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유일한 방법은 기술창업과 산학협력입니다. 원천기술을 가진 대학, 혁신에 목마른 기업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산업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생태계를 복원해야 합니다.”

국내 1호 교수창업자 박희재 서울대 교수 "창업본능 자극할 한국판 SEIS 필요"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사진)는 ‘국내 1호 교수 창업자’다. “‘내 기술로 시장에서 진검승부해 수출에 기여하자’는 생각으로 창업했다”고 했다. 1998년 2월 디스플레이 검사·측정 장비업체 에스엔유프리시젼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글로벌 LCD(액정표시장치) 검사장비 시장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1000억원대 매출 중 80%는 해외에서 올린다.

박 교수는 “교수 겸직과 관련된 창업 규정까지 바꿔가며 창업을 시도했던 20년 전보다 지금의 기술 창업 생태계가 더 후퇴했다”고 진단했다. 대학은 시장과 전혀 관련 없는 지식에 집착하고, 산업계가 정작 필요로 하는 기술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거대한 산학협력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 교수도 기업에 직접 찾아가 ‘내가 가진 기술을 발전시키면 중국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업과 대학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컨소시엄을 형성해 핵심 기술을 육성하는 생태계가 절실하다.”

산학협력과 기술창업이 활발해지면 청년 고용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독일 프라운호퍼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프라운호퍼연구소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대기업 월급의 50% 수준밖에 받지 못하지만 모두가 이곳에 취업하고 싶어 한다”며 “대학교수들로부터 최첨단 핵심 기술을 배울 수 있어 창업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폭적인 금융 지원도 필요하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그는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자금과 영업력이라는 ‘2%’를 채우지 못하면 창업에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의 ‘SEIS 제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초기 단계 기업에 투자하면 실패할 경우 투자 금액의 최대 75%까지 세금 환급 등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게 이 제도의 핵심이다. 1억원을 투자했다가 투자한 회사가 망해도 7500만원을 돌려주는 셈이다. 장롱 속 돈을 끄집어내 창업정신을 자극하자는 취지다. 영국은 이 제도를 도입한 지 3년이 지나자 런던 북부지역 소재 기업이 15개에서 2000개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