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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미안하구나!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빵을 굽고, 환자를 돌보고, 구두를 닦고, 국밥을
파는 이들이 다 내 부처고 예수이며 참 스승이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파는 이들이 다 내 부처고 예수이며 참 스승이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햇빛이 부끄러워 그늘만 디뎠지
이 세상에 한 생명으로 투기된 순간 인생이란 수레의 바퀴를 굴리며 나아갈 운명에 처한다. 누군가는 망상이 설계한 세계에서 인생을 도모하고, 누군가는 명징한 인식과 야무진 태도로 세상과 마주한다. 젊은 시절 백수로 떠돌았다. 왜 가게 되었는지는 잊었는데, 남쪽 소도시의 역에서 내려 혼자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식당 한 자리에 앉아 국밥 몇 수저를 뜨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하는 일도 없이 살아서 국밥이나 뜨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부끄러움이 나를 기습한 탓이다.
햇빛 아래 걷는 게 부끄러워 그늘 아래를 찾아 발걸음을 딛던 시절이다.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에도, 졸졸거리는 시냇물에도, 함부로 뒹구는 돌멩이에도 미안하구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상습화하면 그 안에 내재된 순결성이 휘발되고 타성만 단단해진다. 혼자만의 참호에 웅크린 채 시 몇 줄을 쓰고 음악으로 도피하곤 했다. 음악에 몰입해 있는 동안은 도취한 듯 내 안에서 들끓던 번민이 죽고 고요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 연민 속에서 살아봐야 한다는 기특한 생각 몇 줄기에 매달렸다.
인간은 오래된 동물이다. 나 역시 인간 역사의 유장함 속에서 저마다 세상의 중심이라는 확증편향에 갇힌 채 사는 동물 중 일원이다. 탄광촌 막장 광부의 탄 묻은 검은 얼굴의 비탄도, 매혈로 쥔 돈 몇 푼과 국밥 한 그릇을 맞바꾸는 실업자의 퀭한 눈동자의 절망도, 어느 새벽 사창가 골목에서 제 팔뚝에 마약 주사를 찌르고 허청거리며 사라지던 사내의 병든 허무도 모른 채 모순과 불평등, 온갖 부조리로 굳어진 세상에서 나는 잘도 살았다.
인생은 마냥 쓰거나 달지 않아
첫 새벽 시내버스를 타고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부끄러워진다. 쓰레기를 수거하고 배관 시설을 고치는 사람들,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부끄러워진다. 일용직, 파출부, 간병인, 소방관, 지하철 기관사, 우편배달부도 제 직분을 성심으로 수행하며 우리 공동체를 돌본다. 이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테다. 이들에게 깊은 존경심과 유대감을 갖는 건 당연하다. 빵을 굽고, 환자를 돌보고, 구두를 닦고, 국밥을 파는 이들이 다 내 부처고 예수이며 참 스승이다.
오랫동안 1차 생산자들과 견줘 내 글쓰기의 비생산성이 참담했다. 굳은살 없는 손이 부끄럽고, 된 노동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실한 체력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은 자학을 낳고 자학은 절망을 낳는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만난 것은 스무 살 무렵이다. 신구문화사판 전후세계문학전집에서 <사양(斜陽)>을 읽은 것이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모 품에서 자랐다. 화류계 여성과 동반 자살 같은 스캔들로 구설에 올랐다. 국가 패망으로 공황에 빠져 방황하는 전후 일본 청년의 추앙을 받으면서도 우울증과 자학, 빈곤에 시달렸다. 그는 1948년 <인간실격>을 내놓고 연인과 다마강 수원지에서 투신했다. 나이 39세. 제 부끄러움, 자학, 절망 따위에 등 떠밀려 죽었다.
살아보니, 인생은 쓰디쓴 것도 마냥 달콤한 것도 아니다. 인생이 고해라는 말은 진부하다. 헌데 그 속에 진리가 있다. 인생은 경악할 만큼 짧고 야비할 만큼 슬프다. 태어남을 실수라고 말하는 염세주의자에게 인생이란 공허한 놀음일 테다. 우리는 인생을 배우지 못한 채 태어나 엉금엉금 기다가 어른이 되어 실수와 시행착오를 저지르며 허둥지둥하다 죽는다. 그런 인생이란 얼마나 덧없고 한심한가! “모든 인생은 망가져 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에세이에 나온 문장이다. 누가 제 인생이 망가지기를 바랄까마는 결국 그걸 피할 수 없는 까닭은 주체의 의도와 세상이 엇갈리는 데서 비롯되었을 테다.
성심 다해 자아라는 탑 쌓아야
다자이 오사무도, 에밀 시오랑도, 장폴 사르트르도 죽었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도 죽는다. 죽음이란 슬픔과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 베푸는 마지막 품삯이다. 인간은 그 품삯을 받아 들고 세상과 작별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생전에 “죽기 전에 온 힘을 다해 땀을 흘려보고 싶습니다. 그날그날을 가득 채워 살 것”이라고 편지에 쓴다. 온 힘을 다해 땀 흘리며 하루를 가득 채워 사는 일에 매진하겠다는 다짐은 건강한 의식에서 나왔을 테다. 이걸 자멸파 작가가 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은 명언이다. 과연 다자이 오사무는 인생을 멀리서 보았을까, 가까이에서 보았을까?
삶은 비속하고 야만적이며 부조리한 열정에 지나지 않는 걸까? 아침에 사과 한 알을 우적우적 깨물다가 벼락 치듯 깨닫는다. 참된 인간은 오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뿐이라는 걸! 미래의 인류여, 온갖 인간으로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나같이 자조하는 부류도 하나둘은 허용해야 되겠으나, 오, 태어나서 미안하구나! 인생 파산을 남 탓, 세상 탓으로 돌리며 살았다면 자학과 자조를 하면서라도 기어이 살아봐야 한다. 성심을 다해 자아라는 탑을 쌓고, 가슴 설레는 내일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