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미는 올리브 가지를 잡을 것인가? 이번 주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예고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이 내밀 타협안을 수용할지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로를 향한 ‘관세폭탄’으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가 500억달러어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물리고, 시진핑이 즉시 똑같은 수준의 관세 부과로 맞서면서 시작된 세계 1, 2위 경제대국 간 무역전쟁은 진행형이다. 중국의 맞대응에 트럼프는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했고, 25%까지 추가 인상하겠다고 위협해왔다.

기록적인 호황을 구가하는 미국 경제이지만 주식시장은 최근 하락세로 돌아섰다. 중국 경제는 냉각되고 있고 투자심리는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실물 분야에서의 갈등이 금융 부문으로 확대될 조짐에, 트럼프와 시진핑이 극적인 타협안을 내놓지 않을까 하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진핑과 극적인 타협을 성사시킨 뒤 “나의 좋은 친구, 시 주석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획기적으로 줄이기로 약속했다”고 트윗을 날리고 싶어 할 것이다. 과연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인가.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의 대중(對中) 초강경 공세로 시작했지만 원인은 중국이 제공했다. 미국은 오랫동안 중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자유롭게 수출하고 미국 기업은 손쉽게 사냥하면서, 정작 중국 자신의 시장은 닫아걸고, 지식재산권을 위반하고, 통화 가치를 수출에 유리하게 조작하고, 기술을 빼가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하루 10억달러가 넘는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이런 불공정·비대칭적 상황의 결과라는 게 미국 정치권 시각이다.

중국이 그들의 거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줄일 묘안을 낸다 해도 문제의 본질인 불공정·비대칭성을 해소하지 않는 한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기술은 살 수도, 구걸할 수도 없는 것이라면서 기술 자립에 총력을 기울이는 시 주석의 행보를 보라. 중국을 인공지능(AI) 대국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주문과 야심은 이미 미국과의 길고 험한 대립과 충돌을 대비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트럼프의 파당적 인기영합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선 중국의 ‘기술굴기’ 봉쇄에 대한 초당적 합의가 형성돼 있다. 중국의 미국 내 인수합병, 심지어 신규 투자에까지 엄격한 감시와 규제를 들이대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통신기업 화웨이의 장비는 미국 공공 분야에서 배제되고 있고, 이는 민간 분야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은 미국 대학에 설치된 공자학원이 로비에 동원돼 왔다며 공자학원이 설치된 대학을 연방정부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서 배제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핵심 기술 분야 중국 학자들의 미국 입국은 물론 중국 유학생도 제한될 전망이다. 미국 전역에 대중 경계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은 기술전쟁이다. 저가 제품 공세로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한 중국은 이제 세계 최대 강국으로 부상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중국제조 2025’로 대표되는 AI, 반도체, 친환경 전기차 등 핵심 10개 분야의 기술굴기 청사진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전면 수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시진핑의 타협안을 수용한다면 미국 내에서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트럼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진핑과 타협을 시도하는 모습을 연출할 것이지만 진정한 타협은 없을 것이다. 중국식 기술굴기를 수정하지 않는 타협은 미국의 패배를, 기술굴기 전략의 수정은 중국의 패배를 의미한다. 만약 타협안이 나온다면 그것은 진정성 없는 ‘쇼’이며 어정쩡하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런 타협이라면 다음 전투를 위한 숨 고르기일 뿐이다.

중국은 그들 방식의 기술굴기를 계속 추구할 것이고, 미·중 간 기술 주도권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중국 기술굴기의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 한국은 트럼프와 시진핑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에 현혹되지 말고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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