유리는 빛을 머금고 있었고 나뭇잎은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둘 다 그 자리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야외 정원 / 사진. ©최영식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야외 정원 / 사진. ©최영식
그 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현실과 우연이 교차하던 장면들, 낯선 도시에서 두 사람이 마침내 만났던 그 느낌. 이 정원에서도 현실과 비현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유리와 나무가 함께 자라듯 영화의 장면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풍경도 겹쳐졌다. 그 모든 것이 시애틀이라는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전시장을 나서는 길, 유리 조각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 들어올 때보다 빛이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유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내 안의 감각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야외 정원 / 사진. ©unsplash
치훌리 가든 앤 글라스의 야외 정원 / 사진. ©unsplash
시애틀을 떠난 지금, 그곳에서 본 유리 하나가 마음에 남아있다. 형태는 다 잊히더라도, 그 빛만큼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최영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