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밥상머리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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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성 기반한 식사라는 행위
상대 설득하는 '런천 테크닉'
냉전 시대에도 밥은 먹었는데
탄핵 날 선 구호에 만남 사라져
위태롭기만 한 당정 갈등
밥 한 끼 할 여유부터 되찾아야
정소람 정치부 차장
상대 설득하는 '런천 테크닉'
냉전 시대에도 밥은 먹었는데
탄핵 날 선 구호에 만남 사라져
위태롭기만 한 당정 갈등
밥 한 끼 할 여유부터 되찾아야
정소람 정치부 차장
![[토요칼럼] 밥상머리 정치](https://img.hankyung.com/photo/202410/07.23617464.1.jpg)
한국인은 누가 뭐래도 ‘밥의 민족’이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격무에 시달릴 때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위안한다. 만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도시락을 싸 들고’ 말린다. 죽도록 잡고 싶은 살인 사건 용의자에게조차 “밥은 먹고 다니냐”(영화 살인의 추억)고 묻지 않나.
![[토요칼럼] 밥상머리 정치](https://img.hankyung.com/photo/202410/AA.38281235.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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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요즘 우리 정치권에선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밥 한 끼 하는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다. 탄핵과 특검이란 날 선 구호만 오가는 정치권에서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가 마련되긴 쉽지 않다. 최근 만난 한 초선 의원도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고 했다. 간식으로 치킨을 시켜 주변 다른 당 소속 의원실에 나눠 줬는데, 다들 의아하게 바라봤다는 것이다. 그는 “다 같이 고생하는 이웃이니 함께 먹자는 것이었는데, 신기한 사람이라는 양 쳐다보더라”며 “초선이라 국회 관행을 몰랐나 싶었다”고 했다.
얼마 전 열린 국회의원 축구대회 후 뒤풀이가 22대 국회 들어 사실상 첫 여야 단체 식사 자리였다. 이날 참석한 한 여당 의원은 “상임위에서 만난 야당 의원은 괴물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술 한잔 하며 얘기를 나눠 보니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더라”고 말했다. 의미 있는 상견례지만, 과거엔 수시로 이뤄진 일이 어쩌다 한 번의 이벤트가 됐다는 점은 아쉽다. 한 중진 의원은 “과거에는 본회의장에서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며 싸웠다가도, 카메라가 꺼지고 나면 다 같이 ‘밥 먹으러 갑시다’라며 함께 나갔다”며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하던 그때 오히려 여야 협치가 잘 이뤄졌다”고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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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밥상머리에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런 상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이견을 좁혀 가는 게 정치의 힘이다. 파국으로 치닫는 당정 관계, 특검 요구와 거부권이란 도돌이표만 반복되는 국회를 회복하려면 밥 한 끼 할 수 있는 여유부터 되찾아야 한다. 남을 설득하기 위한 ‘런천 테크닉’ 대신 서로 제 편만 챙기며 상대는 배제하는 ‘만찬 테크닉’만 횡행하는 정치권의 모습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