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물러나는 인드라 누이 펩시코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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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CEO & Issue focus
'건강' 내세워 음료·스낵사업 강화
펩시코의 미래 기반 닦은 여장부
임기 중 매출 80%↑…성장 견인
'건강' 내세워 음료·스낵사업 강화
펩시코의 미래 기반 닦은 여장부
임기 중 매출 80%↑…성장 견인
“10년 이상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행동주의 투자자인 넬슨 펠츠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12년 만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인드라 누이 펩시코 회장(63)을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2011년 펩시 지분을 사들인 뒤 회사를 음료와 스낵 부문으로 분할하라고 압박하면서 한때 누이 회장과 갈등을 빚기도 한 인물이다. 당시 1억5000만달러 상당의 펩시 지분을 갖고 있던 펠츠 회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누이 회장은 ‘하나의 힘(Power of One)’ 전략을 고수했다. 음료와 스낵 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누이 회장은 자신의 뚝심을 실적으로 뒷받침했다. 펠츠 회장은 성명을 통해 “누이 회장과의 건설적인 관계에 감사하며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란다”고 찬사를 보냈다. 트라이언펀드가 2016년 펩시코 지분을 처분할 때 수익률은 50%였다. 펩시코 매출은 2006년 350억달러에서 지난해 635억달러로 81% 늘었고, 주가도 두 배 이상 뛰었다. 누이 회장이 CEO로 재임하며 이뤄낸 성과다.
◆연평균 매출 5.5% 성장
누이 회장은 다음달 3일 CEO 자리를 라몬 라구아타 사장에게 넘길 예정이다. 이사회 회장직은 내년 초까지 유지한다. 그는 “이 회사는 내 인생이었고 내 마음의 일부는 계속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1994년 입사한 누이 회장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2006년 CEO에 취임했다. 펩시에서 보낸 24년 중 절반을 CEO로 일했다.
펩시코는 펩시콜라뿐만 아니라 게토레이, 마운틴듀, 트로피카나 등 음료와 도리토스 등 스낵·시리얼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식품기업이다. 누이 회장은 소금과 설탕을 덜 섭취하려는 소비자의 식습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시장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자헛, KFC, 타코벨 등 패스트푸드 부문은 정리하고 주스업체 트로피카나와 스포츠음료 게토레이 제조업체 퀘어커오츠를 인수하면서 건강식품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누이 회장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와의 인터뷰에서 “매주 마트에 들러 펩시코 제품이 매장 가판대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확인한다”며 “그럴 때면 CEO가 아니라 엄마의 눈으로 보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제품이 놓여 있는 모습이 왠지 어수선해 보이면 소비자로서 제품 외관 디자인까지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누이 회장이 CEO로 취임한 뒤 지난해까지 펩시코 매출은 연평균 5.5% 늘었다.
펩시코는 올해도 채소·과일칩 등 건강식을 만드는 업체인 베어푸드(Bare Foods)와 탄산수 제조기업체 소다스트림을 인수하면서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누이 회장은 은퇴 후 생활에 대해 “86세인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1955년 인도 남부 첸나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누이를 펩시코 CEO이자 회장으로 키운 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누이 회장은 마드라스크리스천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인도경영대(IIM)와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모토로라 등에서 일하다가 펩시코로 옮긴 뒤 펩시코 사상 첫 여성 CEO가 됐다.
누이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펩시코 임직원의 부모에게 “자녀들을 펩시코의 훌륭한 인재로 키워줘서 감사하다”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누이가 펩시코 회장이 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그의 어머니는 대뜸 “나가서 우유를 사오라”고 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하지만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 리더십은 때론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일명 ‘레이디 도리토스’ 사건이다. 누이 회장이 HBR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용 도리토스를 만들겠다”며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크게 과자 씹는 소리가 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봉지째 입에 털어넣거나 (가루가 묻은) 손가락을 빨아먹기를 싫어한다”고 했다. 하지만 ‘과자를 먹는 데도 여자, 남자가 따로 있느냐’는 등 반발이 거세지면서 레이디 도리토스 출시 계획은 무산됐다. ◆“식음료도 디자인을 생각하라”
문제의 ‘여성용 도리토스’ 아이디어는 남녀를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디자인 싱킹’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누이 회장은 과자통 안에 플라스틱 쟁반을 넣어 쟁반에 과자를 놓고 먹을 수 있도록 한다든지, 씹는 소리가 덜 나는 과자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등의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는 “기존엔 과자의 맛과 식감에만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제품 모양과 포장 형태 그리고 기능 면에서 사용자경험(UX)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이 회장은 2012년 3M에서 디자인 전략을 담당하던 마우로 포르치니를 최고디자인책임자로 영입하고, 디자인싱킹을 펩시코의 기업문화로 심기 위해 노력했다. 누이 회장은 “디자인이 혁신을 이끌고, 혁신은 디자인을 요구하도록 해야 한다”며 “회사에 디자이너를 영입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탄산음료 판매기에 터치스크린을 설치한 ‘펩시 스파이어(Pepsi Spire)’와 칼로리를 낮추고 주스 함량을 높인 슬림한 모양의 ‘마운틴듀 킥스타트’를 디자인싱킹이 성공한 예로 꼽았다.
펩시코는 CEO 교체 후에도 건강한 식품을 만들겠다는 누이 회장의 경영 철학을 이어갈 계획이다. 라구아타 사장은 “건강에 대한 소비자 관심은 끝없이 커지고 있다”며 “더 건강한 식품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누이 회장은 “라구아타 사장은 회사의 성공을 이끌 최적의 인물”이라며 “변화하는 소비자의 선호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행동주의 투자자인 넬슨 펠츠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12년 만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인드라 누이 펩시코 회장(63)을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2011년 펩시 지분을 사들인 뒤 회사를 음료와 스낵 부문으로 분할하라고 압박하면서 한때 누이 회장과 갈등을 빚기도 한 인물이다. 당시 1억5000만달러 상당의 펩시 지분을 갖고 있던 펠츠 회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누이 회장은 ‘하나의 힘(Power of One)’ 전략을 고수했다. 음료와 스낵 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누이 회장은 자신의 뚝심을 실적으로 뒷받침했다. 펠츠 회장은 성명을 통해 “누이 회장과의 건설적인 관계에 감사하며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란다”고 찬사를 보냈다. 트라이언펀드가 2016년 펩시코 지분을 처분할 때 수익률은 50%였다. 펩시코 매출은 2006년 350억달러에서 지난해 635억달러로 81% 늘었고, 주가도 두 배 이상 뛰었다. 누이 회장이 CEO로 재임하며 이뤄낸 성과다.
◆연평균 매출 5.5% 성장
누이 회장은 다음달 3일 CEO 자리를 라몬 라구아타 사장에게 넘길 예정이다. 이사회 회장직은 내년 초까지 유지한다. 그는 “이 회사는 내 인생이었고 내 마음의 일부는 계속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1994년 입사한 누이 회장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2006년 CEO에 취임했다. 펩시에서 보낸 24년 중 절반을 CEO로 일했다.
펩시코는 펩시콜라뿐만 아니라 게토레이, 마운틴듀, 트로피카나 등 음료와 도리토스 등 스낵·시리얼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식품기업이다. 누이 회장은 소금과 설탕을 덜 섭취하려는 소비자의 식습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시장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자헛, KFC, 타코벨 등 패스트푸드 부문은 정리하고 주스업체 트로피카나와 스포츠음료 게토레이 제조업체 퀘어커오츠를 인수하면서 건강식품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누이 회장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와의 인터뷰에서 “매주 마트에 들러 펩시코 제품이 매장 가판대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확인한다”며 “그럴 때면 CEO가 아니라 엄마의 눈으로 보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제품이 놓여 있는 모습이 왠지 어수선해 보이면 소비자로서 제품 외관 디자인까지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누이 회장이 CEO로 취임한 뒤 지난해까지 펩시코 매출은 연평균 5.5% 늘었다.
펩시코는 올해도 채소·과일칩 등 건강식을 만드는 업체인 베어푸드(Bare Foods)와 탄산수 제조기업체 소다스트림을 인수하면서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누이 회장은 은퇴 후 생활에 대해 “86세인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1955년 인도 남부 첸나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누이를 펩시코 CEO이자 회장으로 키운 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누이 회장은 마드라스크리스천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인도경영대(IIM)와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모토로라 등에서 일하다가 펩시코로 옮긴 뒤 펩시코 사상 첫 여성 CEO가 됐다.
누이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펩시코 임직원의 부모에게 “자녀들을 펩시코의 훌륭한 인재로 키워줘서 감사하다”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누이가 펩시코 회장이 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그의 어머니는 대뜸 “나가서 우유를 사오라”고 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하지만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 리더십은 때론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일명 ‘레이디 도리토스’ 사건이다. 누이 회장이 HBR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용 도리토스를 만들겠다”며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크게 과자 씹는 소리가 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봉지째 입에 털어넣거나 (가루가 묻은) 손가락을 빨아먹기를 싫어한다”고 했다. 하지만 ‘과자를 먹는 데도 여자, 남자가 따로 있느냐’는 등 반발이 거세지면서 레이디 도리토스 출시 계획은 무산됐다. ◆“식음료도 디자인을 생각하라”
문제의 ‘여성용 도리토스’ 아이디어는 남녀를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디자인 싱킹’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누이 회장은 과자통 안에 플라스틱 쟁반을 넣어 쟁반에 과자를 놓고 먹을 수 있도록 한다든지, 씹는 소리가 덜 나는 과자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등의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는 “기존엔 과자의 맛과 식감에만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제품 모양과 포장 형태 그리고 기능 면에서 사용자경험(UX)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이 회장은 2012년 3M에서 디자인 전략을 담당하던 마우로 포르치니를 최고디자인책임자로 영입하고, 디자인싱킹을 펩시코의 기업문화로 심기 위해 노력했다. 누이 회장은 “디자인이 혁신을 이끌고, 혁신은 디자인을 요구하도록 해야 한다”며 “회사에 디자이너를 영입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탄산음료 판매기에 터치스크린을 설치한 ‘펩시 스파이어(Pepsi Spire)’와 칼로리를 낮추고 주스 함량을 높인 슬림한 모양의 ‘마운틴듀 킥스타트’를 디자인싱킹이 성공한 예로 꼽았다.
펩시코는 CEO 교체 후에도 건강한 식품을 만들겠다는 누이 회장의 경영 철학을 이어갈 계획이다. 라구아타 사장은 “건강에 대한 소비자 관심은 끝없이 커지고 있다”며 “더 건강한 식품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누이 회장은 “라구아타 사장은 회사의 성공을 이끌 최적의 인물”이라며 “변화하는 소비자의 선호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