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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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첨단기술과 방위산업 등에 쓰이는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통제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핵심 광물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은 중국 기업의 자국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사용을 제한하는 추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 전선이 넓어지는 가운데 한국 등 핵심 자원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옐런 방중 직전…'반도체 광물' 볼모 잡은 中

‘미국에 대한 조치’ 명시한 중국

중국 공산당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지난 3일 밤 상무부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조치 발표 직후 전문가들을 인용해 “수출 통제는 주요 금속의 최종 사용자와 용도를 명확히 해 국가 안보 및 이익과 관련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조치이자 미국의 중국 첨단기술 접근 제한에 대한 상호 대응”이라고 보도했다. 상무부의 수출 통제는 미국 등 특정 국가를 적시하지 않았으나, 관영매체가 조치 대상이 미국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또 환구시보는 군사 전문가를 인용해 질화갈륨이 미국의 F-35 스텔스전투기 등의 최신 레이더에 사용된다고 언급했다. 이번 조치가 미국 방위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한 의도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익명의 전문가는 “군사적 용도가 포함되거나 중국의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해당 광물이 쓰일 경우 정부가 수출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천핑잉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이 다양한 희귀 금속을 세계에 공급하는데, 서방은 그 금속으로 제조한 반도체로 중국의 목을 조이고 있다”며 수출 통제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를 보완하기 위해 중국 기업의 아마존, 구글 등 자국 클라우드 서비스 접근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인공지능(AI)에 활용하는 고성능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고성능 반도체를 쓰는 미국 클라우드를 중국 기업이 쓰면 반도체 수출 제한이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현실화한 자원 전쟁

중국은 미국이 화웨이 등 자국 기업을 잇달아 ‘블랙리스트’에 올리던 2020년 말 대응책으로 수출통제법을 제정했다. 이후 중국이 희토류 등 희귀 광물을 무역 전쟁에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번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로 이런 예상이 현실화됐다.

중국은 채굴·제련 과정에서 환경 오염 우려가 큰 희귀 광물 생산량을 늘리면서 전 세계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구축해 왔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2021년 기준 중국이 97%, 67%를 점유하고 있다. 폴 트리올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이런 자원을 무기화하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 유럽연합(EU), 아시아의 계산이 크게 복잡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6~9일 방중을 앞둔 시점에서 중국이 ‘협상용’으로 이번 조치를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와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영준 산업정책실장 주재로 산업 공급망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중국의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 시행이 국내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했다고 밝혔다.

주 실장은 “이번 조치의 단기 수급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수출 통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투명하고 다른 품목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중국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신속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서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체처 발굴, 비축 등과 함께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의 대체 물질 기술 개발, 재자원화 등 대응 역량을 확충해 나갈 방침이다.

한편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자회사 키파운드리 등 한국 기업은 중국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한 상황 점검에 나섰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메모리 반도체의 원료가 아니라는 점에서 주력 사업에는 일단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갈륨을 가공한 질화갈륨을 활용한 차세대 전력반도체를 개발 중이라는 점에서 신사업에는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황정수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