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4월 2일 오후 3시 27분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창업자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가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KKR과 손을 잡기로 했다. 지난달 가족 간 표 대결에서 승리해 한미약품그룹 경영권을 확보했는데, 이참에 KKR의 힘을 빌려 경영권 분쟁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구상이다.

[단독] 한미약품 형제, KKR과 손잡고 '경영권 굳히기'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임종윤·종훈 이사 측은 KKR을 재무적투자자(FI)로 끌어들이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KKR이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사들인 뒤 이들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내용이다. 현재 임종윤·종훈 이사 측은 주식 40.57%(우호 지분 포함)를 확보하고 있는데 KKR이 지분을 사들여 전체 우호 지분을 51%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KKR은 우선 오너 일가를 제외한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지분 12.15%를 인수하는 협상을 하고 있다. 장·차남도 KKR에 일부 지분을 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장·차남과 KKR은 경영권 분쟁을 벌인 모친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장녀인 임주현 부회장 모녀와도 물밑 접촉에 나섰다. 모녀 측과의 협상이 결렬되면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공개 매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IB업계 일각에서는 궁극적으로 KKR이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미약품 장·차남, 향후 KKR에 경영권 넘길 수도"
상속세 부담에 창업자 가족 분쟁…글로벌 사모펀드, 틈새 파고들어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인 임종윤·종훈 형제는 모친인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 누이인 임주현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초반부터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손잡고 지분 확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향을 구상해 왔다. 당시엔 미국계 PEF인 베인캐피탈이 유력한 파트너였다. 다만 글로벌 PEF들이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투자처엔 투자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어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후 주주총회에서 임종윤·종훈 이사 측이 승리하고 OCI가 한미약품그룹 인수를 포기하자 글로벌 PEF들의 접촉이 이어졌다. 그동안 한국에서 거래 성사가 뜸했던 KKR이 베인캐피탈 대비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KKR은 임 이사 측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등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베인캐피탈도 차순위 협상 대상자로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열린 주총에서 임 이사 측이 친인척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등을 포섭한 데도 KKR 등 PEF의 역할이 컸다. 신 회장과 사촌들은 향후 PEF가 상당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지분을 사주는 조건으로 장·차남 측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임 이사 측과 KKR이 신 회장과 사촌들 지분을 사들이더라도 합산 지분율이 40%에 불과해 여전히 경영권 분쟁 씨앗이 남아 있다. 모녀 측 지분을 사 오거나 장내에서 지분을 추가로 매집해야 한다. 국민연금(7.66%)을 제외한 한미사이언스 소액주주 지분은 16% 수준이다. 일반 주주의 60% 이상이 임 이사 측에 지분을 팔아야 과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임 이사 측이 주총이 끝난 뒤 모녀 측에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민 것도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OCI그룹과의 대주주 지분 맞교환을 통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려고 한 모녀 입장에서도 현금 확보가 시급하다. 모녀가 납부해야 할 잔여 상속세는 1700억원에 달한다.

당장 유동성이 부족한 임 이사 형제도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 일부를 KKR에 넘길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내야 하는 남은 상속세는 9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아 상속세를 분납해왔지만 이미 담보대출액이 2700억원에 달해 한계에 이른 상황이다.

일각에선 장·차남이 명목상 경영권을 보장받기는 했지만 점진적으론 KKR에 한미약품그룹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오스템임플란트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백기사로 참여한 PEF가 나중에 회사를 인수했다.

최규옥 오스템임플란트 창업자는 2022년 9월부터 행동주의 펀드인 KCGI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자 MBK파트너스가 UCK파트너스와 손잡고 최 창업자의 백기사로 나섰다. 이후 MBK컨소시엄은 지난해 1월 공개매수를 진행해 오스템임플란트의 경영권을 차지했다. 오스템임플란트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백기사로 참여했던 PEF가 나중에 회사를 인수한 사례다.

차준호/박종관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