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33)] 이슬람을 알아야 동남아가 보인다
무슬림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다. 총인구 2억7000만 명 중 약 84%인 2억2700만 명이 무슬림이다. 신태용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됐다는 소식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남아에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가 주요 이슬람 국가이며, 필리핀과 태국에서도 무슬림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인구 6억6000만 명 중 약 40%가 무슬림이다. 이슬람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라의 계시를 받아 7세기 중동에서 창시한 일신교다. 이슬람은 어떻게 동남아에 전파돼 정착·발전했고, 그 특징은 무엇일까.

동남아에 이슬람을 전파한 세력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인도 상인이었다. 이슬람의 수용을 주도한 세력은 무역항을 통치하던 토착 지배층이었다. 인도와의 해상무역로를 통해 13~14세기께 도래한 이슬람은 큰 갈등 없이 오늘날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 지역에 확산됐다. 이슬람의 수피즘(신비주의)적 경향으로 인해 기존 힌두교, 불교와 마찰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힌두교, 불교, 토착 종교와 공존하는 혼합주의적 양상을 띠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의 의례 기도문은 “선지자 무함마드, 대지와 물의 신, 마을의 신, 조상의 영혼, 쌀을 관장하는 여신 ‘스리(Sri)’에게 존경을 표합니다”고 돼 있다. 모든 신들이 망라돼 있는 것이다. 이런 혼합주의적 양상은 20세기까지 유지됐다.

[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33)] 이슬람을 알아야 동남아가 보인다
보수적 이슬람 목소리 커져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중동의 이슬람 부흥운동 또는 이슬람화 움직임이 동남아에도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했으나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패하면서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이슬람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운동이 확산되면서다.

말레이시아에선 1980년대 들어 정부 주도의 이슬람화 정책이 추진됐다. 이슬람 정당의 발흥, 할랄인증제, 이슬람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큰 변화가 나타났다.

인도네시아에서도 1970년대 이슬람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슬람 정당이 등장하고 일부 지역에 이슬람법에 기초한 조례가 제정되는 등 오늘날까지 이슬람화가 강화되고 있다. 2015년엔 편의점에서 맥주 판매가 금지되면서 불만이 폭발했다. 이에 자카르타시는 2016년 편의점에서의 맥주 판매를 허용하려 했다. 하지만 또 다른 반발과 논란이 일자, 자카르타시는 결국 대형마트와 관광업소에서만 맥주 판매를 허용키로 했다. 이는 다종교 사회인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의 영향이 커지는 한편 이슬람의 일반 대중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임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무슬림은 세속주의, 혼합주의, 개혁주의, 근본주의 및 급진주의 등 크게 다섯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세속주의는 종교적 규정이 일상적 삶에 개입하는 것을 부정하며 모든 종교를 대등하게 보는 다원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개혁주의는 이슬람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려 노력하되 서구식 변화에 호의적이다. 근본주의는 서구식 변화에 비판적이고 이슬람법에 따른 이슬람 국가 건설을 지향한다.

젊은 세대의 자유·민주 가치관 혼재

이와 같은 다양화 양상은 인도네시아 사회의 다원주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 때 중국계 기독교도인 바수키 푸르나마(일명 아혹) 주지사가 코란을 인용, 언급한 것이 신성모독으로 간주돼 투옥되면서 인도네시아 정치의 ‘정체성’ 논란과 함께 급진주의 이슬람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급기야 조코위 대통령이 지난 4월 대통령 선거에서 이슬람 보수세력을 아우르기 위해 이슬람 최고의결기구인 울레마협의회(MUI)의 마룹 아민 의장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지난 9월 인도네시아에서는 혼전 성관계를 금지하는 새로운 형법 제정 움직임에 대해 학생과 시민들이 반대시위를 벌이며 대혼란이 일어났다. 신형법은 혼전 성관계뿐 아니라 혼전 동거, 종교 신성모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적용하려는 의도로, 인도네시아 거주 외국인에게도 적용돼 문제가 더 커졌다. 몇몇 외국 대사관은 인도네시아 정부에 문제를 제기했다. 시민사회·인권단체들로부터도 사생활 침해 등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조코위 대통령이 국회 표결을 연기토록 요청함으로써 입법이 사실상 무산됐다. 이번 사건은 인도네시아에 보수적 이슬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보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워진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동남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적·종족적 정체성이 어떻게 발현되고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알아야 한다. 특히, 무슬림이 주류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와 소수이지만 정치·사회적 파급력이 큰 필리핀, 태국, 미얀마의 이슬람 추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해가 있어야 동남아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