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9’ 최종라운드(총상금 7억원) 18번홀(파4). 7타 차 열세를 딛고 숨가쁘게 달려온 ‘승부사’ 조정민(25)이 1m가 조금 넘는 버디 퍼트를 남겨놨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조정민도 그랬다. 성공하면 우승, 아니면 연장전이었다.

KLPGA투어엔 올해 유독 ‘1m 잔혹사’가 많았다. 앞서 조정민은 수혜자였다. 지난 4월 셀트리온퀸즈마스터즈에서 조정민은 김보아(24)가 1m 퍼트를 놓친 틈을 타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이번엔 그 반대였다. 조정민이 ‘골프 신’의 시험에 들었다. 조정민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짧은 거리지만 라인을 충분히 살폈다. ‘땡그랑.’ 18번홀에 모인 갤러리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조정민의 우승이었다.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9’에서 23일 우승한 조정민(25)이 우승컵을 들고 대회 관계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맨 뒷줄 왼쪽 두 번째부터 김광철 FMK 대표, 강춘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수석부회장, 이문환 BC카드 사장, 조정민,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박윤국 포천시장, 정구학 포천힐스CC 대표.   /포천힐스CC=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9’에서 23일 우승한 조정민(25)이 우승컵을 들고 대회 관계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맨 뒷줄 왼쪽 두 번째부터 김광철 FMK 대표, 강춘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수석부회장, 이문환 BC카드 사장, 조정민,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박윤국 포천시장, 정구학 포천힐스CC 대표. /포천힐스CC=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최혜진 이어 시즌 두 번째 ‘멀티 퀸’으로

조정민은 23일 경기 포천시 포천힐스CC(파72·6497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2개를 묶어 5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를 적어낸 그는 2위 조아연(11언더파·19)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조정민은 지난 4월 열린 셀트리온퀸즈마스터즈에서 시즌 첫 승을 거뒀다. 이번 우승으로 시즌 2승째이자 KLPGA투어 통산 5승째를 신고했다. 이번 시즌 다승을 올린 건 최혜진(3승·20)과 조정민뿐이다. 그는 대상 포인트 50점을 추가하며 240점을 기록, 박채윤(236점·25)을 따돌리고 이 부문 1위로 올라섰다. 또 우승 상금 1억4000만원을 추가해 상금 랭킹 2위(4억7105만원)에 오르며 1위 최혜진(5억4789만원)을 사정권에 뒀다.

7타 차 뒤집기, 역대 2위 대기록

조정민은 승부사 기질을 마지막 라운드에 여과 없이 보여줬다. 전날 3라운드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조정민은 우승 후보 명단에 없었다. 한상희(29)가 14언더파로 단독선두였다. 조정민은 7언더파로 7타 뒤진 공동 6위에 불과했다. 7타 차 역전 우승은 KLPGA투어 역대 2위 기록이다.

뚜껑을 열자마자 리더보드가 출렁였다. 한상희가 전반에 보기 3개(버디 1개)로 무너졌다. 조정민도 2번홀(파4) 보기로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6번홀(파3)부터 4연속 버디로 만회했다. 특히 9번홀(파4)에선 30m가량 되는 먼 거리의 칩샷을 그대로 홀 안에 넣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정민은 “거리가 멀어 공을 줍기 위해 가는 길이 길게 느껴졌다”고 했다.

후반, 우승 경쟁은 조정민과 한상희, 조아연의 3파전이었다. 조아연이 첫 세 홀 3연속 버디를 시작으로 8번홀(파4)에서 원 온 뒤 이글을 잡고 한상희를 압박했다. 그새 한상희는 10번홀(파5) 더블 보기를 범해 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조정민은 뒤에서 조용히 기회를 노렸다. 12번홀(파4)부터 2연속 버디를 낚아챘다. 단독선두. 조정민은 16번홀(파3)에서 3퍼트 실수로 보기를 했으나 조아연도 보기를 범해 순위가 유지됐다. 18번홀에서 조아연이 버디를 기록하며 뒤늦게 동타를 만들었다. 조정민은 실수하지 않고 1m ‘챔피언 퍼트’를 넣으며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글 4개 쏟아진 8번홀 ‘살풀이 무대’

조아연은 막판 ‘스퍼트’에도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는 우승 상금 8050만원을 챙겼다. 조아연이 이글을 기록한 8번홀은 이날만 이글 4개와 버디 41개를 쏟아내며 ‘살풀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보기는 2개가 전부였다.

김아림(24), 김지현(28), 박지영(23), 김예진(24)이 10언더파 공동 3위를 기록했다. 3라운드까지 3타 차 리드를 지킨 한상희는 이날 5타를 잃고 무너져 7위로 밀렸다. ‘디펜딩 챔피언’ 최혜진은 8언더파 공동 8위에 자리했다. ‘포천의 딸’ 서연정(24)은 6언더파 공동 14위에 올랐다. 톱10에 딱 1타가 모자라 아쉬움을 남겼다.

김민선(24)은 이날만 9언더파 63타를 몰아치며 포천힐스CC 대회 첫 코스레코드를 세웠다. 그는 최종합계 8언더파 280타를 쳐 전날 공동 45위보다 37계단 오른 공동 8위로 도약했다. ‘초대 챔프’ 장하나(27)는 이날 16~18번홀에서 3연속 버디를 잡아내는 등 뒷심을 발휘해 공동 10위(7언더파)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포천힐스CC=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