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가 지났다. 코로나19로 연로한 부모님 문안조차 삼가야 했던 사상 초유의 설이었다. 가뜩이나 우울한 명절을 더 유감스럽게 한 것은 설 연휴 기간에 흐지부지 묻혀버린 청와대와 정치권, 대법원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일들이다.

청와대는 지난 10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산하 공공기관장 인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문재인 정부에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블랙리스트에 뒤따르는 감시나 사찰 등의 행위도 없었다”고 했다.

언론에서 이 사건을 ‘환경부 블랙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을 부정한 것이다. 아마도 찍어낼 대상자들의 명단이 담긴 구체적 문건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통상 블랙리스트라고 하면 문건의 존재 여부와는 무관하게 배제할 대상자를 추려내는 것 자체를 뜻한다는 건 상식이다. 청와대가 형식논리로 블랙리스트를 부정한 것은 전형적인 ‘눈 가리고 아웅’이다. 감시·사찰이 없었다는 해명도 사실과 다르다. 1심 법원은 “김 전 장관이 산하기관 임원들로부터 사표를 일괄 징수했고 거부하는 임원은 표적 감사를 해 사표를 받았다”고 판시했다.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이뿐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저녁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안을 재가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야당 동의 없이 임명된 지 이틀 만에 또다시 야당을 무시한 29번째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이제 국회 청문회나 임명동의 절차는 존재 의미조차 없어졌다. 황희 의원은 국회 본회의 중 외유, 자녀 유학비 출처, 논문 표절 등 온갖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동지’라는 이유로 장관이 됐다. 문화·체육·관광 관련 전문지식과 경험도 찾을 수 없다.

판사 탄핵을 거들고 거짓말까지 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쏟아지는 사퇴 압력을 뭉개며 버티기에 돌입한 듯하다. 경찰은 대법원이 ‘우려 표명’을 하자 청사 앞 규탄 시위조차 제한하고 있다.

정부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와 사법부가 형해화해 가고, 여당은 맘먹은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인다. 그러다 위법·부당한 사례가 드러나도 아니라고 우기고 딴청을 부리며 오히려 화를 낸다. 코로나는 백신으로 다스릴 수 있겠지만 국민의 답답한 마음은 무엇으로 치유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